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열 18번 팬들이 지켜내…최동원 11번은 별세 후 ‘너무 늦은’ 지정
메이저리그(MLB)에선 새 팀으로 이적한 선수가 원래 자신이 달던 등번호를 유지하기 위해 그 번호의 주인에게 고가의 선물을 하고 양보를 부탁하는 문화도 있다. 실제로 SSG 랜더스 추신수는 MLB 생활을 접고 올해 한국으로 오면서 팀 후배인 투수 이태양에게 명품 시계를 선물했다. 추신수는 어린 시절부터 등번호 17번을 썼는데, 이태양이 그 번호를 흔쾌히 내준 게 고마워서다. 추신수는 "아주 오래 전부터 내 등 뒤에는 17번이 적혀 있었다. 선수들에게 등번호는 큰 의미가 있다. 양보해 준 이태양 선수에게 고맙다"고 했다.
이렇게 애착을 느끼는 숫자가 팀에서 영원히 '나의 번호'로 남는다면 프로야구 선수에게 그 이상 영광스러운 일이 없다. 누구나 잡을 수 있는 기회도 아니다. 그라운드 안에서 쌓아올린 성적이 대단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야구 외적으로도 모범을 보여야 한다. 팀 역사에서 그 선수가 차지하는 의미도 중요하다. 트레이드나 FA(자유계약) 이적 없이 한 팀에만 몸담는 천운도 뒷받침돼야 한다. KBO리그 40년 역사에서 단 15명만 영구결번의 주인공이 된 이유다.
#선동열 18번 대물림 막은 팬들
KBO리그 사상 첫 영구결번은 1986년 세상을 떠난 OB(두산의 전신) 베어스 김영신의 54번이다. 김영신은 1984년 LA 올림픽 국가대표로 활약한 뒤 이듬해 OB에 입단했지만, 프로에서 크게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러다 1986년 한강에서 익사체로 발견됐다. 경찰은 급류에 휘말려 변을 당한 것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야구계에선 성적 비관으로 인한 자살로 여기는 이들이 많았다. OB는 54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해 그를 애도했다.
선수 시절의 명예를 바탕으로 지정된 첫 영구결번의 주인공은 '국보' 선동열(해태 타이거즈·KIA의 전신)이다. 해태에서 18번을 달고 뛴 선동열은 11시즌 동안 선발과 불펜을 가리지 않고 367경기에 출전해 통산 146승 40패 132세이브를 기록했다. 무엇보다 1647이닝 동안 자책점을 220점만 내줘 통산 평균자책점 1.20이라는 무시무시한 성적을 남겼다. 0점대 평균자책점으로 마친 시즌도 5차례(1986·1987·1992·1993·1995년)나 된다. "선동열이 불펜에서 몸을 풀기만 해도 상대 팀이 지레 경기를 포기했다"는 후일담이 전해졌을 정도로 위력을 자랑했다.
한국 프로야구를 평정한 선동열은 1996년 일본 프로야구 NPB 주니치 드래곤스와 임대 선수 계약을 하고 해외로 진출했다. 그러자 해태는 곧바로 18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선동열이 일본 생활을 마치고 해태로 복귀하면 다시 그 번호를 달게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선동열은 4년간 주니치 마무리 투수로 활약한 뒤 1999시즌을 마치고 일본에서 은퇴를 선언했다. "박수 받을 때 떠나고 싶다"는 의지에서다. 이로써 다시는 18번을 단 타이거즈 선수를 KBO리그에서 볼 수 없게 됐다.
18번의 영구결번 지정과 철회를 두고 작은 해프닝도 있었다. 2001년 해태를 인수한 KIA는 2002년 특급 신인 김진우가 입단하자 18번을 선물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전설 선동열의 등번호를 '제2의 선동열'인 후배 투수가 대물림한다"는 명분이었다. 그러나 역대 최고 투수 선동열을 여전히 그리워하던 팬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이제 갓 고교를 졸업한 신인 투수에게는 지나치게 무거운 짐"이라는 반대 의견도 나왔다. KIA는 예기치 못한 팬들의 항의 세례에 즉각 그 계획을 백지화했다.
#너무 늦은 영구결번
그 다음은 LG 트윈스 김용수다. 그는 2000년 은퇴했지만, 현역 선수 신분이던 1999년 그의 등번호 41번이 역대 세 번째 영구결번으로 지정됐다. LG는 KBO리그 사상 처음으로 100승-200세이브를 동시 달성한 김용수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역대 최초로 현역 선수의 영구결번식을 여는 파격을 택했다.
김용수는 유독 LG팬의 사랑을 많이 받은 선수다. 1985년 LG의 전신 MBC 청룡에 입단한 뒤 16시즌 동안 한 팀 유니폼만 입으면서 126승 227세이브 1홀드 89패라는 놀라운 성적을 남겼다. 특히 227세이브는 2012년 오승환(삼성 라이온즈)이 넘어서기 전까지 KBO리그 역대 최다 세이브 기록으로 남아 있었다.
입단 2년 차부터 전문 마무리 투수를 맡은 오승환과 달리 김용수는 선발과 불펜을 오가면서도 200세이브를 돌파했다는 점에서 경탄을 자아냈다. LG가 마지막으로 우승한 1994년 한국시리즈에서는 1차전 구원승을 거둔 뒤 3차전과 4차전에서 1점 차 승리를 지켜내 시리즈 최우수선수(MVP)로 뽑혔다.
반면 은퇴 후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영구결번의 영광을 안은 레전드들도 있다. OB 원년 우승 멤버인 박철순은 1996년 은퇴했지만 영구결번 지정은 2002년에 받았다. 박철순이 은퇴한 시점까지만 해도 프랜차이즈 레전드의 등번호를 영구결번으로 남기는 문화가 보편화되지 않았던 탓이다. 결국 그의 등번호 21번은 6년 뒤 뒤늦게 영구결번으로 추대됐다.
