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월 알제리 수도 알제에서 벌어진 반정부 시위 도중 300여 명의 시위대가 진압 경찰과 충돌, 부상자가 속출했다. AP/연합뉴스 |
처음 튀니지에서 ‘재스민 혁명’이 시작됐을 때만 해도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느긋했던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지도자들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시민 혁명의 여파에 잔뜩 긴장하고 있다. 튀니지의 벤 알리 대통령에 이어 급기야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까지 하야하자 행여 불똥이 자국에까지 튀진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 실제 알제리, 예멘 등 일부 국가에서는 민주화를 갈망하는 시위대의 움직임이 날로 격화되고 있다. 특히 독재자로 악명 높은 카다피가 최고지도자인 리비아에서도 시위대와 보안당국이 충돌해 수십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번 시민 혁명이 이처럼 빠른 속도로 확산되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도 이들 지역의 지도자들이 대부분 수십 년간 장기 집권하고 있는 독재자들이란 점, 그리고 정부의 부정부패와 높은 실업률, 그리고 극심한 가난에서 비롯된 국민들의 쌓인 불만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얼마 안 가 이들 지역의 독재자들이 하나둘 도미노처럼 쓰러지고 말 것이라고 예견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 모로코
- 모하메드 6세 국왕(47·1999~현재)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왕국 가운데 하나인 모로코는 국왕이 통치권과 함께 군사권도 갖고 있으며, 최고지도자와 군참모총장, 그리고 최고종교지도자를 겸하고 있다.
지난 1999년 아버지 하산 2세가 사망한 후 즉위한 모하메드 6세가 12년 째 통치하고 있다. 모하메드 6세는 다른 이웃나라에 비해 사회 전반에 걸쳐 대대적인 개혁을 추진하면서 국민들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으며, 특히 여권 신장에 기여해서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는 데 앞장섰다.
하지만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개혁을 한다고 해도 절대왕권이 위협을 받을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한계는 있는 것. 가령 모로코 국민의 15%는 여전히 빈곤층이며, 국민의 절반가량은 문맹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10%의 높은 실업률로 빈곤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서민들은 굶주림과 가난에서 허덕이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모로코 시내 곳곳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소규모의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 요르단
- 압둘라 2세 국왕(49·1999~현재)
옥스퍼드대학과 워싱턴의 조지타운대학에서 수학했으며, 영국의 샌드허스트왕립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이런 배경 때문에 영국 및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친서방 정책을 펴고 있다.
1999년 아버지 후세인 국왕이 사망한 후 왕위를 물려받았다. 국회의원 정족수 120명 중 절반은 국민투표로 뽑지만 나머지 절반은 국왕이 임명하도록 되어 있다.
튀니지와 이집트 시위에 영향을 받은 요르단 시민들이 지난 1월 세 차례에 걸쳐 경제 정책과 인플레이션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인 바 있으며, 지난 1월 28일에는 수도 암만에서 3500명이 집결한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시위대는 사미르 리파이 총리의 퇴진과 내각 해산을 요구했으며, 결국 위기감을 느낀 국왕은 시위대들의 요구를 수용해 내각을 해산한 후 장군 출신의 마루프 엘 바키트를 새 총리로 임명했다.
▲ 레바논
- 미셸 술레이만 대통령(62·2008~현재)
2008년 제12대 대통령으로 선출됐으며, 국가원수 및 최고군통치권자를 겸하고 있다. 중동 최대의 이슬람 무장단체인 헤즈볼라가 이끄는 야당과 친미 성향인 여당 사이에서 중립 노선을 걷고 있으며, 이런 이유 때문에 대통령에 당선됐다.
지난 1월 헤즈볼라 출신의 의원들이 사임하면서 연정 탈퇴를 선언하자 위기에 직면한 상태다. 이유는 사드 하리리 총리가 UN의 레바논특별법원이 2005년 라피크 하리리 총리 암살 사건의 배후에 헤즈볼라가 있다는 의견을 수용했기 때문이었다.
헤즈볼라는 그 후 하리리 총리의 사임을 요구했으며, 결국 술레이만 대통령은 이 요구를 수용해 헤즈볼라의 지지를 받는 통신재벌 나지브 미카티를 새 총리로 임명했다.
레바논의 대통령은 6년 단임제로, 술레이만 대통령은 오는 2014년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하게 된다.
