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월 스티브 잡스가 샌프란시스코에서 태블릿 PC ‘아이패드’를 선보이고 있다. AP/연합뉴스 |
지난 10월 이후 공개석상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있던 잡스가 최근 다시 모습을 감추자 IT 업계 전반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지난 2009년 6개월이라는 기한을 정하고 떠났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복귀 시점을 밝히지 않아 사태가 매우 심각한 것 아니냐며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벌써부터 ‘포스트 잡스’ 시대를 구상하면서 빠른 시일 안에 잡스의 후계자를 발표해야 한다는 의견에도 무게가 실린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잡스가 없는 애플은 애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뉴욕타임스>), “애플은 잡스 없이도 계속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애플일까?”(<데일리 파이낸스>)라는 언론의 보도처럼 많은 사람들이 잡스와 애플을 떼어놓고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사람들의 바람대로 과연 이번에도 잡스는 무사히 귀환할 수 있을까. 아니면 이대로 영영 은퇴를 선언할까.
지난 10월 경, 잡스를 마지막으로 목격한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현재 상황은 그다지 낙관적이지만은 않은 듯하다. 애플 본사에서 잡스를 보았다고 말한 익명의 한 직원은 “당시 사무실에 출근하는 날이 일주일에 이틀 정도로 부쩍 줄었다. 그리고 눈에 띄게 수척해진 모습이었다”면서 “점심도 평소 이용하던 회사 구내식당 대신 사무실 안에서 먹는 날이 많았다”고 말했다.
또한 어떤 사람은 “때로는 혼자 걷는 것조차 힘든지 옆 사람에게 기대서 걷곤 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잡스는 17일자 이메일에서 “건강 문제에 집중하기 위해서 잠시 병가를 떠난다. 회사의 전략적 결정에는 계속 참여할 것”이라며 더 이상의 구체적인 해명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당분간 임시 경영권을 팀 쿡 최고운영책임자(COO)에게 맡긴다고 덧붙였다.
앞서 말했듯 잡스의 이번 병가 발표가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도 복귀 시점이 불투명하다는 데 있다. 예전과 달리 그가 스스로 복귀 시점을 명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1년 넘게 자리를 비우거나 혹은 아예 이대로 영영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등 갖가지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이에 잡스가 언급한 건강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가장 그럴 듯한 주장은 췌장암이 재발했거나 이식받은 간에 암세포가 다시 번졌거나 간이식 부작용이 발생했다는 의견이다.
잡스는 췌장암 가운데서도 희귀한 유형인 신경내분비계암을 앓고 있다. 췌장암 환자의 80~90%가 앓는 췌관에 암이 생기는 외분비계암에 비해 잡스의 췌장암은 췌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을 생성하는 신경내분비세포에 생기는 종양으로, 발병률은 1% 정도로 낮지만 외분비계암보다 생존율은 훨씬 높은 편이다. 따라서 긍정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전문가들은 5년 이상 생존율을 50% 이상으로 보고 있으며, 완치는 불가능해도 적절한 치료만 받으면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이번 병가를 낸 이유가 스위스 바젤대학병원에서 방사선 치료를 받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있다. 바젤대학은 암세포만 골라서 방사선으로 쏘는 특수치료법을 개발해서 유명한 곳이며, 잡스는 지난 2009년에도 한 차례 이 대학에서 방사선 치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단, 문제는 암세포가 새로 이식받은 간으로 다시 전이됐을 경우다. 이런 경우에는 이미 다른 장기에도 전이됐을 가능성이 크며, 생존율은 그만큼 훨씬 낮아진다.
또 다른 추측에 따르면, 이식받은 간이 거부반응을 일으키고 있거나 혹은 간을 이식받은 사람들에게서 흔하게 나타나는 면역력 저하로 인한 문제일 수 있다. 간이식 환자들은 거부반응을 줄이기 위해 면역 억제제를 주기적으로 복용하는데 이럴 경우 오히려 고혈당 및 고혈압, 당뇨, 신장 손상, 콜레스테롤 수치 증가, 백혈구 감소 등의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이처럼 자신을 끈질기게 괴롭히고 있는 잡스의 췌장암과의 사투는 지난 2004년 처음 시작됐다. 당시 잡스는 자신이 췌장암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이메일을 통해 공개 발표했으며, 이 발표는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 그 자체였다. 췌장암의 경우 보통 발병 후 1~2년 안에 사망하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할리우드의 스타 패트릭 스웨이지의 경우에는 2008년 초 진단을 받은 후 불과 1년 6개월여 만인 2009년 9월 사망하기도 했다.