삼성 이만수도 1997년 은퇴 후 7년이 지난 2004년에야 등번호 22번을 영구결번으로 남겼다. 그는 고향팀 삼성에서 16년간 통산 252홈런을 때려낸 스타플레이어였지만, 은퇴 과정에서 구단과 마찰을 빚어 흐지부지 유니폼을 벗었다. 삼성 골수팬들이 7년에 걸쳐 구단에 끈질기게 영구결번을 요청한 덕에 뒤늦게 꿈을 이뤘다.
그래도 롯데 자이언츠 최동원에 비하면 빠른 편이다. 1984년 한국시리즈 4승 신화를 쓴 '안경 에이스' 최동원은 자신의 오른팔을 팀의 첫 우승에 바친 영웅이다. 롯데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레전드 중 한 명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그러나 그의 등번호 11번은 너무 늦게 영구결번으로 지정됐다. '11'이라는 숫자가 부산 사직구장 한쪽에 걸리기까지 무려 23년이 필요했다.
1988년 트레이드로 롯데를 떠나 1990년 삼성에서 은퇴한 최동원은 2011년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그러자 롯데는 비로소 최동원의 추모식을 열고 영구결번을 선포했다. 조금 늦긴 했지만 롯데 구단 최초의 영구결번이 될 자격을 갖춘 숫자였다. 이와 함께 사직구장 입구에는 최동원을 기리기 위한 동상도 세워졌다.
#한화는 영구결번이 넷
그 뒤에는 한화 이글스가 영구결번 릴레이를 시작했다. 홈런왕 장종훈의 35번을 2005년 구단 첫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장종훈은 1987년 한화의 전신 빙그레에 연습생으로 입단한 뒤 리그 최고의 홈런 타자로 성장해 통산 340홈런을 쳤다. 프로야구 '연습생 신화'의 원조이자 한화에 '다이너마이트 타선'이라는 별명을 안긴 주역이었다.
2009년에는 '암흑기 에이스' 정민철의 23번을 두 번째 영구결번으로 선포했다. 1992년 데뷔한 정민철은 첫 해부터 1999년까지 8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올리면서 통산 161승을 쌓았다. 역대 오른손 투수 중 최다승이다. 전성기 등번호는 55번이지만, 은퇴 당시 번호인 23번을 영구결번으로 남기기로 했다. "55번을 쓰고 있는 후배의 번호를 빼앗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같은 해 은퇴한 송진우의 21번도 구단 세 번째 영구결번으로 결정됐다. 송진우는 KBO리그에서 유일하게 200승을 넘긴 통산 최다승(210승) 투수다. 1990년대에는 선발과 불펜을 오가면서 통산 세이브도 103개 수확했다. 한화가 아니라 그 어느 팀에서 뛰었더라도 영구결번이 됐을 성적. 성실한 자기 관리 덕에 43세까지 선수생활을 하면서 리그 최고령 기록도 여럿 갈아치웠다. 21번의 영구결번 지정과 함께 한화는 처음으로 3명 이상의 영구결번을 보유한 구단으로 기록됐다.
삼성은 KBO리그 통산 최다 안타 기록을 남기고 떠난 양준혁의 10번을 2010년 구단 두 번째 영구결번 리스트에 올렸다. KIA도 선동열 다음으로 2012년 '바람의 아들' 이종범의 7번을 광주 그라운드에 묻었다. 역대 최고의 포수로 꼽히는 박경완은 2014년 은퇴하면서 26번을 SK 와이번스(현 SSG) 최초의 영구결번으로 남겼다. 3년 뒤인 2017년엔 '적토마' 이병규의 9번이 김용수에 이은 LG 두 번째 영구결번으로 기록됐다.
#이승엽과 김태균도 영원한 역사가 됐다
이승엽은 2017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그러나 삼성은 그가 은퇴하기 한참 전부터 35번을 영구결번으로 결정한 상태였다. 은퇴와 동시에 KBO 역대 14번째이자 삼성 구단 두 번째 영구결번으로 확정됐을 뿐이다.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당연한 수순이다.
이승엽은 삼성을 넘어 KBO리그 역대 최고 타자로 꼽힌다. 통산 홈런 467개로 압도적인 1위에 올라 있고, 한 시즌 최다 홈런 역대 1위(2003년 56개)와 2위(1999년 54개) 기록도 혼자 보유하고 있다. '홈런'의 역사를 되짚을 때 이승엽의 이름을 빼놓고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한국 국가대표팀 역사에서도 그렇다. 그는 한국 야구에 '8회의 기적'이라는 단어를 선물한 선수다. 은퇴가 예고됐던 2017년 전국의 야구장에서 최초의 '은퇴투어'가 열린 이유다.
3년이 지난 올해는 15번째 영구결번 선수가 탄생했다. 한화 김태균(39)이다. 김태균은 2001년 한화에 입단한 뒤 일본 NPB 지바 롯데(2010·2011년) 시절을 제외한 전 시즌을 한 팀에서만 뛰었다. 입단 첫해 신인왕에 올랐고, 한화 타자로는 최초로 2000안타를 돌파했다. 프로 통산 2014경기에 출전해 통산 안타 3위(2209안타), 출루율 2위(0.421), 타율 5위(0.320), 홈런 공동 11위(311개) 등의 족적을 남겼다.
김태균은 지난 5월 29일 은퇴식에서 팬들과 눈물의 작별 인사를 나눈 뒤 이글스 네 번째 영구결번의 영광을 함께했다. 김태균의 등번호 52번은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 걸린 장종훈, 정민철, 송진우의 번호 옆에 나란히 자리 잡았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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