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재판에서도 1·2심 재판부는 “형사처벌을 받았다고 해도 치료명령은 사라지지는 않는다”고 유죄 판결을 내렸다. 이제 이 사건은 대법원의 판결만 남은 상태다. 만약 이번 재판에서도 유죄를 받는다면 A 씨는 다시 수감생활을 하게 된다. 이후 형기를 마칠 즈음 또 약물치료를 거부한다면, 계속해서 재판을 받게 될 수도 있다. 반대로 법원이 A 씨의 구금기간 동안 치료기간이 진행된 것으로 인정한다면 기나긴 재판은 끝나고 A 씨는 성충동 약물치료를 받지 않게 된다. 이렇게 될 경우 또 다른 성충동 약물치료 거부자가 나올 가능성이 생기게 된다. 대법원의 최종 판단에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이른바 화학적 거세라고도 불리는 성충동 약물치료는 ‘성폭력범죄자의 성충동 약물치료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성범죄를 저지른 19세 이상 성도착증 환자 가운데 재범 위험성이 있다고 인정되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며, 비정상적인 성적 충동이나 욕구를 억제하기 위해 약물투여 및 심리치료 등의 방법이 사용된다. 통상 형집행 종료·면제 등 석방되기 전 2개월 이내 실시하며 치료기간은 최대 15년이다.
국내에선 2012년 5월 처음 치료명령이 집행됐다. 1984년부터 2002년까지 10세 미성년자 다수를 대상으로 상습적 성폭력을 해 온 아동 성범죄자 박 아무개 씨(당시 45세)였다. 첫 거부자는 그로부터 5년 뒤에 나왔다. 청소년을 성폭행한 혐의로 징역 5년을 복역한 A 씨다. 그는 성충동 약물치료 명령을 거부했다가 출소 당일 구속 기소됐다.
일요신문이 확인한 A 씨 관련 사건의 판결문은 총 6개다. 이를 정리하면, A 씨는 2013년 8월 2일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에서 미성년자의제강간죄 등으로 징역 5년, 성충동 약물치료 1년, 신상공개 10년과 80시간의 성폭력치료프로그램 이수명령 등을 선고 받았다. 미성년자의제강간죄는 만 13세 이상 16세 미만의 미성년자에 대해 간음 또는 추행을 한 자에게 적용된다.
문제는 A 씨가 출소를 앞두고 성충동 약물치료를 거부하면서 시작됐다. 법무부는 성충동약물치료법 제14조 제3항에 따라 A 씨에 대한 성폭력 사건 징역 5년형의 집행이 종료되기 2개월 전인 2017년 11월 5일 치료명령의 집행을 시도했으나 A 씨가 이를 거부한 것이다. 약물투여로 인해 심장질환이 악화되거나 뇌가 손상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검찰은 총 8차례에 걸쳐 A 씨에게 경고장과 경고이유서를 보냈지만 A 씨는 부작용 검사도 받지 않았다.
검찰은 A 씨의 재범 위험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당시 기소 검사가 법원에 제출한 증거목록은 총 46개로, 소아성기호증 진단에 대한 정신감정서, 심리치료 내역, 재범위험성에 대한 내용이 서술된 수사보고서 등이었다. 결국 검찰은 A 씨를 성충동약물치료법 위반 혐의로 출소 당일인 2018년 1월 5일 현장에서 체포했다.
이에 대해 당시 대전지검 공주지청 관계자는 “치료 명령을 거부하면 규정에 따라 처벌할 수밖에 없다고 여러 차례 고지했으나 계속 거부해 형사처벌 할 수밖에 없었다”며 “(A 씨는) 재범의 위험성이 있는 성범죄자로 약물 치료를 거부한 첫 사례로서 출소 후 재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구속 기소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법원도 재범 가능성을 인정, 2018년 6월 22일 A 씨에 대해 징역 1년 6월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인은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다수의 성폭력범죄를 저지른 성도착증 환자로서 성충동약물치료명령의 필요성과 타당성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며 “그런데도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기보다는 ‘약물을 투여 받지 않을 수 있는 치료감호소의 내부지침이 있다’는 등의 허위주장을 하는 등 어떻게 해서든 적법하게 확정된 성충동약물치료명령의 집행을 거부하려는 성향 등을 고려해 엄중히 처벌함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피고인 측에서 항소했으나 대전지법과 대법원이 “원심의 판단이 정당하다”며 이를 기각하면서 2019년 1월 10일 원심이 확정됐다.
