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 이의리 유일한 신인·10대, 사이드암 투수 3명으로…아시안게임 논란 오지환·박해민 재합류
한국은 야구가 마지막으로 올림픽 정식 종목이었던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9전 전승으로 금메달을 땄다. 아시아 최강국 일본 최정예 대표팀을 두 차례나 꺾고 정상에 올라 더 값진 성과였다. 그 후 올림픽 무대에서 사라졌던 야구는 프로야구 인기가 높은 일본에서 올림픽이 개최되면서 13년 만에 정식 종목으로 부활했다.
'올림픽'은 한국야구의 르네상스와 깊은 연관이 있는 단어다. 베이징올림픽 전까지 침체기를 맞았던 KBO리그는 올림픽 금메달을 기점으로 양적·질적 성장을 이뤘다. 최근 KBO리그에서 눈부신 활약을 하는 20대 초반 젊은 선수들은 대부분 그 시기를 전후로 야구를 시작해 '베이징 키즈'라 불린다. 따라서 도쿄올림픽은 다시 하락세를 탄 야구 인기를 되살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앞으로 언제 다시 올림픽이라는 기회가 올지 모르기 때문에 더 그렇다. 2024년 올림픽은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다. 야구가 활성화되지 않은 유럽 대회라 다시 야구가 정식 종목에서 빠졌다. 야구 종주국 미국(로스엔젤레스)이 유치한 2028년 올림픽에서 부활을 기대해 볼 수 있지만, 앞으로 7년이라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도쿄로 출항하는 '김경문호'의 어깨가 무겁다.
#'3대 좌완' 모두 빠져…젊은 투수 대거 명단에
새 얼굴이 넘쳐난다. 마운드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젊어졌다. 김경문 감독이 국가대표 전임 감독으로 부임한 뒤 처음 출전한 2019 프리미어12에서는 김광현(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과 양현종(텍사스 레인저스)이 원투펀치를 맡았다. 지금은 둘 다 메이저리그(MLB)로 떠났다. 한국 야구대표팀에서 '3대 좌완' 류현진(토론토 블루제이스), 김광현, 양현종이 모두 빠진 건 13년 만에 처음이다.
설상가상으로 프리미어12에서 유일한 언더핸드 선발 투수로 활약했던 박종훈(SSG 랜더스)이 최근 팔꿈치 수술을 받아 출전하지 못하게 됐다. 선발진의 구심점이 될 30대 국가대표 베테랑 선발투수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결국 김경문 감독은 얼마 전 어깨 부상에서 회복해 1군에 복귀한 왼손 차우찬(LG 트윈스)을 최종 엔트리에 넣었다.
최근 KBO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낸 젊은 투수들이 대거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투수 10명 중 고영표(KT 위즈), 최원준(두산 베어스), 김민우(한화 이글스), 박세웅(롯데 자이언츠), 원태인(삼성 라이온즈), 이의리(KIA 타이거즈)가 생애 처음으로 성인 대표팀 태극마크를 달았다. 이의리는 야구대표팀에서 유일한 신인이자 10대 선수다. 이 외에 마무리 투수 고우석(LG)과 한현희, 조상우(키움 히어로즈)가 국가대표 경험자로 합류했다. 대신 국가대표 단골 소방수 오승환(삼성)은 엔트리에서 빠졌다.
김경문 감독은 "최근 성적과 대표팀 전체 균형을 고려해 선수를 선발했다. 이의리는 차세대 대한민국 왼손 에이스로 성장해야 할 선수다. 이번 올림픽에서 어느 정도 자신의 역할을 해줄 거라 생각해서 뽑았다"며 "오승환은 13년 전 올림픽에 함께 갔기 때문에 이번에도 함께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고우석이 마무리 투수로서 잘하고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1년 가까이 재활하다 최근 복귀한 차우찬을 선발한 데 대해서는 "마음 같아서는 왼손 투수를 3명 정도 뽑고 싶었다. 구창모(NC 다이노스)와 차우찬, 이의리 3명 정도를 생각했는데, 부상 중인 구창모의 복귀 날짜가 생각보다 늦어지면서 빠진 게 가장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사이드암 투수가 3명(고영표, 한현희, 최원준)으로 늘어난 것도 이번 대표팀의 특징이다. 올 시즌 사이드암 불펜 투수 중 최고 성적을 내고 있는 강재민(한화)이 합류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김 감독은 3명 모두 팀에서 선발을 맡고 있는 투수로 채웠다. 이번 올림픽에선 경기당 1~2이닝을 소화하는 불펜 투수보다 한 경기에서 최대한 긴 이닝을 던질 수 있는 선발 요원이 더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경문 감독은 "올해 사이드암 투수들이 꾸준하게 자기 역할을 해줬고, 이닝 이터도 많았다. 기복 없이 잘한다는 점에 점수를 많이 줘서 평소보다 많이 뽑았다"며 "강재민은 무척 잘 던지는 모습을 봤다. 하지만 이번 대회가 최대 8경기까지 치를 수도 있는 일정이라 가능하면 더 많은 이닝을 던질 수 있는 투수들이 이어 던지게 하는 방향으로 운영할까 생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 경기를 확실히 믿고 맡길 수 있는 에이스가 없는 상황이라 고육지책이 필요했다는 의미다.
