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저세 반대” 지난 1월 13일 국가대표 선수 훈련 개시식에서 선수들이 스포츠토토에 레저세를 매기기로 한 지방세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서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만만한 게 체육계다. 열악한 훈련시설, 부족한 예산 지원 때문에 가시밭길을 걸어온 우리다. 그동안 지자체에선 스포츠 사업에 들어가는 예산을 줄이지 못해 안달이었다. 이젠 스포츠토토에 레저세까지 부과한단다. 지자체의 시커먼 욕심 때문에 스포츠인들이 설 곳을 잃고 있다.” 지난 19일, 기자와 만난 한 체육계 지도자의 하소연이다. 지자체의 ‘낭비 경영’으로 인한 재정악화의 화살이 왜 체육계를 향하느냐는 것이다. 지방재정 마련을 위해 스포츠토토에까지 손을 뻗친 지자체가 야속할 따름이다.
스포츠토토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국민체육진흥공단이 한국 스포츠 발전을 위한 기금 조성을 위해 운영하는 국가정책사업이다. 2001년 ‘축구토토’ 발매를 시작으로 농구, 야구, 골프, 씨름, 배구 종목까지 확대된 스포츠토토는 수많은 ‘토토마니아’를 양산하며 스포츠팬들의 새로운 문화요소로 자리매김했다. 스포츠토토 수익금은 관련 규정에 따라 국민체육진흥기금(78%), 발행대상 경기주최단체(7%), 문화·체육사업(7%), 지방자치단체 공공체육시설 개보수 지원(5%)등에 각각 배분된다. ‘토토매니아’들의 베팅액이 고스란히 스포츠 육성 사업에 쓰이고 있는 것. 체육계가 지방세법 개정안을 극렬하게 반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개정안에 따를 경우 레저세 10%가 스포츠토토 전체 ‘수익금’이 아닌 ‘발매액’에 부과되기 때문에 국민체육진흥기금의 규모가 연간 3910억 원에서 1507억 원으로 무려 60%이상 감소하게 된다. 반대로 지자체는 2462억 원(스포츠토토 발매금액 총 1조 7590억 원의 10%인 1795억 원+레저세에 부가되는 지방교육세 703억 원)의 세수효과를 얻을 수 있다. 국가 체육 예산에서 국민체육진흥기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날로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2004년 58%에서 2010년 78%), 대체 재원의 마련 없이 레저세를 부과하면 국내 스포츠 사업의 축소가 불가피하다.
스포츠토토 관계자는 “무엇보다 대한민국 스포츠를 이끌어나갈 유소년 스포츠 지원 사업이 가장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다. 게다가 레저세 부과 자체가 지방체육재정이 아닌 지방재정 확충을 목표로 하고 있고, 레저세 전액이 광역자치단체로 귀속된 후 우선순위에 따라 다양한 재원으로 사용된다는 점을 볼 때 확충된 세수가 지방체육 재원으로 사용된다는 보장이 없지 않은가”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그의 말처럼 지자체는 그동안 스포츠 사업을 외면한 행정으로 체육계의 신뢰를 잃어왔다. 재정난을 이유로 체육관련 총예산을 대폭 삭감하고 운동부를 퇴출시키는 지자체가 줄지어 나타났기 때문. 지난해 11월, 용인시는 시에서 운영하는 21개 운동부를 10개로 줄이고 연간 운영비도 207억 원에서 70억 원으로 감축하는 내용의 계획안을 발표한 바 있다. 극도의 재정난으로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성남시 역시 재정난을 이유로 15개 운동부 중 12개 종목에 대한 폐지의사를 밝혔다. 때문에 시 예산으로 연봉을 받던 직장운동경기부 선수들이 한순간에 실직자가 될 처지에 놓였다. 이에 대해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지자체가 시 자체 예산을 손보며 운동부를 없애는 마당에 레저세를 통해 확보한 자금을 체육계를 위해 과연 얼마를 쓰겠느냐”며 레저세 부과에 혈안이 돼있는 지자체를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이 부분에 대해선 레저세 부과 당위성을 주장하는 시ㆍ도지사협의회 역시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 1월 19일, 기자와 통화한 시ㆍ도지사협의회 관계자는 “사회복지 예산 급증, 중앙정부의 감세정책으로 지자체 사업 수행이 어려운 상태다. 지방재정 확충을 위해 거두는 레저세 10%를 반드시 체육계를 위해서 써야 한다는 법은 없다. 당장은 스포츠 사업관련 예산이 줄더라도 차후 국민체육진흥기금 수익금 배분기준을 조정해가며 지원을 유지할 수 있다”고 밝혔다.
레저세 과세 부당성을 역설하는 체육계에 대해 지자체는 조세형평성, 기금 운영의 투명성을 요구하며 맞서고 있다. 국세와 지방세가 부과되는 다른 사행산업(경마ㆍ경륜ㆍ경정)과 조세형평성 차원에서 레저세 과세가 불가피하다는 것. 또한 예산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리주체의 자율성이 보장되는 기금의 운용범위를 줄이는 것이 마땅하단 주장이다. 지방세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김정권 의원 측은 “기금과 예산 모두 국회의 심의ㆍ의결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이용ㆍ전용 범위를 엄격히 제한하는 예산과 달리 기금은 세항신설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기금관리주체가 자율적으로 변경할 수 있다. 레저세를 부과해 기금 운용을 투명하게 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하지만 다른 사행산업의 조세형평성은 이론의 여지가 있다. 경마는 과천과 부산경남에서, 경륜은 창원 등 경기장 자체가 지자체에 속해 있어 과세할 합법적 근거가 있지만 스포츠토토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인터넷이나 소규모 점포를 통해 영업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한편, ‘한국 축구의 꽃’ 지소연을 키운 최인철 감독은 “초등학교 때부터 유망주로 떠오른 소연이었지만 지자체나 문광부로부터 제대로 된 지원 한 번 받은 적 없다. 월드컵을 통해 여자축구가 알려진 후부터 비로소 지원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비인기종목이라도 잠재력 있는 무명선수 발굴ㆍ지원이 매우 필요하다”며 레저세 부과를 두고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는 지자체와 문화체육관광부를 향해 일침을 놓았다.
레저세를 둘러싼 이들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아무쪼록 스포츠 꿈나무들이 자라날 토양을 비옥케 하는 방향으로 결말이 나길 바란다.
정유진 기자 kkyy122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