당시 잡스는 이메일에서 “다행히도 암을 빨리 발견했기 때문에 조기에 수술을 실시하게 됐다”면서 사람들을 안심시켰다. 그의 생각과 달리 충분히 빠르지 않았던 걸까. 4년 후인 2008년 6월, 아이폰 3G 발표회장에 나타난 잡스의 모습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한눈에 봐도 몸무게가 눈에 띄게 줄어 몹시 수척해져 있었던 것. 이에 언론들은 ‘잡스의 건강에 문제가 있다’며 수군대기 시작했고, 췌장암이 재발했다는 소문부터 곧 그가 사망할지 모른다는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해 10월, 잡스는 이런 소문을 비웃듯 아이팟 신모델을 발표하는 무대에 다시 올라서 45분간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당시 그는 대형 스크린을 통해 “나의 죽음에 관한 기사는 매우 과장된 것”이라면서 “스티브의 혈압 110/70”이라는 자막을 내보내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던 모양. 이듬해 1월 14일 잡스는 다시 병가를 발표했다.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잡스는 “6개월간 병가를 떠난다. 생각했던 것보다 건강 문제가 복잡한 것 같다. 하지만 쉽게 치료 가능한 문제다”면서 여름에 다시 복귀할 것을 약속하고 떠났다.
그리고 6월 29일 잡스는 자신의 약속대로 다시 경영에 복귀했다. 그 후 그는 보란 듯이 더욱 정력적으로 활동하면서 아이폰4와 아이패드를 연달아 선보였고, 사람들 역시 한동안 잡스의 건강 문제보다는 그가 발표하는 신제품에 더욱 관심을 기울였다.
그로부터 2년여 만인 현재 그의 건강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른 상태. 이제 사람들의 관심은 자연히 ‘잡스 없는 애플의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하는 데 쏠려 있다.
많은 언론들은 애플의 미래에 대해 다소 어두운 전망을 내놓고 있다. 전문가들은 애플의 수익은 지난 10년 동안 잡스가 이뤄놓은 성공을 바탕으로 적어도 2~3년간 계속 증가할 테지만 아마도 과거와 같은 애플은 더 이상 아닐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기술 분석가인 로저 케이는 “잡스가 없는 애플은 다른 기업과 별반 다를 게 없어질 것이다. 다른 기업과 차별화됐던 애플의 비상함이 사라질 것”이라고 점쳤다. 또한 애널리스트인 진 먼스터는 “애플은 잡스 없이도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계속 제품을 생산하고 판매할 것이다. 하지만 영감 있는 제품이나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획기적인 제품은 아마 더 이상 나오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문제의 핵심은 잡스의 영감을 대신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실제 지금까지 애플을 대표했던 획기적인 제품들(아이폰, 아이패드 등)은 모두 잡스의 오랜 꿈과 상상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그는 항상 멀리 내다보는 비전을 제시하는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또한 무대 위에서 대중을 사로잡는 카리스마와 추진력, 협상력, 완벽주의는 지금의 애플을 키워낸 주된 요인 중 하나였다.
그렇다면 잡스 없는 애플은 정말 내리막길을 걸을까. 이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지난 2009년 병가 때에도 이런 논란이 있었다면서 당시 잡스가 꾸려 놓은 열정적인 운영팀은 이런 걱정을 무난하게 잠재웠다고 말했다. 때문에 잡스 이번에도 다른 임원들을 믿고 병가를 떠났을 것이라면서 이제는 잡스를 대신할 후계자를 하루빨리 찾아내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과연 잡스는 이대로 은퇴를 선언할까. 지금까지 보여준 애플의 연이은 성공 신화 못지않게 많은 사람들은 잡스 본인의 인생에서도 기적 같은 신화를 쓰길 바라고 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애플 2인자 쿡, 후계 1순위 콕!
스티브 잡스가 다시 병가를 발표하자 현재 사람들의 관심은 잡스의 곁에서 함께 회사를 운영해왔던 몇몇 임원들에게 쏠리고 있다. 과연 이들 가운데 누가 잡스의 빈자리를 대신해서 앞으로 애플을 이끌어나갈까 하는 궁금증 때문이다. ‘포스트 잡스’ 후계구도를 점칠 때마다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리고 있는 인물들로는 누가 있는지 살펴봤다.
