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등단 석 달 만에 32점 완판, 검증된 아트테이너…“연기+그림, 두 마리 토끼 다 잡을 것”
“아직 화가라고 불리기엔 많이 어색하죠(웃음). 그런데 어찌 보면 참 아이러니컬한 것 같아요. 저는 원래 화가를 꿈꿨고, 배우는 정말 우연찮게 시작한 일이었거든요. 그때 목표했던 대학에 떨어져서 화도 나고 실망도 하던 차에 길거리 캐스팅이 됐었어요. ‘이렇게 된 거 유명한 연예인이 돼서 돈도 많이 벌자!’ 했던 거죠. 사실 대입 실패가 인생에서 그렇게 큰일이 아닌데도 그땐 인생 최초의 실패였고 좌절이었기에 자존심이 많이 상해 있던 상태였어요. 그렇게 화가를 꿈꾸다 우연히 배우의 길을 걷게 돼서 17년을 활동했는데, 지금은 부끄럽게도 화가로 조금씩 불러주시니까 기분이 정말 요상해요(웃음).”
배우 아닌 화가 박기웅은 자신을 ‘햇병아리’라고 표현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이름 앞에 ‘화가’라는 칭호가 붙게 된 것은 최근 몇 달 사이의 일이다. 3월 24일 제22회 한국 회화의 위상전에서 특별상인 ‘K아트상’을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작품 활동에 나섰으니 대중들에게 화가 박기웅이 알려진 시간은 고작 2~3개월이었다.
비교적 짧은 기간이지만 박기웅은 어느 정도 뚜렷한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그의 첫 수상작인 ‘Ego’(이고)를 포함한 초기 작품들은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명품샵 갤러리 ‘럭셔리판다’에 전시됐다. 이어 6월에는 19일부터 26일까지 명동 L7호텔 버블라운지에서 그의 두 번째 전시회 ‘Ki.Park-Re:+’가 열렸다. 총 33개 작품 가운데 32개 작품이 전시 중에 완판될 정도로 뜨거운 관심이 쏠렸다.
“그림을 판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구매하신 분이 진짜 그 그림을 좋아하고, 또 작가와 (작품을 통해) 소통할 수 있었으니까 그 그림을 골라서 구입하는 거잖아요. 심지어 제 그림은 그렇게 재테크 가치가 없을 것 같은데(웃음), 그런데도 구매하신다는 것 자체가 감개무량하고 너무 기분이 이상해요. 아, 좀 더 잘 그렸어야 했는데… 그런 생각도 들고(웃음). 더 열심히 발전해 나가야겠다 싶죠.”
첫 전시회 때엔 박기웅의 ‘화가’ 친구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미대 시절 고락을 함께했던 친구들 가운데는 이미 미술 분야에서 이름만 들어도 알법한 유명인들도 있었다. 화가를 꿈꾸던 박기웅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그래서 누구보다 신랄하게 비평을 해줬을 친구들의 감상은 어땠을까. “막 욕하던데요.” 박기웅은 웃음부터 터뜨렸다.
“아주 엄청난 크리틱(비평)을 하고 갔어요(웃음). 그래도 그 친구들이 ‘실력이 빨리 는다’ ‘작업량이 어마어마하다’면서 ‘네가 정말 열심히 하는 것 같다’고 말해준 게 너무 기뻤고 또 기억에 강하게 남아 있어요. 제가 노력하고 있다는 걸 인정받는 칭찬이 무엇보다 좋거든요. 감동이었죠. 배우 친구들도 전시회를 보고 갔는데 제 작품 중에 ‘스포트라이트’라는 작품에 공감을 많이 해줬어요. 스포트라이트 아래 갇힌 우리 배우들의 자화상 같은 모습에 많이 공감이 갔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이 기뻤어요.”
박기웅은 ‘사람’을 그린다.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그림을 놓아본 적이 없다는 그의 작품에는 나이도, 생김새도 제각각 다른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방향에 시선을 둔 채 잠겨있다. 모티브는 그대로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변하고 있는 점이 있다면 실사적이었던 색채가 과감함을 띠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인물 그 자체가 가질 수 있는 이미지와 반대되는 추상을 더하면서 해석의 틀을 넓혀가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제겐 아직 대단한 세계관이 없어요. 그저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거죠. 감정 그 자체와 감정에 따른 메시지를 표현하고자 하는데 그 매개가 인물이에요. 제가 원래 인물을 좋아하고, 배우 데뷔 전에 입시미술학원 강사 일을 할 때 소묘 강사였거든요. 인물을 가르치는 사람이었던 거죠. 또 배우 생활을 하면서 아무래도 직업 특성상 보통 분들보다 인물을 많이 살펴보며 연기를 해 왔잖아요. 그래서 좀 더 디테일하게 (인물화를) 그릴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
그런 그도 최근의 아트테이너들을 향한 비판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했다. 자신의 작품 활동이 이슈가 되자 어디선가 삐죽삐죽 솟아나 자격을 논하다가, 미대 출신이라는 이야기에 어느새 사라져 버린 목소리들이었다. “실력이 되지 않는 연예인들이 이름값에 편승해서 화가를 자칭하는 것이 못마땅하다”는 게 그들의 주장인 만큼 실력에 대한 1차적 검증이 가능한 대학으로 박기웅을 걸러낸 셈이다. 예술, 특히 미술계에서 연예인들의 활동을 놓고 이처럼 자격 검증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가운데 박기웅은 “대중예술은 그것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즐기는 사람들이 주체가 되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연기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시야가 마니악해질 때가 있어요. 15년차 이상인 친구들끼리 모여서 항상 하는 얘기가 그거예요. 우리가 오래 활동하면서 변해가더라도 가장 대중적인 시선을 유지하자고. 가끔 사람들이 예술에 대해서 비판을 할 때 이런 말들을 하시더라고요. ‘넌 보는 방식이 틀렸어, 제대로 하려면 공부를 해야 해.’ 물론 그 말도 맞는 말이에요. 하지만 그런 비판을 강요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대중예술은 즐기는 사람들의 것이거든요. 예술의 어떤 장르가 됐든 즐기는 데 남의 잣대를 맞추면 그건 즐기는 게 아닌 것 같아요. 즐기는 분들이 주체가 됐으면 해요.”
박기웅은 7월에 열릴 단체전을 준비 중이다. 새로운 작품 활동을 위해 자는 시간도 줄여 가며 작업에 한창이다. 여기에 현재 촬영 중인 웨이브 드라마 ‘유 레이즈 미 업’까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다. 화가로서의 박기웅도 좋지만 배우로서 그의 활동도 여전히 기다리고 있는 팬들을 위해 앞으로의 활동 계획을 물었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싶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연기와 그림 모두 꼭 병행하고 싶어요. 그 둘은 굉장히 합이 잘 맞거든요. 연기는 종합예술의 개념이어서 사람들의 공동 작업이다 보니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있어요. 하지만 그만큼 우연치 않게 잘 맞아서 오는 희열도 굉장하죠. 그림은 혼자 조용히 제가 전지전능한 1인이 되는 직업이라 두 예술의 합이 잘 맞는 것 같아요. 가능하면 꼭 병행하고 싶어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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