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꼬마 숙녀의 이름은 이나현. 2009년생으로 올해 만 12세가 됐고 현재 초등학교 6학년에 재학 중이다. 이나현은 올해 처음으로 지지옥션배 아마연승전에 숙녀팀 선수로 출전하게 됐다. 예선을 거쳤는데 조은진, 김민주, 송예슬 등 내셔널바둑리그 강자들을 연파하고 숙녀팀 선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숙녀팀은 김희수(17)·고윤서(17)·이서영(16)·김민서(14)·서수경(18)·이나현(12)이 예선을 통과했는데 이들 6명의 평균 나이는 15.7세에 불과하다.
#강한 전투력과 수읽기가 강점
12세 이나현의 실력은 어느 정도일까. 7살에 두 살 위 언니를 따라 바둑을 시작했으니 바둑을 접한 지는 5년 정도. 8살에 한종진 바둑도장을 찾아 프로기사를 향한 본격적인 공부에 들어갔다. 스승 한종진 9단은 “전투력이 강하고 수읽기가 세다. 투수로 치면 아주 좋은 구질을 갖고 있는 셈”이라고 제자를 평가했다.
바둑 도장에서는 하루 9시간쯤 시간을 보낸다. 12시쯤 학교 수업을 마치고 도장에 나오는데 도장에서는 실전대국과 복기, 인터넷 대국, 인공지능을 이용한 수법 연구, 사활 공부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소화한다. 이나현은 그중에서도 사활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는 스승의 귀띔이 있었다. 좋은 일이다. 바둑에서 승패는 결국 누가 더 수를 많이, 깊게 읽는가로 판가름 나는데 이 수읽기 능력을 길러주는 가장 좋은 방법이 사활공부이기 때문이다. 신진서가 그랬고 박정환, 김지석 등은 ‘사활귀신’이라고들 불렸다.
이나현은 현재 한국기원 연구생에 적을 두고 있는데 7조와 8조를 오간다고 한다. 예전에는 남자와 여자를 분리해서 연구생을 운영했는데 요즘은 구분하지 않고 있다. 남자들이 수도 많고 인원도 많다. 다만 입단대회는 남녀 따로 열리는데 여자의 경우 1년에 3명이 프로기사 관문을 통과하게 된다.
한종진 9단은 “나현이의 경우 어릴 때부터 두각을 나타냈기 때문에 프로가 되느냐, 안되느냐는 걱정하지 않는다. 시기가 문제일 뿐이다. 아마도 올해는 어렵고 빠르면 내년, 늦어도 후년에는 입단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현재 여자 연구생 유망주들을 보면 나현이보다 센 실력이 3~5명 정도이고, 그 뒤 10여 명이 나현이와 비슷하다. 물론 지금부터 본인이 얼마나 노력하느냐가 승부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일본 국민기사로 떠오른 스미레와 절친
동기부여 요소도 충분하다. 2019년 일본기원 ‘영재특별채용 추천기사’ 1호로 입단한 후 일본의 ‘국민 기사’가 된 동갑내기 나카무라 스미레의 절친이 이나현이다. 스미레는 한국으로 바둑 유학을 왔는데 둘은 한종진 바둑도장에서 수년간 한솥밥을 먹으면서 제일 친하게 지냈다. 코로나로 인해 왕래는 끊겼지만 지금도 연락은 자주하는 사이라고.
한종진 9단은 나현이가 스미레 때문에라도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본다. “동갑내기 친구가 먼저 두각을 나타내 입단하고 또 성적도 내고 있으니 내색은 안 하지만 아마 큰 자극이 되었을 것이다. 나현이가 스미레에 비해 1년 정도 뒤져있지만 나이가 어린 친구들이기 때문에 이제부터가 승부다. 몇 년 후 어차피 비슷한 단계에 도달할 텐데 거기서 누가 먼저 알을 깨고 최정 9단 정도의 경지에 도달하느냐가 중요하다. 지금 대부분의 기사가 그 아래 수준에 머물러 있는데 스미레도 나현이도 최정을 뛰어넘겠다는 목표가 필요하다”고 스승으로서 애정 섞인 바람을 나타냈다.
양창연 아마7단과의 데뷔전은 이나현의 패배로 막을 내렸다. 초반엔 긴장으로 다소 굳은 듯 어색한 행마가 등장했지만 중반 상대의 실수를 틈타 역전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겼다고 생각한 순간 경험부족을 드러내며 승부처에서 실족하고 말았다.
해설자 한철균 9단은 “귀여운 외모에 씩씩한 대국 태도, 깊은 수읽기를 바탕으로 한 승부호흡이 인상적이어서 예선부터 주의 깊게 지켜봤다. 향후 최정을 능가할 수 있는 재목이라고 본다”면서 “스튜디오 대국 경험이 부족하고 오늘은 주요 장면에서 어깨에 힘이 너무 들어갔다. 앞으로의 성장이 기대되는 재목”이라는 후한 평가를 내렸다.
[승부처 돋보기] 신예의 경험부족
제15기 지지옥션배 신사대숙녀 아마대항전 제1국, 흑 이나현 백 양창연 275수끝, 백8집반승
#장면1
신사팀 1장 양창연 선수는 전북대 출신의 대학바둑 강자. 지지옥션배 출전은 이번이 두 번째다. 백1로 들여다보았을 때 꿈나무 유망주의 흑2가 너무 무기력한 수. 한철균 9단은 “강속구 투수의 어깨가 초반부터 너무 굳었다”고 표현했다. 백3으로 자세를 잡으니 좌변 흑이 아래위로 나뉘어 괴롭게 됐다. 따라서….
#장면2
흑은 1을 선수한 후 다시 3으로 붙여 백의 응수를 먼저 물어보는 것이 좋았다. 백4로 순순히 받으면 흑5의 날일자 공격이 기분 좋은 흐름. 이것이라면 초반 주도권은 흑에게 있었을 것이다.
#장면3
흑의 고전은 이후로도 한참이나 계속됐다. 그런데 중반 백1이 쓸데없는 손찌검. 그냥 A였으면 중앙 흑도 미생이어서 우변이 흠 없는 백집으로 굳었을 것이다. 흑4로 인해 B의 결점이 노출되면서 백은 7의 보강이 필요해졌다. 결과적으로 백이 한 수를 쉰 꼴. 흑8로 중앙 대마가 용틀임을 하면서 흐름이 바뀌기 시작했다.
#장면4
전보 백의 실수로 흑에게 찬스가 왔다. 그러나 흑1·3이 급했다.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렸다. 흑3이 너무 눈에 크게 보였을까. 백4에 흑7이 뼈아픈 제자리걸음. 계속해서 12의 큰 곳에 백의 손이 돌아오면서 승부가 결정됐다.
#장면5
흑은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흑1로 두점을 따낸 다음 순차적으로 흑3·5를 계속 차지했으면 여유 있는 형세였다. 이나현은 1분 초읽기 5개 중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대국을 마쳤는데, 결정적인 승부처 ‘장면4’ 흑1의 시점에서 이를 전부 쏟아 부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마 이런 것이 신예의 경험부족일 것이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