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겨야 산다’는 말이 있다. 지나치게 승부에 집착하는 사람들을 흔히 보게 되지만 연예계만큼 승부욕 넘치는 이들을 만날 수 있는 곳도 드물다. 데뷔전부터 경쟁을 거듭하며 실력을 키우는 아이돌 그룹의 멤버들을 비롯해, 스타가 된 후에도 밥그릇 싸움에서 지고는 못사는 이들이 가득하기 때문. 때론 프로그램의 활력을 불어넣고, 때론 시청자들의 가슴을 조마조마하게 만드는 연예인들의 치열한 승부의 세계, 하지만 카메라 밖에선 종종 너무 지나친 승부욕이 화를 부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난 95년 연예인 특집 권투대회 녹화가 있던 날. 개그우먼 이경실과 조혜련은 이날을 절대 잊지 못한다. 평소 돈독한 선후배 사이인 둘은 시합 전만 해도 큰 긴장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때 국민 스포츠였던 권투의 인기를 되살리기 위한 이벤트 정도로 여겼을 뿐 진짜 승부를 펼치리라곤 예상을 못했던 것. 드디어 시합을 알리는 공이 울리고 이때만 해도 이경실은 웃음을 참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후배인 조혜련이 자신을 먼저 칠 수 없어 “언니 먼저 쳐! 먼저 쳐!”라고 하는 모습이 그렇게 웃길 수 없었다고. 하지만 웃음을 주기 위해 연신 링 위를 뱅글뱅글 돌며 도망 다니던 이경실은 이내 정신이 번쩍 들 수밖에 없었다. 경기의 빠른 진행을 위해 조혜련이 먼저 ‘선빵’을 날린 것. 강력한 펀치에 당황한 이경실은 연이어 정타를 허용하고 말았다. 후배의 겁 없는 도전에 화가 난 이경실은 역시 조혜련을 향해 수차례 펀치를 휘둘렀고 둘의 시합은 실제 권투경기를 방불케 진행됐다.
승부욕이 발동한 두 사람에게 머리가 헝클어지고 얼굴이 퉁퉁 붓는 일 정도는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3라운드까지 가는 치열한 접전 끝에 유효타를 조금 더 많이 날린 이경실의 판정승으로 이날 승부는 끝이 났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이후 몇 년 동안 소원했다는 후문이다. 당시 링 위에서 심판을 맡았던 김광선 88올림픽 복싱 금메달리스트는 “경기가 끝난 후에도 대기실에서 두 사람이 씩씩대는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며 “링 위에서 벌어진 진짜 싸움을 말릴 수도 없어 무척이나 난감했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하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조혜련은 이날의 패배를 깨끗하게 되갚은 바 있는데 바로 2006년 열린 추석특집 연예인 권투대회 <내 주먹이 운다>에서였다. 이경실과의 시합 당시 권투 문외한이었던 그는 그사이 태보 등으로 단련된 단단한 몸을 자랑하고 있었던 것. 이날 그의 희생양은 이경실이 아닌 방송인 김새롬과 김신영 등이었다. 11년 전의 상황과 정반대로 후배들의 도전을 받아야 했던 그는 무시무시한 펀치를 자랑했다. 결국 김새롬은 실신, 김신영은 코피를 쏟았다.
권투하면 조혜련 외에도 새롭게 떠오르는 여전사가 있으니 다름 아닌 배우 이시영이다. 그는 다이어트를 위해 시작한 권투의 매력에 푹 빠져 현재 프로선수 못지않은 실력을 갖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권투를 한다는 사실은 우연히 인터넷에 뜬 동영상을 통해 공개됐는데 아마추어 대회에 나간 그의 모습을 한 관중이 캠코더로 찍어 올린 것. 당시 이시영은 판정에서 아쉽게 패했지만 이날 이후 그의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당시 그에게 패배를 안겨줬던 주인공이 다음 대회에 출전한다는 얘기를 듣고 리벤지 매치를 꿈꾸며 불철주야 이를 갈았다고. 승부욕에 불타며 열심히 대회를 준비한 이시영은 아쉽게도 상대 선수 불참으로 리벤지 매치를 성사시키진 못했다. 하지만 그는 놀랍게도 대회 우승 타이틀을 거머쥐게 되었는데 입문 1년도 안된 권투 초보로서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 할 수 있다.
