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향 수원대 교수 |
누구는 그것을 “미친 존재감”이라 표현했다. 그 “미친 존재감”이 그에게 부담일까, 힘일까, 아무 것도 아닐까? 적어도 2005년, 그가 스탠퍼드대학에서 했던 명연설을 들여다보면 이미 그는 “미친 존재감” 앞에서도 자유로운, 잘 나이든 존재 같다. 죽음의 그림자를 경험케 한 지독한 병이, 부침(浮沈)이 심했던 그의 인생이 놓아버려야 할 것을 놓게 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을 받아들이게 한 것 같다.
“천국에 가고 싶다는 사람들조차 그곳에 가기 위해 죽기를 원하지는 않는다”는 그의 문장을 읽고 나는 얼마나 웃었는지. 그 유머 감각에 이어 나온 문장이 죽음은 숙명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왜 그 문장이 그렇게 서늘했을까?
왕도 가고, 거지도 가고, 천재도 가고, 바보도 가고, 도둑도 가고, 시인도 간다. 죽음은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숙명이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해 제사를 지내고, 종종 문상을 다니면서도 왜 나는 죽는 일이 남의 일처럼 여겨질까?
혹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건 아닐까? 죽음이 두려워 마치 죽지 않을 것처럼 남의 일인 양 모른 척하며 “장수 비결”을 찾아다니고 있는 건 아닌지. 그래서 죽음과 가까운 늙음을 무시하고 젊음과 욕망에 아부하다 나이 듦이 주는 지혜를 아예 잃어버리고 있는 건 아닌지.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되어서야 비로소 날기 시작한다는데, 황혼이 되어서 황혼을 경멸하고 있으니 지혜가 깃들 리 없다.
스티브 잡스의 연설엔 죽음에 정직하게 직면한 자의 지혜가 묻어난다. “모든 외형적인 기대들, 자부심, 실패의 두려움, 그런 것들은 죽음 앞에서 아무 것도 아니다. 죽음은 인생에서 큰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을 주는 가장 중요한 도구다.”
그가 얻은 지혜는 이것이었다. “다른 사람의 견해가 내면의 목소리를 가리는 소음이 되지 않게 하라. 마음을 따라가고, 직관을 따라가라!”
왜 나는 차분하게 그의 연설문을 읽어 내려가는데 <보왕삼매론>의 첫 구절이 생각이 날까. “몸에 병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그래서 성인 말씀하시길 병고(病苦)로서 양약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스티브 잡스의 이번 병고가 그의 인생의 양약이 될 거라고 믿는다.
수원대 교수 이주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