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씨의 꼬임에 넘어간 사람들은 강남 유흥업계의 동료업주와 마담은 물론 업소에 드나든 각계각층의 고위인사 및 유명 인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최근 해외 원정도박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A 씨의 도박빚 역시 김 씨의 주머니에서 나왔다는 풍문마저 떠돌고 있는 상황이다.
<일요신문>은 강남 유흥업계 주변에서 해외 원정도박 알선자로 지목받고 있는 ‘검은손’ 김 씨를 집중 취재했다.
지난해 12월 강남의 한 주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이는 한 여성의 싸늘한 주검이 발견됐다. 여성은 강남 텐프로 마담으로 일하던 우 아무개 씨(33)였다. 우 씨의 사인은 평소 생활고에 따른 자살로 알려졌다. 강남 유흥업계에서는 우 씨가 지난해 가을쯤 해외 원정도박길에 올라 많은 돈을 탕진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기자와 만난 한 유흥업계 인사에 따르면 우 씨는 유명업소 업주 출신인 김 씨의 꼬임에 넘어가 해외 원정도박지에서 그의 돈을 빌린 것으로 알려졌다. 빌려간 금액은 무려 10억 원을 육박한 것으로 전해진다. 매월 5000만 원에서 1억 원가량의 살인적인 이자는 우 씨에게 무척이나 큰 부담이었다. 도박지에서 차용증까지 쓴 그는 국내에 돌아와 김 씨의 온갖 협박에 시달리다 죽음을 택하게 된 것이다.
우 씨의 자살에 큰 영향을 준 인물로 지목받고 있는 김 씨는 현재 강남 유흥업계의 ‘검은손’으로 통하고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강남 텐프로 업소 7~8개를 운영하며 이름을 알린 그는 지난 2006년부터 주변사람들을 해외 원정도박길로 꼬드겨 막대한 채무를 지게 하고 있다. 최근에는 자신이 운영하던 업소를 모두 정리한 뒤 본격적인 원정도박 사채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 씨의 수법은 매우 치밀하다. 우선 그는 자신이 몸담고 있던 강남 유흥업계의 주변 업주와 마담, 그리고 업소를 드나든 단골들을 대상으로 사냥감을 물색한다. 그가 사냥감으로 지목한 피해자들은 대체로 거액의 채무액을 뱉어낼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사냥감으로 지목되면 슬슬 ‘한탕’에 대한 부푼 희망을 설파하며 피해자들을 마카오, 필리핀 등 원정 도박길로 이끌었다. 확실하다 싶으면 처음에는 자신의 돈으로 여행비를 대가며 피해자들의 구미를 당기게 한다. 피해자 대다수는 원정 도박지에서 거액의 돈을 탕진하고 결국 김 씨에게 손을 벌리게 된다. 김 씨는 차용증을 쓰게 한 후 살인적인 이자와 함께 돈을 뜯어냈다. 피해자들이 돈을 못 갚을 경우 협박까지 하면서 기어이 받아내고야 말았다.
업계 관계자를 통해 알게 된 정 아무개 씨 역시 김 씨의 꼬드김에 넘어간 케이스였다. 기자와 어렵게 통화한 정 씨는 자신의 피해사례를 담담하게 털어놨다. 김 씨가 업소를 운영할 당시 단골이었던 정 씨는 영남지역 유명 건설사인 S 사의 후계자였다.
지난 2004년 회사 대표직에 올라 회사채 100억 원가량을 환치기하다 당국에 붙잡혀 탕진한 뒤 정 씨는 김 씨의 권유에 따라 지난해 12월 해외 원정도박길에 오르게 됐다고 한다. 처음에 김 씨는 정 씨를 꼬드기기 위해 사비까지 털어가며 원정 도박길에 데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김 씨는 정 씨의 부친이 중견건설사를 운영한다는 사실을 알고 채무능력을 점친 것이다.
마카오와 필리핀 등지에서 도박을 한 정 씨는 결국 많은 돈을 탕진하게 됐다. 본전 생각이 난 정 씨는 김 씨에게 13억 원가량의 칩을 건네받고 16억 5000만 원짜리 차용증을 썼다. 국내에 돌아와서 돈줄이 막힌 정 씨가 빚을 갚지 않자 김 씨는 ‘아버지에게 사실을 말하겠다’ ‘S 사가 운영하고 있는 고속도로 휴게소를 압류하겠다’는 협박과 함께 조직원을 동원해 위협하기도 했다. 현재 피해자 정 씨는 극도의 불안상태에서 지내고 있다며 기자와의 직접 대면을 피했다.
강남 유흥업소 관계자에 따르면 김 씨의 꼬드김에 넘어간 피해자가 족히 수백 명은 된다고 한다. 동료업주나 마담 같은 업계 관계자들은 물론 업소 출입이 잦은 재계와 연예계 등 사회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총망라되어 있다는 후문이다. 기자와 만난 한 업계 관계자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많은 사람들이 전과가 있거나 외부에 알려지기를 꺼려하기 때문에 구체적인 피해 사례를 밝히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귀띔했다.
특히 유흥계 주변에서는 얼마 전 해외 원정도박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연예인 A 씨의 도박자금 역시 김 씨의 주머니에서 나왔다는 소문이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내 측근 중 한 사람이 ‘검은손’ 김 씨의 돈이 A 씨에게 건네진 사실을 증언한 바 있다. 규모도 애초 알려진 금액보다 훨씬 많은 10억 원 이상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물론 현재로써는 확실한 증거가 없지만 업계 관계자들이 A 씨에게 도박자금을 건넨 장본인으로 김 씨를 의심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유흥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검은손’ 김 씨의 뒤에는 원정도박 사업을 지원하는 세력들이 있다고 한다. 김 씨 역시 자본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피해자에게 물리는 채무금액 수준이 상당하기 때문에 뒤에서 자금을 대주는 ‘전주’가 따로 있을 것이란 얘기다.
업계 주변에서는 강남을 주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3명의 전주가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아직까지 김 씨와 그 배후세력의 해외 원정도박 알선 의혹에 대한 사법당국의 수사는 진행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따라서 사법당국의 제재나 수사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김 씨의 손아귀에 넘어가는 피해자들은 더욱 늘어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