▲ 시리아
-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45·2000~현재)
자신의 아버지인 하피즈 알아사드의 뒤를 이어 지난 2000년 취임했으며, 2007년 단일후보로 출마해 90%의 압도적인 지지율로 재선에 성공했다. 11년째 집권하고 있는 그는 이로써 30년 동안 시리아를 철권 통치했던 아버지와 함께 부자간에 대통령직을 세습하면서 총 40년 넘게 시리아를 통치하는 진기록을 세우고 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강경한 반이스라엘 정책을 펴고 있으며, 헤즈볼라를 후원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튀니지와 이집트 혁명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있는 상태. 지난 2월 5일 시리아 야권단체인 ‘민주이슬람운동’이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벌이겠다고 엄포를 놓았지만 정작 시위에 참가한 시민들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이처럼 시리아가 민주화 혁명의 불길을 피해갈 수 있는 것은 알아사드 대통령이 그동안 적절하게 취해왔던 개방 정책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자본주의를 도입해서 경제 개혁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지난 1월에는 극빈가정 구제정책을 내놓으면서 민심을 달래는 데 주력해왔다. 이런 당근 정책 덕분에 시리아의 실업률은 다른 중동국가에 비해 그나마 10%를 넘지 않는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경찰 국가’라고 불릴 정도로 체포와 고문이 일상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다는 점, 언론 탄압이 심해지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인구 중 14%가 빈곤층이란 점 등은 여전히 문제로 꼽히고 있다.
▲ 사우디아라비아
- 압둘라 빈 압둘 아지즈 국왕(86·2005~현재)
사우디 국왕은 정치지도자 및 최고종교지도자를 겸하며, 국왕의 권력을 견제할 의회나 정당이 전무하기 때문에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한다.
사우디 초대 국왕인 압둘 아지즈의 13번째 아들로 1995년 이복형인 제5대 국왕 파드가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부터 실질적인 지도자로 군림해왔으며, 2005년 파드가 사망하자 6대 국왕으로 즉위했다. 친서방, 친미 노선을 유지하고 있으며 조지 부시 전 대통령과는 친밀한 사이를 자랑한다. 또한 튀니지의 벤 알리 전 대통령과도 친분이 두터워서 그의 망명을 허락하기도 했다.
반정부시위를 허용하지 않는 강력한 절대군주제를 시행하고 있는 덕분에 어지간해선 시위나 집회가 일어나지 않는 사우디이긴 하지만 튀니지와 이집트의 시위를 지켜보면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사우디에서는 근래 들어 비록 소규모이지만 산발적으로 시위가 일어나고 있으며, 지난 1월 29일 서쪽의 항구도시인 제다에서는 30여 명이 거리로 뛰쳐나와 반정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정당이 없고, 조직화된 시민단체가 없는 사우디에서 반정부 여론이 얼마나 확산될지는 미지수다.
▲ 알제리
- 압델아지즈 부테플리카 대통령(73·1999~현재)
1999년 대통령직에 오른 후 대통령 임기가 무제한이 되도록 헌법을 개정해서 2004년, 2009년에 걸쳐 12년째 연임하고 있다.
튀니지와 이집트의 시위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국가 중에 하나며, 특히 젊은 청년들을 중심으로 시위가 격화되고 있다. 1월부터 도시 곳곳에서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고 있다. 지난 1월 12일에는 2000명이 모여 시위행진을 벌이다가 경찰 병력 3만 명과 무력 충돌을 일으켜 세 명이 사망하고 800명이 부상을 당했다.
위기감을 느낀 부테플리카 대통령은 물가를 안정시키고, 특히 1999년부터 20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국가비상사태를 해제하겠다며 뒤늦게 시위대의 화를 누그러뜨리려 애쓰고 있다. 하지만 반정부 세력은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면서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 리비아
- 무아마르 알 카다피 최고지도자(68·1969~현재)
무려 40년 넘게 철권통치를 하고 있는 독재자 중에 독재자. 육사 출신인 군인으로 1969년 국왕 이드리스 1세가 해외여행으로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왕정을 무너뜨리고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했다.
정권을 장악한 후에는 이슬람과 사회주의를 혼합한 ‘아랍사회주의’라는 새로운 체제를 만들었으며, 이슬람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목표로 영국과 미국의 군사기지를 폐쇄하고 석유회사를 국유화했다.
