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에 전광훈까지 온갖 보수진영 러브콜…여권 ‘윤석열보다 더 부담스런 상대 될 수도’ 견제구
최재형 감사원장은 문재인 정부 초반인 2018년 1월 임기를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가 자랑하던 ‘클린 인사’ 최재형 원장은 2020년 10월 20일 감사원의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 타당성 감사’ 결과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청와대와 대립각을 세웠다. 이 감사 결과 보고서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이끌던 검찰이 ‘탈원전 정책’ 전반에 수사의 칼날을 들이댈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이때부터 되레 야권에서 “최 원장을 대권후보로 관리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
그럼에도 차기 대권을 둘러싼 스포트라이트는 윤 전 총장 쪽으로 더 쏠렸다. 2021년 3월 검찰총장직을 사임한 뒤 윤 전 총장은 ‘전언 정치’를 바탕으로 대권 도전 포석을 깔기 시작한 까닭이다. 최 원장은 감사원장 직무를 수행하며 잠잠한 행보를 이어갔다. 하지만 6월 들어 윤 전 총장의 ‘전언 정치’ 시스템이 X파일 의혹, 대변인 사퇴 등 연이은 악재로 난관을 만났다. 이에 또 다른 외부인사인 최 원장을 둘러싼 대안론이 급부상했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이른바 ‘윤석열 X파일’ 이슈가 불거진 뒤 윤 전 총장에겐 의구심 어린 시선이 쏠렸다”며 “반대급부로 최 원장에 대한 관심은 높아지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는 “윤 전 총장이 선택한 ‘전언정치’ 방식은 자신의 장점인 신선도를 애매하게 만들고 있다”며 “그 사이 최 원장이 지지율 측면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하며 야권 내 윤 전 총장 대항마로 떠오르고 있다”고 귀띔했다(관련기사 [6월 여론조사] ‘대선후보 선호도’ 최재형 3.9% 5위로 깜짝 데뷔).
최 원장 행보는 정치권 기대감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최 원장은 6월 마지막주 사의를 표명한 뒤 ‘대권 도전 로드맵’을 본격적으로 펼칠 전망이다. 다만 사퇴와 동시에 대권 도전을 선언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최 원장이 사의를 표명한 뒤엔 여권으로부터 쏟아지는 견제구를 적절히 받아낼 만한 시간적 여유를 가질 것”이라는 것이 보수 진영 관계자 전망이다.
보수 정치권 복수의 관계자에 따르면 최 원장은 여러 세력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다는 후문이다. 다양한 세력이 ‘최재형 감사원장’이란 키워드와 연결되고 있는 상황이다. 야권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이른바 태극기 세력이 최 원장 영입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 소식통은 “극우 성향 보수 단체가 앞장서서 최 원장 정치 참여를 대비해 조직 구성에 나서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해당 단체의 배경엔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나 이재오 전 의원 등이 존재하는 것으로 안다. ‘조국 사태’ 이후로 내리막길을 걸었던 ‘태극기 세력’이 최 원장 영입을 바탕으로 기존 구도를 반전시키려는 시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 원장의 경우 신촌교회 장로를 지낼 정도로 독실한 기독교인인데, 이런 상황에서 전 목사와 교감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다만 ‘최재형 대안론’이 본격 불거지는 상황에서 최 원장이 ‘태극기 세력’과 공개적으로 손을 잡을지 여부는 미지수다.”
국민의힘 당직자 출신 관계자는 “최 원장의 전국 조직 구성의 방향성은 ‘태극기’보다 PK(부산·울산·경남)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최 원장 고향이 경남 창원시 진해구인데, 최 원장 전국 조직 구성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는 인사는 정의화 전 국회의장으로 알려져 있다”고 주장했다. 정의화 전 의장 역시 청원시 진해구 출신으로 부산 중구·동구를 기반으로 5선 의원을 지낸 바 있다. 정 전 의장은 최근 들어 최 원장을 둘러싼 대선 출마설 관련 ‘전언 창구’로 통하고 있다.
