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전세대란 속 인상된 전세 보증금을 월세로 받는 ‘반전세’가 늘고 있다. 사진은 서울 잠실 부근의 부동산중개업소.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그러나 조 씨는 “월급쟁이가 아이를 키우면서 어떻게 월 100만 원을 월세로 낼 수 있느냐”며 “직장이 강남이어서 분당 쪽으로 전세를 알아보고 있지만 매물이 많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최근 서울 강남권 등 전세가가 폭등한 지역을 중심으로 오른 보증금을 월세로 전환하는 반전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전세가가 짧은 기간에 급등하면 기존 세입자는 계약을 연장해 머물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대부분의 월급 생활자가 1~2년 사이에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씩 목돈을 모으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다른 전세를 찾아 이사를 하거나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반전세 계약을 하게 되는 것이다.
전세가가 도대체 얼마나 올랐기에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국민은행에 따르면 2009년 1월부터 올해 1월까지 2년간 서울과 수도권 아파트 전세가는 각각 19.4%, 16.4% 올랐다. 같은 기간 매매가가 서울은 1.4% 상승하는 데 그쳤고, 수도권은 오히려 1% 하락한 것과 뚜렷하게 대비된다. 서울이나 수도권 매매가는 물가 상승 등을 고려하면 사실상 모두 마이너스 변동률을 보인 셈이다.
특히 최근 반전세가 늘어난 서울 송파구나 서초동, 경기도 과천 등지 집값은 대부분 하락하거나 제자리걸음을 한 반면 전세가는 폭등했다. 예컨대 송파구 아파트 전세가는 지난 2년간 35.6%나 올랐고, 서초구는 30.2% 상승했다. 과천의 경우는 42.5%나 폭등했다. 나비에셋 곽창석 사장은 “지난 2년간 매매가는 제자리걸음이고 저금리 기조는 계속 유지됐기 때문에 대출을 많이 받고 투자 목적으로 집을 산 집주인들은 크게 손해를 봤을 것”이라며 “반전세를 통해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반전세 요구를 많이 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반전세가 임대시장의 대세로 자리 잡을까. 전문가들은 집값이 오르지 않고 정체되는 시장에서 전세는 사라지고 월세로 재편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반전세는 임대제도가 전세 중심에서 월세로 옮겨가면서 나타나는 현상일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주택을 보유하기 위해선 매수비용, 각종 세금, 수선유지비 등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지금까지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비용을 투입한 집을 전체 비용의 절반 정도로 전세를 놓을 수 있었던 이유는 집값이 올랐기 때문이다. 집값이 비용 이상으로 올랐기 때문에 전세 제도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집값은 현재 수준을 유지하거나 하향 안정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구체적인 시기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지만 고령화 저출산 등의 영향으로 2015년 이후 주택 수요가 감소하기 시작하며 대부분 2020년께부터 집값은 하향 안정될 것이란 전망이 대세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장영희 연구위원은 “전세는 집값이 계속 올라야 유지되는 임대제도”라면서 “중장기적으로 집값이 안정되면 사라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장 연구위원은 이에 따라 “지금 상황에서 정부가 도시형생활주택 공급을 일시적으로 늘리는 등 전세 공급을 확대하는 정책은 중장기적인 차원에서 시장 흐름에 오히려 역행하는 것”이라며 “월세를 보다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월세부담액에 대한 세금 공제를 확대하는 등 과감한 월세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최근 몇 년간 집값이 많이 오르지 않았던 지방의 경우 전세가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광주가 대표적이다. 국민은행의 임대차 분포 조사 자료에 따르면 올 1월 기준 광주 임대시장에서 전세 비율은 2009년 1월 50.2%에서 올 1월 35.1%로 급감했다. 이 기간 광주 집값은 2.4% 상승률을 기록했고 남구의 경우는 -0.1% 변동률을 기록했다.
집값이 하락하고 있으니 집 주인 입장에서 전세를 놔봐야 손해인 셈이다. 그렇다고 은행에 돈을 맡겨봤자 금리가 낮아 수익률이 떨어진다. 월세를 늘리는 집주인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부동산부테크연구소 김부성 소장은 “광주는 지난 2~3년간 집값 상승률이 2% 정도로 금리를 고려하면 사실상 하락했다”며 “저금리 상황에서 집값이 오르지 않으면 임대시장에서 전세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수도권 임대시장도 지방처럼 월세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될까. 전문가들은 수도권은 아직은 이르다고 본다. 사실 지난 2~3년간 서울과 수도권도 집값은 거의 오르지 않았지만 지방과 달리 전세가 월세로 빠르게 전환되지는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 김부성 소장은 “서울 및 수도권은 여전히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높기 때문에 전세를 월세로 금방 전환하지 않고 있다”고 해석했다.
집값 상승 기대감이 있으면 집을 사려는 수요는 커질 수밖에 없다. 집을 살 때 월세보다 많은 보증금을 받을 수 있는 전세를 놓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집을 매수해 기다리겠다는 심리가 있으면 전세는 줄어들지 않는다. 세입자 입장에서도 매달 월세를 내는 것보다 전세에 들어가는 게 속편하다. 월세보다 전세 선호율이 훨씬 높다.
국민은행 부동산연구소 나찬휘 팀장은 “최근 반전세가 확산되고 있다는 소식이 곳곳에서 들려오지만 기존 계약을 갱신하면서 나타나는 일부 현상일 뿐 수도권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으로 보기 어렵다”며 “수도권에서는 여전히 전세가 임대시장의 대세”라고 말했다. 일부 전세가가 폭등한 지역에서 반전세 증가 현상이 나타나고 있지만 수도권에서 아직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중장기 전망은 어떨까. 당장은 아니어도 전세가 조금씩 사라지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수도권에서도 집값이 안정되면 전세 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고, 전세가는 오르게 마련이다. 이렇게 되면 반전세 현상은 다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는 예상이다. 명지전문대 부동산경영학과 서후석 교수는 “중장기적으로 보증금은 그대로이거나 줄어들면서 월임대료가 올라가는 식으로 조금씩 월세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박일한 중앙일보 조인스랜드 기자 jumpcut@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