조영남 “세계 최초의 사건이 명쾌하게 끝나 가슴 벅차”
2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2부(재판장 박노수) 심리로 열린 조영남의 사기 혐의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재판부는 이 같은 판결을 내리고 검찰의 항소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미술작품 거래에서 친작(화가가 직접 그림)인지, 보조자가 사용돼 제작되는지 여부는 독창성, 창의성, 희소성, 가격 등과 함께 구매를 결정하는 요소 중 하나가 될 수는 있다. 다만 구매자마다 작품을 구매하는 이유가 다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작품 구매자들에게 중요한 정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조영남의 그림을 구매한 사람에게 조영남이 직접 그린 것이 아니라고 고지하지 않았다고 해서 구매자를 기망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조영남은 2011년 '호밀밭의 파수꾼'이란 제목의 화투장 소재 그림을 자신이 직접 그린 그림인 것처럼 속여 구매자 A 씨에게 800만 원을 받고 판매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구매자가 해당 그림을 조영남이 직접 그렸다고 믿고 고가로 구입한 것인만큼 사기가 성립한다는 취지로 주장해 왔다.
반면 1심 재판부는 "이 그림을 조영남이 아닌 다른 사람이 그렸다는 공소사실 자체가 증명되지 않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조영남은 이 사건과 별개의 대작 사기 혐의 재판에서 4년에 걸친 공방 끝에 지난해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다. 당시 조영남은 2009년부터 2016년까지 무명화가 송 아무개 씨에게 총 200~300점의 그림을 그리게 하고, 배경에 경미한 덧칠을 한 뒤 자신의 이름을 달아 고가에 판매하는 방식으로 총 1억 6000여 만 원을 편취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 사건의 쟁점은 현대미술에서 화가의 친작과 공동작업의 여부를 어디까지 인정하느냐였다. 화가 본인이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제자 또는 계약을 체결한 다른 예술가가 작품을 만드는 방식이 현대미술의 취지와도 부합하고 또 여러 화가들 사이에서 관행처럼 이뤄져 왔다는 것이 조영남 측의 주장이었다. 반면 미술계에서는 조영남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다른 화가의 감성이 들어간 '회화' 형태의 작품을 조영남의 오리지널 작품으로 볼 수 없다. 조영남의 주장은 미술계에 대한 명예훼손"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이 사건의 1심 재판부는 조영남의 그림을 대리로 그린 화가 송 씨는 조수가 아닌 독립적으로 참여한 작가로 봐야 한다며 조영남에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항소심에서는 증거불충분으로 무죄를 선고했다. 보조자를 사용한 제작 방식이 미술계에 존재하는 이상 그 방식의 적합 여부나 미술계의 관행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법률적 판단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는 게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이후 대법원도 지난 2020년 6월 조영남에게 최종 무죄를 선고했다.
한편, 이날 추가 기소 사건의 항소심에서까지 무죄를 선고 받은 조영남은 취재진에게 "세계 최초의 사건이 명쾌하게 끝난 것에 가슴이 벅차다"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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