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유럽리거들은 다수가 이번 시즌이 소속팀에서 마지막이 될 공산이 크다. 짧게는 2년, 길게는 3년 이상 소속팀에 헌신했고 다음 시즌에는 또 다른 유니폼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자유의 몸이 된 이재성
아직 행선지가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이적이 확정적인 선수는 이재성이다. 2018년 여름 독일 분데스리가2 홀슈타인 킬로 간 그는 첫 시즌부터 팀의 주축 전력으로 맹활약해왔다.
3년차를 맞은 이번 시즌 역시 마찬가지였다. 팀이 치른 41경기 중 단 1경기를 제외하고 모두 출전했고 벤치에서 시작한 경기는 2경기뿐이다. 시즌 최종 기록은 40경기 8골 7도움이었다.
이재성은 구단의 새 역사를 쓰기도 했다. 컵대회인 DFB 포칼에서 4강에 오른 것이다. 2부리그 팀임에도 높은 위치에 올라 기대 이상의 성과를 냈다. 킬 구단은 1941년 이후 80년 만에 포칼 4강 무대를 밟았다. 같은 대회 2라운드(32강)에서는 거함 바이에른 뮌헨을 잡는 파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시즌 내내 좋은 분위기를 이어갔던 이재성과 킬은 마지막 경기에서 웃지 못했다. 승격을 목표로 했던 이들은 1부리그로 직행할 수 있었던 순위인 2위에 승점 2점이 모자랐고 결국 승격 플레이오프를 치러야 했다. 1부리그 16위 쾰른과 만난 플레이오프에서 1차전 승리를 거뒀지만 2차전에서 대패해 최종 승격에 실패했다. 이재성은 플레이오프 2경기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했지만 팀의 전력차에 울어야 했다.
킬 구단은 또 다시 2부리그에서 도전을 이어가게 됐지만 이재성은 팀을 떠난다. 기존 3년 계약이 종료되며 자유의 몸(FA)이 됐기 때문이다. 이적료 없이 자유롭게 팀을 선택할 수 있는 여건이 됐다. 팀이 1부리그로 승격한다면 재계약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지만 승격이 무산되며 결국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선수 본인은 "독일 분데스리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관심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 양 리그 구단들의 문의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황의조·이강인 앞날은?
프랑스 리그 앙에서 활약 중인 황의조도 이적 가능성이 높다. 황의조는 이번 시즌 기대 이상의 활약을 보였다. 유럽 2년차를 맞아 더욱 적응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롱댕 보르도 유니폼을 입고 26경기에서 6골 2도움을 기록한 첫 시즌에 비해 더 많은 경기에 출전(36경기)했고 더 많은 공격 포인트(12골 3도움)를 만들어냈다. 2020년 12월까지 단 2골에 그쳐 고전하는 듯했으나 후반기에만 10골을 몰아쳐 팀을 강등권에서 구해냈다.
순조로운 유럽생활을 이어가고 있지만 황의조는 다음 시즌 다른 팀 유니폼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 이재성과 달리 계약기간은 2023년 6월까지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적 전망이 나오는 이유는 소속팀 보르도의 사정 때문. 보르도는 경영난에 빠져 구단이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재정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선수 판매를 선택할 수 있다. 리그에서만 12골을 기록한 공격수 황의조는 그 가치를 높여가고 있는 상황이다.
대한민국 올림픽대표팀에 합류한 이강인도 이적 가능성이 있다. 이강인의 이적설은 현지에서 꾸준히 나왔던 뉴스다. 혼란스러운 소속팀 발렌시아의 상황과 이강인의 재능이 이 같은 상황을 만들고 있다.
발렌시아는 최근 수년간 혼란을 지속하고 있다. 연속된 감독 교체로 지난 시즌 총 3명의 사령탑이 팀을 이끌었고 이번 시즌 역시 감독이 경질됐고 대행 체제가 이어졌다. 시즌 종료 이후에는 다음 시즌 팀을 맡을 새 감독이 선임됐다. 뿐만 아니라 구단은 지속해서 경영난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시즌 다수 선수를 판매했지만 이렇다 할 보강은 없었다.
이 같은 발렌시아의 혼란과 맞물려 여전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이강인의 재능은 계속해서 이적설을 이끌어내는 이유다. U-20 월드컵 MVP라는 이강인의 이력은 유럽 어느 구단이든 탐낼 만한 재능이다. 이번 시즌도 발렌시아에서 확고한 주전 자리를 꿰차진 못했지만(27경기 1골 4도움) 이따금 번뜩이는 모습으로 팬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지난해부터 이강인은 다수 구단과 연결되고 있다. 울버햄튼(잉글랜드), 모나코(프랑스), 잘츠부르크(오스트리아) 등 구체적으로 이적 대상 팀이 언급되고 있다. 다만 1년을 기다리면 기존 계약이 종료되기에 잔류 가능성도 존재한다. 발렌시아는 이강인이 어린 시절부터 입단해 성장한 팀이기에 특별한 관계기도 하다.
