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향 수원대 교수 |
그런데 그가 대표적인 노숙인 밀집지역인 영등포 역전 파출소로 전입된 것이다. 그의 주요 임무는 400명에 달하는 노숙인의 사건 사고를 막는 것이었다. 그에게 노숙인이란 언제 소란을 피울지도 모르는 귀찮은 존재였었단다.
그러나 그들과 자주 부대끼면서 그들을 인간적으로 이해하게 됐다. 이해하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보이게 되지 않겠는가. 더구나 지난 겨울은 매섭도록 추웠으니, 대합실 맨 바닥에서 자야 하는 그들에게 절실한 것은 무엇이겠는가. 추위에 떠는 노숙자들에 대한 사랑으로 김 경위는 경찰 내부통신망에 글을 올렸다. 제목은 ‘숙자 씨를 도와주세요.’
“여름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 슬리퍼를 신고 다니는 사람. 이불이 없어 이 추운 엄동설한에 대합실 맨바닥에 자는 사람. 인간인 제가 차마 눈을 뜨고 보기에 너무나 비참한 현실이기에 경찰가족 여러분에게 이렇게 호소의 글을 올립니다. … 혹시, 집에 남는 겨울 점퍼나 내의, 이불, 운동화 등등 생필품이 있으시면 저에게 좀 보내주십시오. 보내주시면 제가 여러분을 대신해서 그들에게 나눠 주고 싶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진솔한 글은 그 자체로 힘을 가졌다. 그 글을 본 경찰들이 움직인 것이다. 손수 택배비까지 물면서 겨울옷을 보내왔고, 김 경위는 그렇게 전달된 사랑을 노숙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사랑이 사랑으로 흐른 것이다.
상상 속의 노숙인은 ‘나’와 상관이 없는 이상한 나라의 불우이웃이거나 귀찮고 성가신 존재였지만 현실 속 인연으로 맺어진 노숙인은 희로애락이 이해되는 사람이었다. 이제 그 숙자 씨들은 김 경위 형을 찾아 음료수를 사들고 파출소로 찾아들고, 정부 지원금을 받았다며 슈퍼마켓으로 형을 모시고 가 한턱 쏘기도 한다고. 김 경위는 진짜로 노숙자들의 형이 되었다. 형이 말한다.
“이제 노숙자들을 지켜주고 싶어요. 만약 이들을 괴롭히는 사람들을 보면 잡아다 벌할 겁니다.” 지구를 지켰던 독수리 오형제의 마음이 그랬지 않았을까, 노숙자를 지키는 형의 마음이 든든해 보인다.
노숙인들은 왜 노숙인들이 된 것일까? 그들이 노숙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연들이 있었을까? 나와 다른 삶은 언제나 나와 다른 무늬로 생을 배우고 있는 것일 것이다. 사연이야 어떻든 그들의 삶의 터전을 든든히 지켜주는 민중의 지팡이가 따뜻하다.
수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