#성충동약물치료는 형벌일까, 치료일까
그런데도 A 씨는 여전히 약물치료를 거부하고 있다. 법원에 따르면 A 씨는 2019년 5월 형집행 종료 두 달을 앞두고 또 다시 약물치료를 거부해 재판을 받고 있다.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서 진행 중이다. 성충동약물치료법 위반 혐의로 벌써 두 번째 재판을 받는 것이다.
만약 이번 재판에서 유죄가 선고된다면 A 씨는 다시 수감생활을 하게 된다. 이후로도 약물치료를 지속적으로 거부하면, 같은 혐의로 세 번째 재판을 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반대로 A 씨의 구금 기간이 치료기간의 진행으로 인정되는 등 법원의 새로운 해석이 나온다면, 또 다른 치료 거부자가 등장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물론 또 다른 치료 거부자 역시 A 씨처럼 다시 구속돼 재판을 받고 치료기간이 진행되는 기간 이상의 수감생활을 해야 하지만, 적어도 그런 치료 거부자가 발생할 가능성은 생기는 셈이다.
A 씨의 행위에 대해 1·2심 재판부는 유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치료명령은 보안처분으로 헌법불합치결정의 소급효가 없어 A 씨에 대한 치료명령의 근거조항이 폐지됐다고 볼 수 없고, 치료명령도 면제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형사처벌은 받았다고 하더라도 치료명령이 실효되거나 면제될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남은 것은 대법원의 판결인데, A 씨의 운명은 대법원이 ‘구금 기간’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갈릴 것으로 보인다. 성충동약물치료법에 따르면 구속영장의 집행을 받아 구금되어 있는 동안은 치료명령의 집행을 정지하도록 되어 있다.
대법원은 이번 재판의 쟁점으로 “A 씨가 구금되어 있는 동안 치료명령의 집행이 정지되더라도 법원이 선고한 치료기간은 정지되지 않고 도과되었다고 볼 수는 없는지 여부와 관련법 위반으로 구금이 되는 경우에는 집행 정지 규정의 적용이 배제된다고 해석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등을 보겠다”고 밝혔다.
법조계에서도 이번 재판 결과를 주목하고 있다.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성충동 약물치료의 법적 성격을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법적 성격을 판단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법원이 구체적인 사건에서 소급효금지원칙 적용을 판단할 때 보안처분이냐 형사처분이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성충동약물치료를 보는 시선은 치료 목적의 보안처분으로 보는 입장과 실질적인 형벌로 보는 두 가지 입장으로 나뉜다. 즉 성충동 약물치료가 ‘치료냐, 벌이냐’의 문제다.
법적으로 보면 성충동 약물치료는 형벌 이외에 가해지는 예방적 성질의 형사제재인 보안처분에 속한다. 그러나 해당 제도가 도입된 배경과 의도가 단순히 재범 방지뿐 아니라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자에 대하여 그 책임에 상응하는 강력한 처벌을 가하는 데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 치료기간을 정하는 기준에 재범 위험성뿐만 아니라 해당 범죄의 죄질과 책임 등이 포함된다는 것을 보면 형벌적 성격이 강하게 녹아 있는 보안처분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박찬걸 대구가톨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2013년 대검찰청 공법연구회에서 “보안처분의 범주가 넓고 그 모습이 다양한 이상, 보안처분에 속한다는 이유만으로 일률적으로 소급효금지원칙이 적용된다거나 그렇지 않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며 “보안처분이면서도 형벌적 성격을 갖는 경우가 있을 수 있고, 그러한 보안처분에 대해서는 소급처벌금지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기본권 침해” 3차례 헌법소원 모두 각하
취재 과정에서 A 씨가 세 번이나 헌법소원을 청구한 사실이 추가로 밝혀졌다. 2015년 헌법재판소가 성충동약물치료법 일부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을 근거로 자신의 기본권이 침해 받고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실제로 A 씨가 구금되어 있는 동안 법조계에서는 성충동약물치료법을 두고 그 효과와 강제성에 대한 논의가 이뤄진 바 있다. 치료목적의 보안처분인 성충동 약물치료가 개인의 신체와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이에 2015년 12월 23일 헌법재판소는 성충동약물치료법 제8조 제1항에 대해 “(성충동 약물) 치료명령 선고시점과 집행시점 사이에 시간적 간극이 클 경우 불필요한 치료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며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리고 개선입법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이후 성충동 약물치료명령 집행의 면제신청이 가능한 관련 법률 제8조의 2가 신설됐다. 다시 말해, 재범 위험성이 낮다면 약물치료를 받지 않아도 될 가능성이 생긴 셈이다.
