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리그 최초 흑인 선수 재키 로빈슨 등번호 42번은 전 구단 결번
길고 묵직한 양키스의 영구결번 리스트는 팀의 화려한 유산과 남다른 자부심을 반영한다. 유일한 흠이 있다면 현역 선수들이 선택할 수 있는 등번호 범위가 너무 좁아졌다는 거다. 일례로 양키스 현역 선수 중엔 한 자릿수 등번호를 단 선수가 아무도 없다. 1번부터 9번까지 모두 영구결번으로 묶여 있어서다.
1번은 양키스 감독을 다섯 차례 맡았던 빌리 마틴, 2번은 월드시리즈 5회 우승을 이끈 '영원한 주장' 데릭 지터, 3번은 전설적인 홈런왕 베이브 루스가 썼던 번호다. 4번은 2130경기에 연속 출장했던 '철마' 루 게릭, 5번은 56경기 연속 안타를 때려냈던 명 타자 조 디마지오, 6번은 1996~2007년 양키스 지휘봉을 잡고 월드시리즈 4회 우승을 이끈 조 토레 감독이 각각 갖고 있다.
7번은 양키스에서 월드시리즈 우승을 7번 경험한 스위치히터 미키 맨틀의 번호다. 8번은 1972년 최초의 '공동 영구결번'으로 지정됐다.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 7개를 소유한 빌 디키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명언으로 유명한 요기 베라가 현역 시절 같은 번호를 썼기 때문이다. 9번은 로저 매리스다. 그는 1961년 홈런 61개를 때려내 당시 베이브 루스가 갖고 있던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경신했다. 후배 선수들이 불평을 하려다가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는 리스트다.
이 외에도 필 리주토의 10번, 서먼 먼슨의 15번, 화이티 포드의 16번, 호르헤 포사다의 20번, 돈 매팅리의 23번, 엘스턴 하워드의 32번, 케이시 스텐겔의 37번, 마리아노 리베라의 42번, 레지 잭슨의 44번, 앤디 페티트의 46번, 론 기드리의 49번, 버니 윌리엄스의 51번이 영구결번으로 남았다. 모두 양키스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대표 선수들이다.
이 중에는 MLB 전체 선수가 사용할 수 없는 번호도 있다. 재키 로빈슨의 42번이다. 빅리그 최초의 흑인 선수였던 로빈슨은 인종차별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면서 미국 내 흑인 선수들의 인권 향상에 큰 공을 세웠다. 1954년 미국 대법원의 인종차별 위헌 결정과 인종차별 금지 민권법 제정에도 영향을 미쳤다. 1962년 흑인 선수로는 처음으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이 번호가 1997년 MLB 30개 구단에서 공히 영구결번으로 지정된 이유다.
1998년부터는 영구결번 선포 이전에 42번을 쓰던 선수들만 그대로 등번호를 유지했다. '마지막 42번 선수'였던 양키스 마무리 투수 리베라가 2013년 은퇴하면서 마침내 42번의 전 구단 영구결번이 완성됐다. 양키스는 MLB 역사상 최고의 클로저로 이름을 날린 리베라의 42번을 로빈슨과 별개의 팀 영구결번으로 선포해 경의를 표했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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