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계 커넥션 장소’ 강남 유흥주점 수면 위로…사실혼 관계 백씨 국내서 도피 지원 알려져
#‘핵심’ 지목된 배경
라임 일당은 펀드로 끌어 모은 자금으로 수십여 개 코스닥 상장사를 인수해 주가를 조작하고 자금을 횡령해 투자자들을 나락으로 빠뜨렸다. 사건 관련자들은 “최근의 재판은 라임과 펀드 판매사 관계자를 처벌하는 데 그쳤다”며 “현재까지 드러난 정·관계 로비 의혹은 빙산의 일각”이라고 주장한다. 정작 모든 의혹의 키를 쥐고 있는 핵심 인물 김영홍 메트로폴리탄 회장이 잡히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의 행방이 아직까지 묘연하기 때문이다. 김영홍 회장은 펀드 투자자 피해와 코스닥 상장사 인수 사이 ‘펀드 돌려막기(특정 펀드의 손실 발생을 회피하기 위해 다른 펀드 자금을 투자하는 행위)’라는 연결고리 역할을 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김영홍 회장은 라임 관련 재판과 언론보도에서 ‘주범’ 혹은 ‘몸통’으로 수차례 이름이 등장했다.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은 라임사태 핵심으로 김영홍 메트로폴리탄 회장과 이인광 에스모 회장, 김정수 리드 회장 등을 지목했다. 메트로폴리탄은 라임 펀드에서 가장 많은 금액(3500억 원)을 빼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김 회장은 자신의 지인을 앉혀둔 14개 메트로폴리탄 계열사를 통해 파주 프로방스마을 인수, 필리핀 이슬라리조트 카지노 인수, 캄보디아 개발사업 등을 전개했다. 향군상조회 인수를 시도하기도 했다.
검찰은 그간 라임자산운용과 라움자산운용, 메트로폴리탄, 스타모빌리티 등 라임사태 관계사와 관련자들을 조사하고 재판에 넘겼다. 그러나 정작 해외 도피 중인 김영홍 회장에 대한 조사는 지지부진했다. 김 회장과 함께 움직였던 채 아무개 메트로폴리탄 공동대표와 박 아무개 메트로폴리탄 전 사내이사 등은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 재판에 검찰 측 증인으로 나서고 있다. 윤 전 고검장은 라임 펀드 판매 재개를 위해 우리은행 측에 로비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종필 전 라임자산운용 부사장과 함께 윤갑근 전 고검장에 로비를 청탁한 것으로 알려진 김영홍 회장은 최근까지 사진 한 장 공개되지 않았을 정도로 베일에 감춰져 있던 인물이다. 그러나 지난 3월 김 회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A 씨가 귀국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A 씨는 10년가량 김영홍 회장과 인연을 맺은 인물로, 2018년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필리핀 현지 이슬라리조트에 근무하며 김 회장과 텔레그램으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A 씨는 김 회장이 실소유한 서울 강남구 한 유흥주점, 이른바 ‘셔츠룸’의 바지사장으로 이름을 올렸다. A 씨의 존재는 해당 유흥주점이 국세청의 조사를 받으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고, 귀국 이후 두 번의 검찰조사와 한 번의 경찰조사를 받으며 김 회장에 대해 진술했다.
강남 모처에서 일요신문과 만난 A 씨는 김영홍 회장이 라움 부회장 직책으로 활동하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김 회장은 라움 부회장 명함을 들고 다니기 전까지 도박업장 매니지먼트나 유흥주점 관리를 해왔다. 지금이야 ‘회장’이나 '핵심' ‘몸통’ 등으로 불리지만 원래는 금융업이나 건설업에 몸담지도 않았고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인물도 아니라는 것이다.
김영홍 회장은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원정도박 당시 환치기(불법 외환거래)를 담당했다. 2010년 정 회장이 자회사 자금 대신 넘겨받은 강남구 L 호텔 12~13층의 전세권을 룸살롱 업자에게 임대해주고 매달 3000만 원씩 수익을 챙기는 과정에서도 중간다리 역할을 했다. 2016년 검찰조사로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나고, 정 대표가 횡령 혐의로 추가 기소되면서 김 회장과 정 대표 사이는 틀어졌다.