#잔류 유력한 손흥민·황희찬
빅리거 손흥민과 황희찬도 이적설에 연루됐지만 현재로서는 잔류를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손흥민은 이번 시즌 또 한 번 성장을 이뤄냈다. 프리미어리그(37경기 출장)에서만 17골 10도움을 기록, 자신의 커리어에서 한 시즌 최다골 기록을 경신했다. 리그 내 득점과 도움 랭킹 모두 4위에 올랐다. 공격 포인트로도 4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시즌 내내 계속되는 맹활약에 손흥민은 지속적으로 이적설을 뿌렸다. 유럽 각국 언론들은 레알 마드리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맨체스터 시티 등 슈퍼 클럽으로 이적 가능성을 점쳤다.
하지만 이적이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토트넘은 이번 시즌에도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데 실패했다. 토트넘의 넘버원 에이스인 해리 케인의 이탈이 유력한 상황에서 손흥민까지 내주기엔 부담이 크다. 손흥민은 지난 시즌부터 지속적으로 토트넘 구단과 재계약 논의를 이어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수익이 감소해 구단들이 선수 이적에 큰돈을 지출하기 꺼리는 상황도 손흥민의 슈퍼클럽 이적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오스트리아 무대에서 활약을 인정받아 독일로 향한 황희찬은 험난한 시즌을 보냈다. 라이프치히에서 첫 시즌, 주전 경쟁을 이어나가던 상황에서 그는 대표팀 일정을 소화하다 코로나19에 감염됐다. 쉽게 털고 일어난 일부 선수들과 달리 황희찬은 지독한 후유증을 앓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장기간 팀을 이탈할 수밖에 없었다.
벤치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길어졌고 악재가 겹치자 겨울 이적시장에서 임대를 모색했다. 실제 에버튼(잉글랜드), 볼프스부르크(독일) 등과 강하게 연결되기도 했다. 소속팀의 반대로 겨울 이적시장 내 이동은 무산됐지만 여전히 이적설은 살아 있었다.
하지만 라이프치히가 새 감독을 선임하며 황희찬의 이적설은 잦아드는 모양새다. 황희찬을 중용하지 않던 율리안 나겔스만 감독은 바이에른 뮌헨 감독으로 자리를 옮겼다. 후임으로는 황희찬과 잘츠부르크에서 호흡을 맞췄던 제시 마쉬 감독이 선임됐다. 자신을 잘 아는 감독이 부임했기에 황희찬으로선 라이프치히에서 한 번 더 도전해볼 수 있는 여건이 갖춰졌다.
#또 한 명의 빅리거 탄생?
최근 새로운 한국인 빅리거가 탄생할 수 있다는 소식이 이어져 팬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중국 슈퍼리그에서 활약 중인 수비수 김민재다. 지난 1일 포르투갈의 한 매체는 '김민재가 이탈리아 세리에A 유벤투스로 합류한다'는 보도를 전했다. 계약기간과 이적료, 바이아웃 조항까지 계약 세부내용이 포함돼 더욱 눈길을 끌었다. 이탈리아 현지 팬들이 김민재의 소셜미디어에 찾아와 환영 인사를 남길 정도였다.
김민재는 꾸준히 유럽 무대와 연결돼온 수비수다. 이탈리아, 잉글랜드 등 다양한 무대에서 관심을 표현해왔다. 장기간 뉴스가 이어졌기에 '괴물'이라는 별명과 함께 유럽에서도 그에 대한 홍보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여름 이적시장에서 성사되지 않더라도 오는 연말이면 기존 계약이 종료되기에 겨울 이적시장에서 어떻게든 결판이 날 전망.
축구에서 이적은 살아있는 생물과 같다. 이른바 '오피셜'로 불리는 구단 측 공식 발표가 있기 전까지 어떤 일도 속단하기 어렵다. 과거 박주영의 아스널 이적설, 박지성의 맨유 이적설이 돌던 당시 이를 믿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이상윤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한국인 선수들의 이적에 대해 "선수라면 누구나 빅리그, 빅클럽에서 뛰고 싶은 욕심이 있을 것"이라면서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꾸준히 경기에 출장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동안 순간의 아쉬운 선택으로 선수가 커리어에 공백을 갖는 모습을 목격해왔다. 이적 협의 과정에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상윤 해설위원은 이번 여름 이적시장에서는 올림픽이라는 변수가 존재한다고도 짚었다. 그는 "이번 A대표팀 일정은 약체를 상대하는 월드컵 2차 예선이다. 오히려 올림픽이 유럽 구단들에 일종의 '쇼케이스' 무대가 될 수 있다"면서 "현재 올림픽대표팀에 속해 있는 이강인 외에 성인대표 선수들도 와일드카드로 발탁이 가능하다. 올림픽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다면 이적 작업이 더욱 수월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기존 유럽리거 외에 어린 선수들의 새로운 유럽 진출을 기대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2020-2021시즌 한국인 유럽리거 주요 기록
이재성(홀슈타인 킬, 독일 분데스리가2)
리그 33경기 5골 6도움
리그‧컵대회 종합 40경기 8골 7도움
황의조(지롱댕 보르도, 프랑스 리그 앙)
리그 36경기 12골 3도움
리그‧컵대회 종합 37경기 12골 3도움
이강인(발렌시아,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리그 24경기 4도움
리그‧컵대회 종합 27경기 1골 4도움
손흥민(토트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리그 37경기 17골 10도움
리그‧컵대회 종합 51경기 22골 17도움
황희찬(RB 라이프치히, 독일 분데스리가)
리그 18경기 1도움
리그‧컵대회 종합 26경기 3골 3도움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