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경선·2015년 전대 이의제기 후보 패배…이재명 vs 반이재명 본선 가기 전 내상 우려
“경선 룰에 딴지 거는 쪽이 이기는 경우를 보았느냐.” 더불어민주당 한 전략통은 대선 경선 룰을 둘러싼 갈등이 확산되자 “경험상 그 시간에 선거인단 모집을 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이 전략통은 현재 빅3(이재명·이낙연·정세균)가 아닌 후발 주자 캠프에 몸담고 있다. 그는 “대선 경선 룰 변경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특히 이번 룰은 전임 지도부가 시스템 정당 구축을 명분으로 당원 동의하에 만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민주당 수도권 한 의원도 “이해찬 체제에서 만든 대통령 선거 선출 규정은 특별당규 형태로 제정됐다”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건들지 말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실제 민주당은 지난해 8월 29일 ‘제20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 선출 규정’의 특별당규 제정 때 “당헌 제88조에 따라 당 대통령 후보자 선출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했다. 당헌 제88조는 ‘대통령 선거일 전 180일 선출’ 규정이다. 특정 대선주자가 룰 변경을 밀어붙일 명분이 크지 않다는 뜻이다.
‘룰 잔혹사’를 거론하는 이들이 뽑은 대표적인 사례는 지난 2012년 민주통합당(현 민주당) 대선 경선이다. 당시 룰 갈등의 양대 축은 결선투표제 도입 여부와 모바일 투표의 불공정성 논란이었다.
야권 내 대세였던 문재인 당시 후보에 맞서 손학규 김두관 정세균 후보가 맞섰다. 대선 룰을 둘러싼 친노(친노무현) 대 비노(비노무현)의 갈등은 연일 확전됐다. 문재인 후보가 결선투표제를 수용하면서 갈등은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첫 번째 순회 경선 지역인 제주에서 모바일 투표 오류가 발생하며 룰 갈등은 다시 수면 위로 부상했다. 당시 비노 3인방은 선거관리위원회 전면 교체를 요구하며 두 번째 지역 순회 일정인 울산 경선에 전격 불참했다. 제1야당 대선 경선을 시작한 지 이틀 만에 파행이 극에 달한 셈이다.
비노 3인방이 문제 삼은 것은 자동응답시스템(ARS) 투표 시스템이었다. 민주통합당은 기호 1∼4번의 이름을 끝까지 듣지 않고 중간에 투표한 표를 무효로 처리했다. 당시 기호는 ‘정세균·김두관·손학규·문재인’ 순이었다. 예컨대 손학규 지지자가 3번까지 듣고 투표 후 전화를 끊으면 무효표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비노 3인방 측은 “기호 4번(문재인)에 유리한 룰”이라고 반발했다. 특히 손학규 후보는 룰 갈등 과정에서 “친노 패권주의는 패배의 길”이라고, 김두관 후보는 “(룰 변경) 요구를 묵살하는 것을 보면 박근혜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고 쏘아붙였다.
이들의 총공세에도 불구하고 제주·울산 합산 결과는 57.35%를 얻은 문재인 후보의 승리였다. 이어 김두관(20.25%), 손학규(17.86%), 정세균(4.57%) 순이었다. 최종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문 후보가 과반(56.5%) 득표율을 기록, 결선투표 없이 본선에 진출했다. 손학규(22.2%), 김두관(14.3%), 정세균(7.0%) 등은 낙선했다. 하지만 경선에서 룰 갈등의 내상을 입은 문 후보는 결국 대선 본선에서 48.0%를 득표, 박근혜 당시 후보(51.6%)에게 3.6%포인트(p) 차로 패했다.
룰 잔혹사는 때때로 당대표 경선에도 영향을 미쳤다.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현 민주당) 2·8 전당대회에선 문재인 당시 후보와 박지원 후보(현 국가정보원장)가 경선 룰을 놓고 극한 대립을 펼쳤다.
핵심쟁점은 여론조사에서 ‘지지 후보 없음’의 처리 여부였다. 당시 당 시행세칙에는 무응답 또는 응답 거부 시 무효 처리한다는 조항만 있었지, ‘지지 후보 없음’의 유효표 여부 내용은 빠져 있었다. 이에 당 선관위가 ‘지지 후보 없음’을 무효표로 결정하자, 박지원 캠프는 전당대회 막판까지 이 문제를 물고 늘어졌다. 박 후보도 경선 일주일 전 “주위 분들과 거취를 상의하겠다”며 탈당 불사론까지 꺼내들었다.
최종 결과는 문재인 후보(45.3%)의 3.5%p 차 승리. 이른바 ‘문재인 모델(선 당대표·후 대선 도전)’의 서막을 알린 순간이었다. 여권 한 관계자는 “‘명필은 붓 탓을 하지 않는다’라는 게 국민적 정서 아니냐”라며 “경선 룰 변경을 강하게 요구하는 쪽은 전략상 실책”이라고 해석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다시 벌어진 룰 내전은 민주당 계파 갈등을 촉발시켰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소환하며 “원칙 없는 승리보다 차라리 원칙 있는 패배를 선택하는 것이 결국 이기는 길”이라고 직격했다.
반이재명 연합군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낙연 전 대표와 정세균 전 총리, 이광재 김두관 의원 등은 “경선을 연기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이 지사 측 내부에선 반이재명 연합군의 진격에 대해 “사실상 이재명 죽이기”라고 강하게 반발한다. 민주당 전 당직자는 “룰 내전에 따른 후유증이 클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 룰 내전의 ‘제1라운드’였던 6월 22일 의원총회는 3시간 동안 총 24명의 의원이 계파 대리전을 방불케 하는 난타전을 벌였다. 김민석 김종민 박영순 박재호 서영교 설훈 전재수 허영 의원 등 12명이 ‘경선 연기파’의 선봉에 섰다. 이에 박성준 안민석 이수진 이탄희 조응천 조정식 의원 등 7명은 ‘원칙론’으로 맞섰다.
특히 의총 말미에 한 송영길 당대표의 한마디는 당 내홍에 기름을 부어버렸다. 송 대표가 당무위 소집의 선결조건인 ‘상당한 이유’를 언급하며 “지도부에서 판단할 것”이라고 하자, 친문 일부 의원들은 “의원총회는 왜 했느냐”고 반발했다. 송 대표도 “당 대표는 왜 뽑았느냐”라고 응수했다.
이 과정에서 송 대표는 지난해 8월 특별당규를 만드는 과정을 거론하며 “이낙연 전 대표 등 모든 대선후보들이 합의한 내용”이라는 취지로 원칙론에 힘을 실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낙연 캠프 대변인인 오영훈 의원은 즉각 입장문을 내고 “‘지도부가 결정할 일이니 지혜를 모아 달라’고 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낙연 지지자들은 송영길호를 향해 “진실 공방을 하자는 것이냐”라며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반이재명 연합군 핵심인 ‘이낙연·정세균·이광재’ 3인방은 일주일 사이 토론회 개최를 비롯해 세 차례나 공조 행보에 나서며 이 지사를 강하게 압박했다. 당 안팎에선 “반이재명 연합군이 결선투표 준비에 들어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올해 연말까지 반이재명 연합군의 사생결단식 드라이브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이재명계 내부에선 “경선 후유증이 생각보다 클 수 있다”는 우려가 파다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반이재명계 일부는 “중요한 것은 (경선) 연기가 아니라 본선 승리”라며 “집안싸움이 길면 무조건 필패”라고 다른 목소리를 냈다.
윤지상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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