또 다른 보수 진영 관계자 역시 “정 전 의장이 최 원장 측근으로 활동하는 상황에서 ‘태극기 세력’과 손을 잡을 가능성은 점점 낮아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며 “최 원장이 그들의 손을 잡을 경우 X파일 의혹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윤 전 총장보다 빠르게 낙마할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21대 총선을 기점으로 당내 비주류로 밀려난 ‘친박 세력’이 최 원장을 중심으로 다시 결집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친박 출신 정치권 관계자는 “친박계 의원들을 비롯한 정치인들이 최재형 대안론을 유의미한 현상으로 보고 있다”며 “친박계는 최 원장 지지율이 TK(대구·경북)와 60대 이상에서 높은 현상에 주목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전 국민적인 공감대를 형성할 만한 구심점을 찾지 못했던 것이 친박계의 약점이었는데, 흠결 없는 이력을 가진 최 원장이 ‘친박 부활 선봉장’이 될 수 있다는 희망 어린 시선에 불이 지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간 킹메이커를 자처했던 유력 정치인들도 윤석열과 최재형 사이에 중립기어를 두고 현 상황을 관망하는 양상이 뚜렷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자신을 둘러싼 ‘비공식적 러브콜’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최 원장은 6월 26일과 27일 사이 부친을 찾아 자신의 대권 도전 의사를 시사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진다. 최 원장 부친은 최영섭 예비역 해군 대령으로, 한국전쟁 당시 해군 첫 승전보를 올린 대한해협해전에 참전한 인사다.
하지만 최 예비역 대령은 아들의 정치 참여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6월 22일 채널A 보도에 따르면 최 예비역 대령은 “얼마 전 둘째(최 원장)에게 ‘정치 이야기가 나오는데, 아사리판 그 복잡한 세상에 발도 들여놓지 말라’고 했다”고 말했다. 최 원장이 주말에 부친을 찾아가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는 자리를 가지려는 의도로 보인다.
대권 로드맵이 본격화되는 상황에서 최 원장 역시 신고식을 앞두고 있다. 정치적 중립 위반 논란에 대한 여권 견제구가 이어지는 까닭이다. 여권 유력 정치인들은 6월 22일부터 연이어 최 원장에 대한 견제구 구속을 높이고 있다.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은 6월 22일 MBC 라디오 ‘표창원의 뉴스하이킥’과 인터뷰에서 “(최 원장이 감사원장 임기를) 잘 마무리해서 우리 사회 큰 어른으로 남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 바람을 갖고 있다”며 최 원장 정치 참여에 간접적으로 부정적인 시선을 드러냈다.
여권 대선주자 중 한 명인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6월 23일 자신의 SNS를 통해 “정치적 중립과 독립성이 생명인 헌법기관 수장이 정계 진출을 운운하고 있다”며 최 원장에 직격탄을 날렸다. 이 의원은 “이회창 전 총재가 감사원장을 지낼 때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며 존재감을 과시했다”며 “(최 원장이) 이 전 총재를 오마주하고 영웅시했던 것 아니냐”고 의구심을 드러냈다. 이어 “공명정대함이 앞서야 할 감사원 뒤편에 앉아 계산기를 두드리는 처사는 비겁하다”고 덧붙였다.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으로 잘 알려진 윤건영 민주당 의원은 6월 2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임기 중 (감사원장 직을) 박차고 나와 대선에 출마하는 건 국민에 대한 모독”이라고 비판했다. 윤 의원은 “당위론적으로 말하면 (최 원장이 대선에 출마하는 일은) 그래서는 절대 안 된다”며 “현직 감사원장이 임기를 그만두고 중간에 정치를 한다는 것은 정말 도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했다.
러브콜과 견제구 사이에 선 최 원장의 구체적인 대권 로드맵은 ‘6말 7초’를 기점으로 윤곽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미 명실상부한 차기 야권 대선주자로 부상했다. 이제 관심은 ‘법관 외길’을 걸어온 최 원장이 정치권에서 자신만의 정무감각을 뽐낼 수 있을지에 쏠린다.
최 원장은 1956년생으로 창원 진해에서 출생해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제23회 사법고시에 합격한 최 원장은 육군 법무관으로 군복무를 마친 뒤 서울지방법원 동부지원 판사로 임용됐다. 문재인 정부에서 감사원장으로 임명된 2018년 전까지 최 원장 이력서는 오로지 법관이라는 단어로만 채워졌다.
문재인 정부는 최 원장을 임명할 당시 그를 흠결 없는 후보자로 자부했다. ‘7대 인사 원칙’에 부합하는 몇 안 되는 ‘클린 인사’라는 자신감이었다. 이런 청와대 자신감을 증명하듯 최 원장은 고교 시절 소아마비를 앓던 친구를 2년간 업어서 등·하교한 일화와 아들 두 명을 입양해 입양 관련 이슈에 소신 발언을 하며 대중의 관심을 받았다. 이런 일화들은 그에게 ‘미담 제조기’라는 새로운 별명을 붙여줬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가 임명한 ‘클린 인사’가 ‘미담 제조기’로 진화한 뒤 야권 유력 대권주자로 떠올랐다”며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 아래 여권 내부에선 ‘윤석열보다는 최재형이 더 부담스런 상대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최 원장이 감사원장의 정치적 중립성 위반 논란이란 장애물을 넘는다면 윤석열-이재명 양강 체제로 고착화되고 있는 구도에 가장 큰 변수로 떠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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