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혈사제’ 이후 ‘열혈 행보’ 이번엔 경상도 사나이…사극 캐스팅 대비 승마 훈련도 “픽미픽미”
“저희 아버지가 극장에 오시는 것 자체가 이번이 처음이셨어요. 폐쇄되고 이런 공간을 별로 안 좋아하셔서 극장을 안 가셨거든요. 그런데 제 첫 주연에, 심지어 첫 무대인사 자리인 거예요. 아버지가 영화를 보시고는 저한테 ‘어어, 재밌네’ 이러고 마셨는데 큰누나한테 감동이었다고(웃음). 영화관 큰 화면에 자신의 아들이 저렇게 사람들 앞에서 연기를 계속, 메인 캐릭터로 많이 나오니까 너무 행복하셨다고 그러시더라고요.”
일요신문과 만난 음문석은 먼저 첫 스크린 주연 작품을 가족들에게 소개했을 때 느낀 점부터 털어놨다. 아들이자 남동생이 관객들의 박수를 받으며 크게, 또 오래도록 스크린에 등장하는 것에 가족들은 영화의 재미에 앞서 그저 ‘감동이었다’는 말만 계속했다고. “다른 영화에도 제가 출연하긴 했었는데요, 그땐 그냥 공기였거든요. 보다가 제가 나올 때 일시정지를 눌러도 잔상이 안 남아요. 그런데 얼굴을 제대로 보신 게 이번이 처음이신 거죠.” ‘웃픈’ 설명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비열한 거리’ ‘말죽거리 잔혹사’의 유하 감독의 신작 ‘파이프라인’에서 음문석은 울산 출신의 용접공 ‘접새’를 맡았다. 접새보단 촉새에 가까울 정도로 다소 가벼우면서도, 사상 최악의 도유 범죄를 위해 뭉친 일당들 중 가장 순수하게 이익을 좇는 인물이기도 하다. 일당 내에서 지속적으로 갈등을 유발하는 박쥐형 캐릭터지만 왠지 모르게 마냥 미워할 수만은 없는 것은 그를 연기한 음문석의 고민이 스크린을 통해 그대로 전달됐기 때문 아닐까.
“솔직히 쉬운 캐릭터가 아니었어요. 고민도 많이 됐고요. 그래서 저는 거꾸로 전사를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이 친구가 왜 이럴 수밖에 없을까, 본질은 나쁘지 않은데 왜 이럴까, 행동의 이유가 있을까? 이런 점들. 접새 캐릭터를 준비하면서 이 친구가 사회에 나와 용접공으로 있으면서 상처를 많이 받았던 상황을 만들었어요. 사회에서 상처를 많이 받았고, 그래서 얍삽하지만 이익을 따라가는 모습이 돼 버린 캐릭터를 담아주자. 그런 부분에서 고민을 많이 하고 또 연기에서도 중점을 뒀던 것 같아요.”
가볍고 얕은 캐릭터의 성격에 맞게 접새는 모습부터 다른 일당들과 차별화를 두고 있다. 용접을 하다 그슬린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뽀글뽀글한 머리를 보고 있으면 ‘열혈사제’의 장룡이 그랬듯 이번 캐릭터에도 음문석의 아이디어가 어디까지 활용됐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이에 음문석은 “접새의 의상과 캐릭터 외양은 다 감독님이 정해주신 것이라 제 의견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굉장히 명확하게 길잡이를 해 주셔서 제가 좀 편하게 촬영했죠(웃음). 경찰 조사를 막으려고 접새가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는 신에서도 감독님이 노래를 다 정해 주셨어요. 그런데 움직임은 제게 맡겨 주셨죠. ‘네가 전문가니까 네가 한 번 만들어 봐라’ 하셔서 접새스러운 느낌으로 춤추려고 소녀시대 안무부터 아크로바틱까지 짬뽕을 한 번 시켜 봤어요(웃음).”
대신 캐릭터를 만들어진 그대로 완벽하게 연기하기 위한 노력은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충청도 출신인 그가 경상도민들도 감탄할 만큼 ‘리얼’ 경상도 사투리를 제대로 구사할 수 있었던 것도 노력에 노력을 겹친 성과였다.
“충청도도 충청도만의 정서가 있다면 경상도도 당연히 경상도만의 정서가 있겠죠. 그 정서를 배우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사투리 부분도 경상도 출신인 제 친구와 동료 출연진들에게서 많이 배웠어요. 대본 연습보단 일상적으로 쓰는 말을 경상도 사투리만 썼던 것 같아요. 촬영 때 대사 외에 즉흥적인 상황이 생기면 그게 언어로 먼저 나오게 되잖아요. 그런데 대사만 달달 외우고 있으면 너무 로봇처럼 접근하게 될까봐 그게 우려스러웠어요. 그래서 아예 24시간 동안 경상도 사투리만 쓰고 그랬죠.”
충청도와 경상도를 섭렵했으니 남은 지역의 사투리 캐릭터도 ‘도장 깨기’처럼 할 수 있지 않을까. “캐릭터만 주어진다면 팔도 사투리도 다 쓸 수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친 음문석은 늘 앞날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언제 어떤 역할이 주어질지 모르는 연기자의 길을 걷겠다고 결심한 이상, 완전무결하지는 않더라도 자신이 만족하는 그 이상의 결과를 내고 싶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사극 출연 제의가 들어온 적은 없지만 말 타는 법을 배우러 다닌 것도 그런 열정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제가 스스로한테 그렇게 말해요. ‘내가 서울을 어떻게 올라왔는데’ 이게 강박일 순 있는데, 저는 제 자신이 멈추면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꾸준히 그냥 뭔가를 하고 있어야 살아있단 느낌이 들어요. 제가 늘 생각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어제까지가 나다’라는 거예요. 오늘 뭘 해야 하는데 즉흥으로 훈련해서 한다? 그건 안 돼요. 전문가적인 느낌이 나려면 그 직업을 5년 이상은 해야 할 텐데 어떤 직업군을 연기할지 모르는 상황이라면 미리미리 여러 가지 훈련을 해 놔야 그 작품에 들어가서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잖아요. 저는 흉내만 내다 끝내는 게 너무 싫어요. ‘내가 뭘 할지 모르지만 미리 해놓자’는 게 제 모토예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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