그런데 A 씨의 경우, 신청 대상자에 해당하지 않았다. 해당 법이 A 씨에 대한 약물치료명령 선고 이후 개정된 까닭이다. 이를 두고 또 다른 법리적 다툼이 시작됐다. A 씨는 2019년 총 3회에 걸쳐 “자신의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A 씨의 청구를 모두 각하했다.
헌재는 그 이유에 대해 “청구인의 약물치료명령 선고는 2015년 이전인 2014년에 확정됐고, 헌법소원을 청구할 수 있는 기간이 도과했으며, 헌법불합치결정이 있었던 법률 조항은 형벌에 관한 조항이 아니므로 소급효가 없다”고 판시했다.
조두순은 왜 약물치료 안 받나…판결 후 법 제정
성충동 약물치료가 제도화된 여러 이유 가운데 하나는 2000년대 발생한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가 전 국민을 두려움과 충격에 빠뜨렸기 때문이다. 특히 2008년 12월 발생한 조두순 사건이 그 도화선이었다. 이후 2010년 2월 김길태 사건, 같은 해 6월 김수철 사건 등 아동을 상대로 한 성범죄가 연이어 언론에 보도되면서 성범죄자를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2008년 발의돼 2년 가까이 계류 중이던 성충동 약물치료법은 이 사건들을 계기로 2010년 6월 국회를 통과했다.
그런데 정작 제도 도입의 불씨를 당긴 조두순은 성충동 약물치료를 받지 않았다. 조두순에 대한 대법원 확정 판결(2009년) 이후 성충동 약물치료법이 제정됐기 때문이다. 또, 별도의 치료감호 명령은 받지 않아 법무부 치료감호심의위를 통한 약물치료 처분도 적용할 수 없었다. 당시 조두순이 받은 형량은 징역 12년, 신상정보공개명령 5년, 전자발찌부착 7년 형이 전부였다. 선고 때 명령이 포함되지 않았더라도 검사가 치료명령을 청구할 수도 있으나 조두순 본인의 동의가 필요했다.
이런 이유로 지난해 조두순의 출소를 앞두고 국민적 불안이 고조되자 정치권과 정부는 조두순의 재범을 예방하기 위한 대책들을 쏟아냈다. 정부는 조두순 주거지 반경 1km 내 지역을 여성안심구역으로 지정해 폐쇄회로(CC)TV를 증설하는 등의 ‘재범방지 방안’을 발표했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20년 10월 13세 미만 대상 성폭력 범죄자에 한해 피고인 동의 없이도 약물치료를 강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개정안에는 해당 법 시행 전에 확정판결을 받은 사람에 대해서도 적용한다는 조항이 포함됐다. 개정안이 통과됐다면 판결 당시 성충동 약물치료 명령을 받지 않은 조두순도 치료 대상이 될 수 있었으나 해당 법안은 아직까지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조두순에게 성충동 약물치료를 시행했다면 재범 우려가 줄었을까. 성충동 약물치료를 둘러싼 논란은 제도 도입 전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특히 성충동 약물치료의 효과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대다수의 성범죄는 상대방을 폭력으로 지배하려는 욕구와 분노에서 발생하는데, 약물이 성적 충동은 억제할지언정 폭력적인 동기까지 억제하지는 못 하기 때문이다.
강동경희대병원 심장혈관내과 박창범 교수는 2018년 발표한 논문에서 “성충동 약물치료가 재범방지에 효과적인지에 대하여 아직까지는 과학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근거가 부족하다”며 “특히 성인에게 이런 약물치료가 소아에 대한 성적 학대를 줄일 수 있는지에 대한 보고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범의 우려가 높은 성도착증 환자에게는 성충동 약물치료가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법무부의 의뢰를 받아 2018년 발간한 ‘성충동 약물치료의 성과 및 발전방안 연구 용역 보고서’를 보면 약물 치료가 종료됐거나 진행 중이었던 치료자 25명의 경우, 약물 치료 기간 단 한 명도 동종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법원이 약물 치료를 기각했던 성범죄자들 6명 가운데 3명은 출소한 뒤 평균 14.6개월 만에 다시 성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약물 치료가 성범죄자들의 성적 충동행동을 조절하는 데 효과가 있었음을 반증한 셈이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