* 티모시 쿡(최고운영책임자)
▲ 스티브 잡스 후계자 1순위로 거론되고 있는 ‘애플의 2인자’ 티모시 쿡. |
지금까지 잡스의 빈자리를 무난하게 잘 메웠다는 평을 받고 있지만 잡스와 같은 카리스마나 위풍당당한 면은 부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IBM과 컴팩을 거쳐 1998년 애플에 입사했으며, 현재 애플 제품의 공급망 관리 및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모교인 오번 대학의 명예학위 수여식 연설에서 “당시 모든 사람들은 애플로 옮기는 나를 보고 미쳤다고 말했다. 하지만 잡스와 처음 인터뷰한 지 5분 만에 나는 앞뒤 가리지 않고 무조건 애플에 입사할 것을 마음먹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비효율적이었던 애플의 공급망을 효율적으로 전환해했으며, 덕분에 애플은 2007년 공급망 관리 및 활용능력 평가 부문에서 세계 2위 기업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가령 아이패드가 잡스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제품이라면, 1500만 대의 아이패드를 9개월 만에 전 세계에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출하할 수 있었던 것은 쿡의 탁월한 운영능력 덕분이었다.
열정적이면서도 세심하고 꼼꼼한 면이나 끈질긴 집념은 잡스와 닮았지만, 잡스가 다소 변덕스러운 성격인 반면 쿡은 말수가 적고 조용한 스타일이다. 혼자 지내는 것을 좋아하는 탓에 애플 동료들과도 잘 어울리지 않으며, 부드럽고 예의 바른 스타일로 ‘남부 신사’라고 불린다. 평생 독신으로 아직도 임대주택에서 살고 있을 정도로 검소한 생활을 하고 있다.
지난해 연봉 80만 달러(약 8억 9000만 원)와 보너스 500만 달러(약 56억 원)를 벌어들이고 그가 보유한 애플 주식은 7만 5000주로 5910만 달러(약 660억 원)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 조나단 아이브(산업디자인 부문 수석부사장)
잡스가 애플의 두뇌를 책임지고 있다면, 아이브는 아름다움을 책임지고 있다. 애플 제품의 외관과 감정, 즉 제품 디자인을 담당하는 수석디자이너다. 런던 출신이며 잡스와 업무 외적으도로 두터운 친분을 자랑한다.
말수가 적은 과묵한 스타일로 <비즈니스위크>는 그를 가리켜 ‘커튼 뒤의 남자’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완벽주의자인 잡스를 만족시키는 그의 능력 때문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애플 직원들조차 절대 작업실에 들어오지 못하게 할 정도로 비밀스럽게 일을 하는 그의 업무 스타일 때문이기도 하다.
1992년부터 애플에 몸담고 있으며, 연간 100만 달러(약 11억 원)를 벌고 있다.
* 필립 W. 쉴러(글로벌생산마케팅 부문 수석부사장)
20년 동안 애플에 장기 재직면서 애플 제품의 마케팅을 책임지고 있다. 뛰어난 언변으로 애플의 ‘쇼맨’ 역할을 맡고 있으며, 2009년 잡스가 자리를 비웠을 때 맥월드 트레이드 쇼와 애플 세계개발자컨퍼런스 무대에 올라가서 아이폰 3GS와 맥북 프로 신형을 발표해서 관심을 모았다.
* 스콧 포스탈(아이폰 소프트웨어 부문 수석부사장)
소프트웨어가 스마트폰과 태블릿 PC에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면서 지위가 급부상했다. 아이폰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인물로, 지금까지 애플의 성공에 가장 많은 기여를 한 키플레이어로 인정받고 있다.
세심하고 꼼꼼한 성격이며, 최근에는 종종 트위터에 접속해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고 있다. 비밀 정책을 고수하기로 유명한 애플 직원이 개방성을 강조한 트위터에 모습을 드러내다니 놀라울 수밖에 없었던 것. 이에 대해 기술 전문가들은 아마도 그가 다음 애플 제품군을 개발하는 데 있어 소셜미디어 사이트를 응용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
* 론 존슨(소매 부분 수석부사장)
대형할인점 ‘타깃’에서의 성공으로 2000년 애플에 입사했다.
애플이 세계에서 가장 소비자에게 친근한 기업이 되도록 만드는 데 공을 세웠으며, 언변이 뛰어나서 종종 애플의 대변인 역할을 겸하고 있다. 애플 직원들 사이에서 잡스의 뒤를 이을 유력한 인물로 꼽히고 있다.
* 피터 오펜하이머(최고재무책임자)
1996년부터 애플에 재직하고 있으며, 2004년부터 최고재무책임자직을 맡고 있다. 3개월에 한 번씩 애플의 분기별 실적을 보고하는 컨퍼런스 콜에 나와서 수익 보고를 하는 업무도 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