리비아에서 정당 창설은 불법이기 때문에 1당 독재 체제가 계속 유지되고 있다. 또한 언론 역시 엄격하게 검열을 당하고 있기 때문에 카다피에 대한 비난이나 비판을 했다간 목숨이 위험한 지경에 이른다. 카다피는 공공연하게 “우리 리비아에서는 절대로 시위 같은 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하지만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민주화 열망은 점차 리비아에까지 번지고 있다. 지난 15일에는 북부 항구도시 벵가지에서 정부에 대한 비판을 했던 변호사가 체포된 것을 계기로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당시 시위에 참가한 시민들은 적게는 수백 명에서 많게는 2000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당시 시위에서 수십 명이 사망했다는 소문도 있지만 워낙 언론 검열이 심하기 때문에 상황은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 또한 국제앰네스티(AI)는 리비아 보안당국이 지난 16일부터 18일까지 반정부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면서 모두 46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 수단
- 오마르 알바시르 대통령(67·1989~현재)
1989년, 1993년, 2000년에 걸쳐 3선에 성공하면서 20년 넘게 수단을 통치하고 있는 독재자다. 강력한 이슬람 지도자를 표방하고 있으며, 2004년 내전이 종료되면서 남부 수단과 평화협정을 맺고 남부 수단의 독립 여부를 국민투표에 붙일 것을 약속했다.
지난 1월 9~15일에 걸쳐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98.83%의 높은 찬성률로 독립이 결정된 남부 수단은 오는 7월 신생국으로 탄생할 예정이다.
▲ 예멘
-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68·1978~현재)
1978년 북예멘의 아메드 알가시미 대통령이 암살된 후 대통령직을 물려받았으며, 그 후 1990년까지 북예멘의 대통령으로 군림했다. 1990년 남예멘과 북예멘이 통일되면서 통일 예멘의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했고, 1999년 96%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당선됐다.
이로써 그는 직접선거로 선출된 예멘 최초의 대통령이 됐으며, 2006년에는 다시 77%의 높은 지지율로 재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알제리와 함께 현재 가장 시위가 격화되고 있는 나라로 꼽히고 있으며, 1월부터 시작된 시위는 2월 들어서도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11일 시작된 수천 명의 대규모 시위는 나흘 째 지속됐으며, 대다수가 젊은 학생들인 시위대는 “이집트 다음은 우리 차례다!”라고 외치면서 살레 대통령의 퇴진과 정치적 자유, 부정부패 척결을 촉구하고 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살레 대통령은 “오는 2013년 임기가 끝나는 대로 자리에서 물러나겠다. 아들에게 대통령직을 물려주지도 않겠다. 헌법을 개정해서 종신 대통령 제도를 없애겠다”면서 타협안을 제시했다. 소요 사태가 더 이상 번지지 않길 희망하는 야당 측은 이 제안을 수용했지만 정작 시위대는 즉각 사퇴를 요구하면서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 오만
- 카부스 빈 사이드 국왕(70·1970~현재)
1970년 영국의 도움을 받아 쿠데타를 일으켜서 정권을 잡았다. 아버지 사이드 빈 타이무르의 보수적인 억압정치에 불만을 품고 있었으며, 정권을 장악한 후에는 아버지를 국외로 추방시키고 왕궁을 점령했다.
아버지와 달리 도로, 항만, 병원, 학교 건설에 박차를 가했으며, 통신장비와 공장을 건설하는 등 현대화 정책을 꾀했다. 또한 내각과 의회제도를 설립하는 등 개혁정치를 실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제한적인 개혁으로 국왕이 최고지도자, 수상, 국방장관, 외무장관 등을 겸하고 있는 등 여전히 권력은 왕실에 집중되어 있다.
지난 1월 17일에는 수도 무스카트에서 생필품 가격 인상에 항거하는 200여 명의 시민이 모여 시위를 벌였으며, 생활고에 지친 시민들은 “치솟는 물가 때문에 더는 못 살겠다”면서 물가 안정을 요구했다.
비록 성격은 다르지만 행여 다른 나라의 반정부 시위 불똥이 자국에 옮겨붙진 않을까 염려하고 있는 사이드 국왕은 현재 대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