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 1국장 ‘정년제한’ 걸려 종합보고서 못 쓰고 물러나야 할 수도…진화위 “절차상 문제 없다”
5월 25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엔 ‘진실화해위의 채용 전횡을 바로잡아달라’는 글이 올라왔다. 내용은 이렇다.
“2006년 1기 진화위 이래 한국전쟁 민간인학살 문제를 정리하고 조사해 온 조사전문가가 탈락한 대신, 채용된 합격자는 위원회 활동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중도에 정년퇴직해야 하는 인사다. 투명하지 못한 인사 채용 방식에 대해 불만이 가득하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 신분이 드러나면 블랙리스트처럼 작동하여 또 다른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공개를 꺼리고 있는 실정이다.”
청원 글에서 언급된 채용 논란은 조사를 총괄하는 조사국장 자리를 두고 나온 말이다. 진화위는 1처 2국으로 이뤄져 있다. 위원장 아래 사무처가 있고 그 밑에 다시 2개 조사국으로 나뉜다. 하나의 국을 담당하는 조사국장은 2급 별정직 고위공무원에 해당한다. 진화위는 최근 조사1국장엔 지역 신문사 부국장 출신 A 씨를 채용했다.
조사2국장엔 지원자 전원 역량 부족을 이유로 아무도 채용하지 않았다. 조사2국장 채용은 다시 진행되고 있다. 조사1국은 한국전쟁 당시 발생한 민간인 집단학살을, 조사2국은 ‘형제복지원’ 사건 등 민간인에게 자행된 국가폭력을 중점적으로 조사할 예정이다.
논란이 된 건 조사1국장 A 씨 나이다. A 씨는 1963년 5월생으로 2년 뒤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별정직 공무원 근무 상한 연령인 만 60세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임기인 3년을 다 채울 수 없는 셈이다. 조사를 총괄하고 위원회 임기가 끝나는 시점에 ‘종합보고서’를 써내야 하는 조사국장이 중도에 물러나야 한다는 점을 알고도 위원회가 채용했다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1기 진화위에서 조사활동을 했던 한 관계자는 “1기 진화위는 우리 사회 갈등을 야기하는 과거 인권유린 사건을 정리하고자 만들어졌고, 2기 진화위는 1기 때 끝내지 못했던 과거사를 매듭짓기 위해 출범했다”며 “위원회 임기가 종료될 때 나올 ‘종합보고서’가 과거사 진실을 결정짓는다고 봤을 때 임기 중간에 그만둬야 하는 조사국장을 채용했다는 건 납득하기 어려운 지점인 건 맞다”고 설명했다.
1기 진화위에서 조사활동을 했던 또 다른 관계자 역시 “2년 뒤 현재 조사국장이 물러나고 후임자가 들어온다고 봤을 때, 업무 파악에만 상당한 기간이 필요할 것”이라며 “조사 업무 연속성 측면에서 봤을 때 비효율적”이라고 답했다.
진화위는 일요신문 취재 과정에서 채용 과정에서 지원자 연령을 알 수 없었다고 답했지만 사실과 달랐다. 진화위는 조사국장을 채용하는 공고에서 ‘별정직 공무원의 근무 상한 연령은 60세로 한다’고 안내하며 1차 서류전형 때 주민등록등본 초본 제출을 요구했다. 2차 면접전형을 통과한 지원자를 대상으로 인사혁신처가 고위공무원 인사검증을 했는데, 이 과정에서 지원자들은 생년월일이 기재된 정보를 제출했다.
조사1국장 최종 후보에서 탈락한 한 인사는 “인사검증 단계에서 아내나 자식 등 가족의 개인정보까지 알려줬는데, 위원회가 지원자 나이를 몰랐을 수가 없다”며 “채용 권한은 전적으로 위원회에 있지만 과거사 조사와 관련한 일을 했다고 보기 어려운 인물을 조사국장에 채용했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다만 조사1국장 A 씨는 진화위 1기에서 자문역을 맡았고, 국민보도연맹 사건과 형무소 집단학살 사건 진상 규명 관련한 책이나 기사를 쓰기도 했다.
진화위는 조사국장 채용과정에서 절차상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진화위 관계자는 “주민등본초본을 받은 건 서류전형 기준인 만 60세 해당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 받은 것”이라며 “면접자가 지원자의 나이를 알 수 없었다”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공무원 임용 기준에 따라 채용은 이뤄졌다. 조사국장이 위원회 임기 3년을 다 채울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 결과가 결정됐다면 오히려 나이 차별일 수밖에 없다”며 “채용된 조사국장이 과거사 관련 조사 경력이 없다는 말도 오해지만 조직을 관리하고 이끌었던 경력이 크게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일요신문은 진화위에 A 씨 측 입장을 요청했으나 받을 수 없었다.
진화위는 조사국장 채용과정에서 지원 자격에 ‘17년 이상 관련분야 실무경력이 있는 사람’ 조항을 명시했다. 비교적 작은 규모인 시민단체 활동보다 언론사 부국장 경력이 더 높게 평가됐다는 게 진화위 설명이다. 실제 조사1국장 최종 후보 가운데 탈락한 후보들의 경력은 시민단체 경력 비중이 컸다.
결국 진화위에 따르면 채용과정에서 진화위 임기 3년을 채울 수 있는지 여부는 평가 항목이 아니었다. 3년 동안 조사를 진행해야 하는 진화위 특수성이 반영되지 않은 셈이다.
채용 전횡 의혹에 이어 한국전쟁전후민간인피학살자 전국유족회는 조사 대상 선정을 두고도 문제를 제기했다. 유족회는 5월 31일 입장문을 내고 “진실화해위원회 조사개시 결정 기자회견에서 신청 숫자가 가장 많은 민간인학살사건은 거론조차 하지 않았으며 형제복지원을 비롯한 1기 조사위원회가 조사했던 사건만 나열한 것에 실망과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며 “민간인학살사건을 우선 조사해줄 것을 촉구”했다.
이어 유족회는 인사 전횡 의혹과 관련해선 “(조사국장 채용과정에서 진화위는) 석·박사 논문 및 외국어 등 화려한 스펙을 중요시했다”며 “그것도 중요하지만 올바른 민족사학을 바탕으로 바른 인성과 투철한 역사의식과 과거사 해결에 대한 확고한 사명감을 두루 갖춘 조사관이 선발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진화위는 5월 27일 ‘1호 사건’으로 형제복지원 사건을 선정하고 진상규명 조사를 개시했다. 진화위 관계자는 “일반 시민이 관심이 많은 형제복지원 사건이 조명되면서 유족회에서 섭섭한 부분은 이해한다”며 “진화위 또한 민간인학살사건을 주요하게 여기고 조사할 것”이라고 답했다.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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