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들에 거액 빌려 도박 탕진 후 연락 두절…깨끗한 이미지 믿었던 B엔터 대표는 50억 빚더미에
유정호 씨는 사기꾼을 응징하는 등 공익적 콘텐츠로 인기를 얻었다. 돈을 많이 빌려 간 사람이 사치를 부린다는 얘기를 들으면 그가 쫓아가 참교육 시켜주는 콘텐츠도 있었다. 유 씨는 유튜버로 활동하기 전 ‘웃긴대학’(웃대) 커뮤니티에서 선행과 봉사로 유명했고 유튜브로 옮겨와 명성이 더욱 커지며 100만 명 이상 구독자를 확보했다.
유 씨는 유튜브나 커뮤니티 활동 외에도 화장품 사업으로 유명했다. 2014년부터 유 씨 어머니는 수제비누를 판매했다. 유 씨가 명성을 얻으면서 비누를 사서 인증 글을 올리면 베스트 글에 자주 선정됐다.
유 씨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면서 수익 창출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구독자들이 ‘제발 광고 좀 넣어달라’고 할 정도로 유튜브 수익을 외면했다.
그의 깨끗한 이미지 덕분에 사람들은 ‘선행을 하는데 광고도 받지 않는다’면서 그가 판매하는 화장품을 사줬다. 화장품 사업은 번창했고 유 씨는 고급 수입차나 슈퍼카를 몰기도 했다. 일요신문이 만난 유정호 씨 지인들은 2020년 6월경까지는 큰 문제가 없었다고 했다.
2020년 7월쯤 유 씨는 지인들에게 “급전이 필요한데 여윳돈이 있으면 좀 빌려달라”고 했다. 유 씨가 요구한 돈은 그 사람 형편에 맞는 정도였다. 박 아무개 씨에게는 3000만 원, 유 아무개 씨에게는 300만 원으로 시작했다. 유 씨는 급전이 필요한 이유로 “발주를 해야 하는데 돈이 부족하다”라거나 “자재를 사야 하는데 현금이 없다”라면서 며칠 만에 돌려주고 이자까지 쳐주겠다고 했다.
유 씨가 제안한 이자는 단기간 돌려주는 것에 비하면 꽤 큰 액수였다. 며칠 만에 5~10% 이자를 주기도 하고 한 달 만에 15% 이자를 주기도 했다. 유 씨는 이렇게 빌리고 다시 이자를 갚으면서 액수를 조금씩 늘려갔다. 앞서 피해자 유 씨는 “유정호 씨는 100만 유튜버인 데다 커뮤니티나 유튜브에서 선행의 아이콘으로 유명했다. 그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했다.
몇몇은 유 씨를 존경하는 마음에 이자를 안 받기도 했고, 일부는 이자를 받기 위해 돈을 빌려줬다. 한 유명 유튜버도 꽤 많은 이자를 받았다고 한다.
지난 3월 유 씨는 B 엔터테인먼트에 합류한다는 영상을 올렸다. 극단적 선택을 시도해 충격을 준 얼마 뒤 갑작스럽게 이런 발표를 하자 구독자들은 동요했다. 논란은 있었지만 그럼에도 유 씨를 지지하는 목소리가 컸다. 유 씨가 오랫동안 선행을 베풀어 이미지가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지인들 사이에서는 유 씨가 정신과 약 때문에 잠시 오해를 빚었을 뿐 착한 사람이라는 인식에는 변함이 없었다. 영상에서는 힘든 모습을 보였지만 유 씨는 지인들에게 돈을 빌리고 갚기를 반복하며 믿음을 쌓아가고 있었다.
유 씨는 ‘급전이 필요하다’, ‘세금 문제로 계좌에 돈을 넣어야 한다’라면서 지속해서 주변인들에게 손을 벌렸고 일부를 갚은 뒤 다시 빌려 갔다. 앞서 박 씨는 유 씨에게 처음 3000만 원을 빌려줬지만, 그 금액이 증액돼 나중에는 1억 5000만 원까지 늘어났다.
지난 4월 박 씨는 유 씨와 식사를 했다. 박 씨는 당시 식사 자리를 이렇게 회상했다.
“처음 밥 먹으면서 얘기를 듣는데 ‘내가 아는 유정호가 맞나’, ‘그 선행의 아이콘이 맞나’ 하는 의심이 들었다. 허세와 돈 욕심으로 가득 찼고 부를 과시하기 바빴다. 자기가 무슨 차를 타는지, 비서를 어떻게 대하는지 등을 얘기하는데 탐욕이 느껴졌다. ‘급전이 자주 필요하다면서 유튜브 광고는 왜 안 넣느냐’고 물으니, ‘유튜브 광고비는 얼마 안 한다. 광고 안 하면 깨끗한 이미지를 얻을 수 있고 그러면 사람들이 화장품을 사준다. 미스트 그거 다 물이다. 화장품 하나 팔면 마진이 얼마인 줄 아느냐’는 둥 돈 얘기만 실컷 했다.”
4월 중순 B 엔터테인먼트가 유 씨 화장품 회사까지 인수하면서 구독자들은 어리둥절한 상황이 됐다. 2월 유 씨의 '자살 소동' 때 주문했던 회원들은 그때까지 화장품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유 씨는 ‘재고가 쌓여서 힘들다’며 구매를 유도해 놓고는 ‘화장품 용기 생산에 차질이 있다’며 배송 일정을 차일피일 연기했다.