#포수에 국제대회 베테랑 강민호·양의지 뽑아
김경문 감독은 투수들의 국가대표 경험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점을 고려해 다른 포지션에 이미 태극마크를 달았던 베테랑 선수를 여럿 배치했다. 특히 포수는 국제대회 경험이 많은 베테랑 강민호(삼성)와 양의지(NC)를 뽑아 그 간극을 메웠다. 강민호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도 참가했던 베테랑이고, 양의지는 최근 수년간 단골 국가대표 안방마님이다.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국제대회 무대를 밟는 투수들에게는 천군만마와 같은 존재다.
내야에선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당시 선수 선발 논란의 중심에 섰던 오지환(LG)이 유격수로 다시 합류했다. 강한 어깨와 넓은 수비 범위로 대표팀 코칭스태프의 눈도장을 받았다. 김 감독은 "오지환은 가장 수비를 잘하는 유격수다. 투수들 경험이 부족하면, 내야 수비가 더 견실해야 한다. 오지환은 올 시즌 타율은 낮지만, 수비면에서 큰 점수를 받았다"고 역설했다. 역시 수비가 좋은 김혜성(키움)이 오지환과 함께 대표팀 유격수로 깜짝 발탁됐다.
1루수는 강백호(KT)와 오재일(삼성), 2루수는 박민우(NC)와 최주환(SSG), 3루수는 황재균(KT)과 허경민(두산)이 각각 뽑혔다. 지난해까지 외야수였던 강백호는 주로 지명타자로 나서게 된다. 오재일, 최주환, 허경민은 현재 소속팀이 모두 다르지만 지난해까지 두산 내야에서 여러 해 호흡을 맞춘 동료다. 특히 오재일은 장타력만큼이나 리그 정상급 수비 능력으로도 유명하다.
김경문 감독은 "강백호는 일단 지명타자로 시작할 거고, 경기 내용에 따라 (지난 시즌 포지션인) 외야수로도 나설 수 있다. 멀티 포지션이 가능한 김혜성도 외야수 준비까지 시킬까 생각 중이다. 또 최주환은 중요한 기회가 왔을 때 대타 카드로 생각하고 있다"는 구상을 공개했다.
내야 역시 오랜 기간 국가대표 주전 3루수를 맡았던 홈런 타자 최정(SSG)이 제외돼 눈길을 모았다. 뉴욕 양키스 산하 마이너리그에서 뛰고 있는 박효준도 유격수 후보로 분류됐지만 최종 명단에는 들지 못했다. 김 감독은 "최정은 올해도 잘하고 있고, 프리미어12 대표팀에서도 함께했다. 그러나 역시 이번 대표팀에선 (타격 능력보다) 경험이 부족한 투수들을 뒷받침해줄 수비력을 먼저 고려했다. 박효준은 직접 보진 못하고 영상으로 봤는데 좋은 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걸 확인했다. 하지만 역시 수비로는 오지환이 낫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김현수, 13년째 흔들림 없는 국가대표 외야수
외야는 2008 베이징올림픽 멤버 김현수(LG)를 포함해 4명 모두 국가대표 유경험자로 채워졌다. 박해민(삼성), 박건우(두산), 이정후(키움)다. 특히 김현수는 13년째 리그 정상급 기량을 유지하고 있는 국가대표 베테랑이다. 2008 베이징올림픽을 시작으로 아시안게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프리미어12 등 굵직한 국제대회에 단골로 참가했다.
김현수는 그 덕에 국가대표에게 주어지는 포상 포인트만으로 한 시즌 인정 일수(145일)를 다 채웠다. 지난해 말엔 3년 만에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다시 얻는 역대 최초의 사례를 남기기도 했다. 첫 FA 때 LG와 4년 계약을 한 터라 FA 자격을 행사하진 못했지만, 이 정도면 '국가대표 개근상'을 받아도 무방하다.
이정후 역시 김현수의 뒤를 잇는 '국가대표 단골 외야수'로 자리 잡을 기세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과 2019 프리미어12에 이어 이번 올림픽에서도 대표팀 외야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그는 대표팀 발탁 뒤 인터뷰에서 "국가대표를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특히 올림픽은 앞으로 영영 못 갈 수도 있는 대회"라고 의미를 강조하면서 "올림픽에서 잘하면 나를 모르던 분이 나를 알게 될 수도 있고, 야구에 큰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야구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나를 보면서 야구를 시작하는 어린 친구들도 생길 수 있지 않겠나. 요즘 야구 인기가 떨어지고 있다고 하는데,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인기를 되살릴 수 있게 열심히 하겠다"고 말해 KBO 관계자들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2018년 아시안게임에 이어 두 번째 국가대표가 된 박해민은 이번 대표팀 합류를 그 누구보다 반긴 선수다. 그는 수비와 주력 모두 리그 최고 수준으로 꼽히는 삼성 주전 외야수다. 하지만 3년 전 아시안게임 출전 당시 오지환과 함께 병역 혜택 관련 논란에 휩싸여 마음고생을 했다. 당시 선동열 대표팀 감독을 비롯한 많은 야구 관계자가 "박해민은 대표팀 대수비와 대주자로 꼭 필요한 선수"라고 설명했지만, 그 이유는 성난 야구팬의 민심 속에 묻혔다.
