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시절 ‘돈봉투’ 사건 곤욕 치러…비대면 선거에도 수천만원 기탁금 부담은 여전
#국민의힘 전대 잔혹사
“바람은 돈과 조직을 이기지 못한다.”
2010년 7월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 당 대표를 뽑는 전당대회가 끝난 뒤 홍준표 당시 후보가 한 말이다. 소문으로만 돌던 ‘뒷돈 문화’를 언급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파문이 일었다. 홍준표 후보는 국민여론조사에서 지지율 23.2%를 얻고도 안상수 후보에게 패배했다. 안상수 후보 지지율은 20.3%였다. 승부는 70%가 반영되는 대의원 투표에서 갈렸다. 안 후보는 3021표를 얻은 반면 홍 후보는 2372표를 얻었다.
홍준표 의원 발언에 대해 비난이 잇따랐다. 한선교 전 의원은 보도자료를 내고 “홍 의원은 오버하지 말고 자제해야 한다”며 “(홍 의원) 발언은 후안무치하다 아니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홍 의원이 쏘아올린 의혹은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주목을 받았다. 고승덕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전 의원이 돈 봉투 전대 의혹을 폭로하면서다. 고 전 의원은 2011년 11월 서울경제에 쓴 칼럼에서 2008년 전대에서 돈 봉투가 오갔다고 말했다. 그땐 관심을 끌지 못했지만 2012년 1월 채널A ‘박종진의 쾌도난마’에 출연해 다시 언급한 뒤 화제가 됐다.
고 전 의원이 폭로한 내용은 2008년 한나라당 전대를 앞두고 박희태 당시 국회의장이자 당 대표 후보가 김효재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을 시켜 자신의 비서에게 300만 원이 든 돈 봉투를 건넸다는 것이었다. 박 전 의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나도 모르는 일”이라고 관련 사실을 부인했지만 검찰 수사 끝에 재판에 넘겨져 2012년 12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유죄를 선고받았다. 박 전 의장은 혐의를 인정한 뒤 항소하지 않았고, 이명박 전 대통령 특별사면으로 복권됐다. 금권선거 단면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순간이었다.
금권선거를 강하게 비판했던 홍준표 의원 또한 자신이 당 대표로 뽑혔던 2011년 전대를 앞두고 돈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이 홍 의원에게 1억 원을 전달했다는 진술이 나오면서다. 물론 홍 의원은 재판에서 혐의를 벗었다. 1심에선 징역 1년 6개월 실형을 받았지만 2심에서 무죄를 받았고 대법원은 무죄를 확정했다.
#비대면 선거, 돈보다 후보 역량 주요
국민의힘 출신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이젠 돈 봉투를 돌리는 문화는 없다고 봐야 한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과거 대의원 1만 명에서 2만 명이 체육관에서 투표로 당 대표를 뽑던 때엔 대의원들이 버스를 빌려 오기 때문에 차비랑 식비 등 ‘거마비’ 명목으로 주던 때가 있었다. 대의원 1인 2표제였을 땐 한 명 한 명이 아쉬웠다. 공보물 제작하고, 차량 빌리고, 문자 돌리고, 우편 보내고 하는 공식적인 선거 비용이 아니라 거마비가 훨씬 많이 들 수밖에 없었다. 각 후보가 20억~30억 원씩 쓴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이젠 선거인단이 당원 전체에다가 1인 1표를 행사하고 국민여론조사까지 반영하는데 어떻게 다 돈을 주겠나. 돈 봉투를 뿌리는 건 이제 말이 안 된다.”
‘박희태 국회의장 돈 봉투 사건’이 터진 뒤 한나라당은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바꾸고 쇄신을 천명했다. 2012년 치러진 전당대회에선 기존 1억 2000만 원이었던 당 대표 후보 기탁금마저 없앴다. 핵심 당원, 일반 당원까지 투표권을 주는 등 2만 명 남짓에 불과했던 선거인단을 확대했다. 6월 11일 국민의힘 전당대회 선거인단은 32만 8000여 명에 달한다. 대의원은 국회의원, 지역당협위원장 등을 말하고, 핵심 당원은 3개월 이상 당비를 낸 당원을 말한다.
특히 이번 국민의힘 당 대표 선거는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선거로 진행되면서 각 후보가 큰돈을 쓸 일이 없었다는 설명이다. 이준석 후보 측 관계자는 “유세할 사람들을 모을 일 없으니 식사 대접이라든지 돈을 아예 쓰지 않았다”며 “이번 선거는 후보 개인 역량 99%로 결정되는 선거”라고 평가했다.
#기탁금, 여전히 높은 벽
비대면 선거로 치러지는 만큼 당 차원에서도 선거 비용이 적게 들지만 여전히 당 대표 기탁금이 부담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당 대표 후보 등록의 경우 예비경선과 본경선에서 각각 4000만 원씩 총 8000만 원을 내야 한다. 최고위원 후보 등록은 3000만 원, 청년 최고위원 후보 등록은 원내가 1000만 원, 원외가 500만 원이다. 기탁금은 한 번 내면 다시 돌려받을 수 없다. 경선 참가비용인 셈이다.
국민의힘 당 대표 예비경선을 통과하지 못한 김웅 의원은 “기탁금이 전당대회를 준비하며 현실적으로 가장 어려운 점”이라며 떨어진 뒤엔 추가로 4000만 원을 내지 않아 오히려 다행이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정양석 국민의힘 사무총장은 “비대면으로 진행되다보니 큰 체육관을 빌릴 필요도 없는 등 선거비용이 적게 든 건 맞다”면서도 “선거 비용이 들어가고 공보물 제작, 문자 발송, 선관위에 지불하는 돈까지 고정 비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비대면 선거에 맞게 기존 1억 원이던 기탁금을 8000만 원까지 낮췄다는 게 국민의힘 설명이다.
더불어민주당도 국민의힘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당 대표와 최고위원 후보의 예비경선 등록 기탁금은 각각 500만 원인데, 본경선에 진출하면 당 대표는 예비경선 기탁금을 포함해 8000만 원, 최고위원은 3000만 원의 기탁금을 내야 한다. 정의당은 과거에 비해 기탁금을 확 낮췄다. 정의당 전당대회 비용은 당 대표 후보 등록이 1000만 원, 부대표는 200만 원, 청년정의당 당대표 후보 등록은 50만 원이다. 정의당은 예비경선 없이 곧장 본경선을 치른다.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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