유 씨는 5월 초 돈거래를 하던 지인들에게 가장 많은 돈을 빌린다. 5월 21일 돈을 빌려준 지인들에게 만기보다 빨리 갚기로 한 약속을 지킨다. 그러고 채 1시간이 지나지 않아 유 씨는 ‘사업자 계좌에서 돈을 잘못 빼 큰일이 났다’며 다시 돌려주면 만기 날 갚겠다고 해 지인들은 순순히 돌려준다. 하지만 만기 날짜가 지나도 돈을 갚지 않자 독촉하는 지인들에게 ‘국세청 관련한 문제가 있다’ ‘사업 파트너가 계좌에 돈을 묶어두길 원한다’ 등 각종 거짓말로 상환을 미루기 시작했다. 그러다 5월 28일 연락이 두절됐다.
지인 박 씨는 유 씨가 갑작스럽게 연락이 끊기자 다급한 마음에 그의 어머니에게 연락했다. 유 씨 어머니는 ‘B 엔터에 얘기해봐라’라고 말한다. B 엔터에 찾아간 박 씨는 B 엔터 전 대표 A 씨를 만나게 된다. 박 씨가 “돈을 못 받았다”고 하자 A 씨는 “그게 무슨 소리냐. 얼마 전에 다 갚지 않았느냐”고 하면서 손을 떨었다. 박 씨는 “돈이 들어왔는데 곧바로 유 씨에게 연락이 와서 돈을 돌려줬다”고 했다. A 씨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알고 보니 유 씨와 A 씨 사이에는 3월부터 돈거래가 있었다. 3월 4일 새벽 유 씨는 페이스북에 ‘나에게 3억 원을 해줄 분이 있냐’고 글을 올렸다. 기부 플랫폼을 운영했던 A 씨는 유 씨가 광고 이미지에 딱 맞는 사람이어서 모델로 계약을 원하고 있었다. A 씨는 유 씨에게 3억 원을 빌려주기로 하고 차용증을 썼다. A 씨는 “내가 만든 기부 플랫폼은 유정호 씨를 보면서 만든 사이트였다. 유 씨는 내가 존경하는 인물이었기에 주변 돈 다 끌어서 3억 원을 만들어줬다”고 설명했다.
3월 이후 유 씨는 A 씨에게 거의 매일 수천만 원을 요구했다. A 씨는 ‘유 씨가 100만 유튜버이고 돈을 빌려 가면서 그가 보여준 화장품 사업 매출이 1년에 17억 원이어서 떼일 염려는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액수가 30억 원에 가까워지면서 부담스러워졌다. A 씨가 더 빌려주기 어려운 한도까지 왔을 때 유 씨는 “화장품 회사를 인수해 달라”고 호소했다. A 씨는 ‘연 매출이 17억 원인데 경영을 제대로 하면 매출을 더 늘릴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채무를 변제해 주고 웃돈까지 얹어 화장품 회사를 인수했다.
그렇게 끝나는 줄 알았던 유 씨와의 돈 관계가 다시 얽히게 된다. 유 씨는 A 씨에게 “내가 개인적으로 빌린 채무가 있는데 이 돈 해결 안 하면 채무자들이 나를 고발하는 영상을 올린다고 한다. 그럼 내 이미지는 끝장”이라고 하소연했다. A 씨는 “그래도 유 씨를 살려야 사업이 유지된다고 생각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채무가 얼마냐는 말에 유 씨는 처음에는 9억 9000만 원이라고 했다가, 12억 원이라고 했다가 최종적으로 15억 원을 부른다.
A 씨는 자신의 모든 신용을 끌어다 유 씨의 채무를 해결해 줬다. 이 돈을 5월 21일 유 씨의 다른 지인들이 잠시 받게 된다. A 씨가 돈을 입금할 때 유 씨는 지인들에게 전화해 ‘사업자 계좌’ 등으로 돈을 다시 빼갔다. 알고 보니 유 씨는 이 돈을 도박 자금으로 탕진하고 있었다. 유 씨는 5월 29일 ‘투자 단톡방 사기에 당했다’고 글을 올렸지만, 그의 가족들에 따르면 도박으로 돈을 탕진했다.
결국 B 엔터 전 대표 A 씨는 껍데기뿐인 화장품 회사, 이미지가 훼손된 유튜브 채널 매입과 채무 변제를 포함해 약 50억 원의 빚이 생겼다. 유 씨 지인들은 5억 원, 3억 원, 1억 원, 소액으로는 650만 원 등의 돈을 빌려준 뒤 받지 못했다. 유 씨는 연락이 두절된 상태다. 한 피해자는 “페이스북에 자신이 사기 피해자인 양 코스프레하면서 올려놓은 글을 보며 인간에 대한 혐오가 들었다. 그 때문에 선행한다는 인간들을 불신하게 됐다”며 눈물을 보였다.
A 씨는 “유 씨의 지속적인 사기행각에 또 사고 치겠다 싶어서 정신병원 입원을 가족들에게 권유했다. 면밀하게 살펴보니 유 씨는 입만 열면 거짓말이라 사기 혐의로 고소해 법의 판단을 받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유 씨 가족들은 “유 씨는 6월 14일 정신병원을 퇴원했지만, 대화 나누기는 어렵다”고 전했다.
A 씨는 “이 사건으로 대표직에서 물러나는 불명예를 얻었지만, 피해자 입장에서 추가 피해를 막고 남은 회사 직원들의 미래를 위해 유정호의 실체를 낱낱이 알리겠다. 지금까지 알려진 건 빙산의 일각이다”라고 전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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