따라서 박해민에게 이번 올림픽은 편견의 시선을 걷어내고 자신의 진가를 보여줄 수 있는 명예회복의 기회다. 김 감독은 단 4명뿐인 대표팀 외야수 안에 박해민의 이름을 적어 넣으면서 믿음과 힘을 실어줬다. 심지어 "외야수 4명은 모두 주전이다. 박해민은 백업이 아니라 선발 외야수로 출전해도 될 만한 자질을 갖춘 선수"라는 평가도 내렸다.
박해민은 이와 관련해 "올림픽 출전은 모든 스포츠 선수의 꿈이다. 나도 꼭 대표팀에 뽑히고 싶었다. KBO리그에 좋은 외야수가 워낙 많아 대표팀 발탁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영광스럽게도 나를 선택해주셨으니 어떤 역할을 맡기시건, 최선을 다하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또 "대수비, 대주자로 출전만 해도 영광"이라고 몸을 낮추면서 "KBO리그에서처럼 올림픽에서도 내 유니폼에는 흙이 잔뜩 묻어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유력한 후보로 거론됐던 MLB 출신 외야수 추신수(SSG)는 이번 대표팀에 합류하지 못했다. 김 감독은 "추신수는 이번에 꼭 함께하고 싶었던 선수라 나 역시 (그가 빠져서) 무척 아쉽다. 현재 팔꿈치가 좋지 않은 상황이고, 강백호와도 지명타자 포지션이 겹치는 부분이 있어 고민했다. 결국 최종적으로 팔꿈치 상태를 확인하고 빠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험난하지만 의미 있는 길을 향해
김경문 감독은 두산 사령탑 시절인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한국 야구의 금메달 신화를 이끈 주인공이다. 그 후 야구가 올림픽에서 사라진 탓에 한국은 여전히 '디펜딩 챔피언'으로 남아 있다. 많은 야구팬이 이번 대회에서도 한국의 금메달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일본야구'라는 거대한 적은 객관적인 실력에서 한국보다 한 수 위다. 이번엔 안방을 차지하고 13년 전의 설욕을 벼르고 있다. 그리고 한국 대표팀 전력은 그때보다 많이 약해졌다.
또 한 번 올림픽 대장정에 나서는 김경문 감독 역시 부담이 크다. 최종 엔트리를 구성할 때부터 이미 고민은 시작됐다. 이번 올림픽뿐 아니라 '미래'까지 염두에 두고 선수를 뽑아야 했기에 더 그랬다.
김경문 감독은 '왼손 투수'를 가장 고민했던 포지션으로 꼽으면서 "좌완 에이스가 없다. 이번 올림픽 후에도 내년 아시안게임을 비롯한 국제대회가 계속 있는데, 선발이 약한 상태에서 불펜만으로 좋은 성적을 내기는 어렵다. 한국야구도 굵직굵직한 선발들이 생겨야 한다"고 걱정했다. 또 "이번 대표팀에 뽑은 이의리 외에도 이승현(삼성), 김진욱(롯데) 등은 1~2년 더 경험을 쌓으면 충분히 대표팀에 뽑힐 기량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엔트리에서 탈락한) 젊은 선수들이 실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왼손 투수뿐 아니라 오른손 타자 발굴도 한국 야구의 숙제라 생각한다"는 소신을 밝혔다.
야구대표팀은 7월 19일 소집돼 합숙 훈련을 시작한다. 연습경기를 통해 선발 로테이션과 경기별 주전 라인업을 확정할 계획이다. 김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는 그때까지 KBO리그 정규시즌 경기를 계속 지켜보면서 꾸준히 대표팀 구상을 이어나갈 생각이다.
김경문 감독은 "베이징 대회 후 벌써 13년이 지났나 싶은 생각이 든다. 내가 이 자리에 또 서 있게 될 줄 몰랐다. 이번 올림픽이 만만하진 않지만, 오랫동안 코로나19 여파로 고생한 국민의 자존심이 걸린 대회라고 생각한다"며 "우리 선수들이 힘을 내고 마음을 모아서 국민에게 힘을 줄 수 있는 경기를 했으면 좋겠다. 나와 코치진도 이전 대회 챔피언으로서 우리의 목표를 꼭 이루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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