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비영리단체(NPO)인 ‘유스가디언’ 대표 아베 히로타카 씨는 이렇게 전했다. 그는 학교에 호소해도 들어주지 않는 이지메 문제를 조사·해결하는 일을 맡고 있다. 이지메로 상처받고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일종의 안식처가 되어주고 있는 것. 2004년 첫 의뢰를 받은 후 지금까지 해결한 상담 수는 무려 6000건이나 된다. 그래서 혹자는 아베 씨를 두고 ‘이지메 탐정’이라고 부른다.
일본 문부과학성이 2020년 발표한 통계에 의하면, 전국 초·중·고등학교에서 확인된 이지메는 61만 2496건으로 6년 연속 증가했다. 집계가 시작된 2013년 이래 최다 기록이다. ‘전년 대비 이지메가 가장 많이 늘어난 곳이 초등학교’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와 관련, 아베 씨는 “최근 몇 년간 이지메가 저연령화 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더욱이 “생각지도 못했던 교묘한 수법이 눈에 띈다”는 지적이다. 예를 들어 ‘그 애와 있으면 미움을 받는다’ ‘뒤에서 너를 나쁘게 말하고 다닌다’ 등 억지 소문을 퍼트려 친구 관계를 부수고, 피해자를 고립시키는 괴롭힘이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정보조작형 이지메’는 과거 중학생이나 초등학교 고학년들에게서 볼 수 있었지만, 요즘은 초등학교 저학년 사이에서도 흔히 발견되는 현상이다.
아울러 학교나 학급 내에서의 위치를 이용하는 ‘지배형 이지메’도 늘고 있다. 아베 씨는 “지배형 이지메를 들여다보면 아이와 마찬가지로 가해자의 부모들도 특정 학부모를 이지메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언급했다. 요컨대 “엄마들끼리의 서열 등 ‘힘의 관계’가 초등학교 저학년 자녀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학교 이지메’가 사회문제로 부각되면서 2013년 ‘이지메 방지법’이 제정된 바 있다. 대상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다. 그런데 아베 씨의 설명에 의하면 “이지메 방지법의 범주를 벗어나는 유치원 및 보육원에서의 문제가 최근 줄을 잇고 있다”고 한다. 아동들 사이에서 이지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 자체도 놀랍지만, 더욱 충격적인 것은 상담 내용이다.
얼마 전 접수된 상담은 유치원에서 발생한 아동 간 성폭력 이지메였다. 아베 씨는 “원래도 성(性) 관련 이지메는 지속적으로 발생해왔다. 그런데 해를 거듭할수록 연령대가 낮아지는 것을 느낀다”고 밝혔다. 본격적으로 성 괴롭힘이 증가하는 연령대는 중학생 무렵부터다. 성인이었다면 형법범에 해당될 만한 수위 높은 행위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가령 올해 3월 발생한 ‘아사히카와시 여중생 동사 사건’을 꼽을 수 있다. 집단 성 괴롭힘을 당한 여중생 A가 공원에서 얼어 죽은 채 발견된 사건으로, 일본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일본 매체 ‘주간문춘’에 따르면 “A는 또래 남학생들로부터 탈의한 신체 사진 및 자위행위 동영상 촬영 등을 강요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A의 사진과 영상은 다른 중학생 그룹 채팅방에 유포됐고,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트라우마)’에 시달리던 A는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하고 말았다.
아베 씨는 “성 괴롭힘을 당한 피해자는 평생 트라우마를 안고 산다”고 강조했다. 대부분 동영상 촬영을 강요당하곤 하는데, 한번 확산된 동영상은 완전히 삭제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그는 “민감한 사안인 만큼 어디까지나 피해자의 마음을 우선시하려고 노력한다”고 전했다.
이런 사례도 있었다. 남학생 비율이 높은 공립고교에서 여학생을 상대로 한 집단 따돌림이 발생했다. 신고에 따르면 “여학생 얼굴 사진을 도촬해 다른 여성의 알몸 사진과 합성한 후 그룹 채팅방에 공유하거나 ‘원조교제를 하고 있다’는 악의적인 소문을 퍼트렸다”고 한다. 여기에 음담패설과 성희롱도 일삼았다.
아베 씨는 서둘러 피해 여학생에게 녹음기로 괴롭힘의 내용을 녹취하도록 했다. 처음엔 소극적이었던 학교 측은 증거가 확보되자 제대로 추궁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가해 학생들은 퇴학 및 무기정학을 당했고, 협조한 나머지 학생들도 엄중주의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 가해자 어머니들로부터 항의가 빗발쳤다. “우리 애는 그렇게 나쁜 아이가 아니다” “가해자라 해도 미성년인 학생의 미래를 빼앗는 것은 부당한 처사”라는 주장이었다. 또 “피해 여학생의 행동거지에 문제가 있었으니 그랬던 것 아니겠느냐”는 억측도 이어졌다.
아베 씨는 “마치 형사들이 범죄자들로부터 원한을 사는 것처럼 학교 폭력 문제에 대응하면 할수록 원성이 자자해지는 걸 실감하게 된다”고 전했다. 그는 “그럴 때마다 피해 학생에게도 잘못이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을 제기하며 ‘반성의 빛이 전혀 없다’는 것도 가해자 측의 공통점”이라고 덧붙였다.
설령 피해자에게 잘못의 여지가 있다 해도 괴롭히는 행위를 선택한 것은 어디까지나 가해자의 책임이다. 아베 씨는 “가해자에게도 확실히 갱생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하지만 가해자의 장래 걱정보다 ‘피해자의 인권’에 대한 배려가 먼저 아닐까 싶다”는 소견을 밝혔다. “목숨을 끊고 싶을 정도로 괴롭힘을 당해 평생 괴로워하는 피해자의 마음부터 헤아려야 한다”는 의견이다. 그는 “일본 사회가 전체적으로 피해자를 지탱하는 인프라가 부족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이지메로 극단적 선택을 한 여중생 A의 어머니는 언론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가해 학생들이 불행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지메로 사람이 이렇게 죽게 될 수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이지메는 간접 타살이다. 제발 반성이라도 해줬으면 한다.”
이지메 대책 기본은 ‘증거 남기기’
집단 괴롭힘으로부터 아이를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베 씨는 “이지메 내용을 불문하고, 기본 대책은 증거를 남기는 것”이라고 조언한다. “아이가 이지메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면, 일단 아이에게 스마트폰이나 녹음기를 통해 가해 학생과의 대화를 모두 녹음하도록 하라”는 설명이다. 채팅창과 인스타그램 등 SNS를 통한 이지메 사례도 증거를 남겨둬야 한다. 아베 씨는 “반드시 스크린 캡처를 하거나 데이터 백업을 해두라”고 권했다.
학교 측에 침착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중요하다. 직접 만나 전달할 때는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자칫 학교 측에 불만을 쏟아내는 극성스러운 학부모, 예컨대 ‘몬스터 페어런트(괴물 학부모)’로 오해당할 수 있기 때문. 협력을 받아야 할 상대에게 악성 민원인 취급을 받으면 해결은 멀어져 버린다. 차분하면서도 냉철하게 사실을 전하라. 아베 씨는 “무엇보다 초기 대응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상처가 더 번지기 전에 싹을 잘라야 한다는 것. 또한 “이지메 예방·대응 교육에도 힘써야 한다”고 덧붙였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