A 씨는 “현재 재판에서 라임 관계자들(채 아무개 메트로폴리탄 공동대표와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 등)이 증언한 내용 중 일부는 사실과 거리가 있다”며 “채 대표는 김 회장이 메트로폴리탄 관계사를 통해 투자 집행을 잘 하고 있는지 감시하기 위해 이종필(전 라임자산운용 부사장) 측에서 파견한 인물이지, 김 회장 사람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체포 단서
이후 김영홍 회장은 박성찬 라움 회장과 친분으로 개인적 용무를 처리해주며 라임 일당에 합류했다. 김 회장은 라임사태 이전 ‘라움 부회장’으로 명함을 만들어 활동하고 다녔으나 월급을 받지는 않았다. 대신 라움의 건설·개발 사업에서 크고 작은 문제를 해결해주는 대가로 수수료나 커미션, 백마진 등을 챙겼다. 김 회장은 라움의 평택 아파트 개발 등 대형 프로젝트에도 일조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영홍 회장의 역할은 라임사태 당시 두드러진다. 김 회장은 최근 국세청 조사로 실소유 관계가 드러난 강남구 유흥업소에서 ‘그들만의 네트워크’를 돈독하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라임 일당은 2018~2019년 해당 업소에서 투자사를 결정하거나 정·재·관계 인사를 만났다. 해당 업소에서는 한 법조계 인물이 두 차례 술자리에 동석했는데, 사실상 유흥주점 오너에 불과한 김 회장의 뒷배로 추정된다. 김 회장은 도피 직전에도 이 인물과 만남을 가진 것으로 전해진다. 김 회장이 체포될 경우 라임과 관련한 정·관계 로비 의혹의 실체가 드러날 수 있다.
A 씨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서 김영홍 회장의 도피를 돕는 인물은 메트로폴리탄 이사로 이름 올린 백 아무개 씨(여)다. 김 회장과 사실혼 관계인 인물로 둘 사이에 자녀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백 씨는 최근까지도 김 회장의 도피 자금을 대기 위해 강남 유흥주점에서 환치기를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또 김 회장의 도피 자금줄 핵심인 필리핀 이슬라리조트의 허수아비 주주로 세워둔 현지인 가정부 B 씨를 국내로 불러들여 여권을 압수하고 감시 중이다. A 씨는 “백 씨가 텔레그램으로 김 회장과 연락하며 도피를 돕고 있다”며 “백 씨가 B 씨와 국내에 함께 있다”고 단언했다.
이슬라리조트는 김영홍 회장이 2018년 10월 라임 돈 300억 원을 투자해 인수한 리조트로, 온라인카지노 등을 통해 여전히 김 회장의 도피 자금줄로 활용되고 있다. 당시 메트로폴리탄 채 대표는 계열사들로부터 300억 원을 대여 받아 리조트 매각 대금 295억 원을 지불했다.
필리핀은 자국민의 사업과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외국인이 국내 사업에 투자할 경우 40% 이상 지분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제한한다. 때문에 외국인이 경영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현지인 명의를 빌려 허수아비 주주 ‘더미’를 내세운다. 필리핀 정부는 ‘더미방지법’을 통해 이 같은 불법 행위를 단속하고 있다.
김영홍 회장은 이슬라리조트에 현지인 가정부 B 씨와 그의 친인척 1명을 ‘더미’로 세워뒀다. 실제로 이슬라리조트 GIS(등본·주주명부)에는 이슬라리조트 주주로 현지인 가정부 B 씨와 이슬라리조트에 근무했던 B 씨의 친인척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A 씨에 따르면 그 외 나머지 주주들도 이슬라리조트에 근무하는 인물이거나 그 관계자들이다. 주주로 이름을 올려둔 B 씨를 확보하면 김 회장이 더미를 세워두고 이슬라리조트를 실질 지배하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고, 김 회장의 도피 자금줄까지 끊을 수 있는 셈이다.
카지노업계 한 관계자는 "실제로 지난해 초 이슬라리조트 카지노 매입을 위해 김 회장 측 인물과 접촉했던 국내 업자가 있다"고 전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김 회장 측은 2019년부터 2020년 중순까지 이슬라리조트 카지노를 매각하기 위해 국내외 업자들과 미팅을 가졌다. 또 매각 협상을 위해 필리핀 마닐라 소재의 오카다, COD 호텔 등을 방문하고 이슬라리조트의 온라인 ‘아바타 카지노’를 확대하기도 했다.
김영홍 회장의 불법 도박장 운영 의혹을 검찰에 고발한 고발인은 ‘아바타카지노’ 확대를 포착하고 현황을 조사해 지난 2월 25일 서울남부지방검찰청에 제출했다. 고발인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월 11일 하루에만 5개 테이블에서 24시간 온라인카지노 영상이 송출됐다. 추정 수익금은 2억 8000만 원이다. 지난해 말 4개로 운영되던 온라인카지노 테이블은 올해 초 5개로 증가했고, 지난 5월 말에는 8개 테이블로 확대됐다.
채권 추심을 위해 김영홍 회장을 추적 중인 백왕기 변호사는 “필리핀이 코로나19 사태로 락다운(이동제한·봉쇄) 상태지만 추방돼 국내에서 체포된 범죄자들이 많은데, 아직까지 김 회장이 잡히지 않는 것이 의문”이라며 “국내에 김 회장을 비호하는 세력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어 “김 회장은 라임사태가 발생한 원인과 피해가 확대되는 원인을 제공한 인물인 데다 라임자산운용을 둘러싼 정·관계 커넥션 의혹의 핵심인물”이라며 “김 회장을 체포하면 이슬라리조트 사기 분양 사태 피해자 350여 명을 구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라임자산운용을 둘러싼 커넥션 의혹 실체를 규명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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