현재 그의 실력은 어느 정도일까? 그가 다니는 체육관 관계자는 “특유의 승부욕과 근성으로 당장 프로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귀띔한다.
연예계 승부욕 최강자로 꼽히는 이는 다름 아닌 현재 공익 근무 중인 신화의 전진이다. 그는 지는 것이 죽기보다 싫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 만큼 분야를 막론하고 강한 승부욕을 자랑한다. 초등학교 시절 한 여자 아이에게 키가 작다는 놀림을 받고 4년 넘게 매일 우유 1.5리터를 마셔 결국 키가 180㎝가 된 뒤 그 아이를 수소문해 전화를 걸었다는 얘기는 이미 유명한 일화. 연예인이 된 뒤에는 성시경과의 주당싸움에서 새벽 6시까지 흐트러지지 않고 버틴 뒤 이어진 생맥주 2차에서 결국 성시경을 KO시키며 연예인 주당계 전설의 주인공으로 등극하기도 했다.
그의 승부욕에 있어 진정한 화룡점정의 순간은 지난 2002년 출연한 <출발드림팀> 왕중왕전이다. 김종국 이상인 등 출발드림팀의 에이스들과 함께 출연한 왕중왕전에서 전진은 신기록을 세우며 분전했지만 아쉽게도 중도 탈락하고 말았다. 승부욕 강한 그가 어쩌다 중도 탈락의 고배를 마시게 된 것일까. 사실 당시 그는 생사의 기로를 넘나드는 부상으로 신음하고 있었을 때였다. 한 방송사 예능프로그램 녹화 도중 덤블링을 잘못해 머리가 먼저 땅에 떨어져 뇌진탕 증세를 일으킨 것. 심지어 “뇌수술이 필요할 수도 있으며 수술 후에도 결과는 장담 못한다”는 의사의 소견이 나왔을 정도였다. 수일간 산소 호흡기에 의지해 의식불명 상태였다가 힘겹게 의식을 회복했다. 이런 그가 의식을 되찾고 일주일 만에 <출발드림팀> 왕중왕전에 출연한 것. 왕중왕전이 펼쳐진다는 소식이 병상에 있던 그의 승부욕을 자극했던 것이다. 게다가 전진은 드림팀 왕중왕전 녹화가 끝난 뒤 뒤풀이 장소로 술까지 마시러 갔다는데, 참으로 못 말리는 승부욕과 주(酒)사랑이다.
승부욕으로 똘똘 뭉친 연예인들의 이야기를 다뤘던 프로그램도 있었다. 아쉽게도 얼마 전에 폐지된 <천하무적야구단>이 대표적이다. 방송을 위해 꾸며진 모습이 아닌 승부를 통한 솔직한 출연진의 모습으로 높은 인기를 얻었던 이 프로그램은 연예인들의 승부욕이 어디까지인가를 잘 보여준다.
김성수는 “연예인들은 모두 승부욕이 엄청난 사람들”이라며 “스무 번 지고 딱 한 번 이기더라도 그 기분은 마치 우승과도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매 경기 때마다 부상이 있으면 병원에 가서 진통제까지 맞아가며 경기에 임할 정도로 남다른 승부욕을 보이기도 했다. 종종 포수 마스크를 쓰고 경기에 임했던 이하늘은 경기에 질 때마다 포수 마스크를 집어던지며 욕설과 함께 분노를 표출하는 모습이 눈에 띄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런 모습을 본 시청자들은 악동이라며 이하늘을 비난하기보단 그의 승부 근성과 투지에 놀라움을 나타냈었다.
주영민 연예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