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학부모 ‘아이 보복’ 두려워 외부 반출 비동의 등 열람 어려워 “퇴소 각오해야”
보건복지부와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서 지난 4월 14일부터 시행 중인 ‘영상정보처리기기 설치운영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학부모는 자녀가 아동학대로 피해를 입었다고 의심될 경우 어린이집의 CCTV 영상 원본을 열람할 수 있다. 단, 어린이집 외부로 반출할 시 권리 침해로 교직원과 자녀 외 다른 원아를 알아볼 수 없도록 모자이크 처리 등 보호조치는 필수다.
어린이집 CCTV 설치 의무화는 2015년 영유아보호법 개정으로 시행됐다. 기존에도 어린이집 내에서 학대가 의심되는 경우 보호자가 CCTV 영상을 열람할 수 있었지만, 법에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어 일부 어린이집은 보호자에게 고가의 영상 모자이크 처리 비용을 요구하는 사례가 있었다. 외부 반출이 아니어도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학대자와 학대 의심 아동을 제외한 모든 제3자 얼굴에 모자이크 처리 비용을 요구한 것이다.
이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이후 CCTV 설치운영 가이드라인이 일부 수정됐으며 국회에선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이 처리됐다. 즉, 학부모가 ‘원본 또는 사본 열람을 요구할 수 있다’고 명시함에 따라 모자이크 처리 등 절차 없이도 학부모가 원하면 CCTV 영상 열람이 가능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부모들이 영상을 열람하기가 쉽지 않다. 일부 학부모들은 비록 모자이크 처리 없이 원본 영상을 열람할 수 있다지만, ‘어린이집 퇴소’를 각오하고 진행해야 한다고 전한다. 교직원들과 갈등은 물론 다른 학부모들이 자신의 자녀까지 보복할 수 있다는 우려에 경찰, 언론 등 CCTV 외부 반출을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1일 한 ‘맘카페’에는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맞았다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는 제목의 글이 게재됐다. 작성자는 “3살 때부터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 아들이 4살이 된 후 어린이집을 옮겼는데 무섭다고 안 간다고 울더라. 선생님이 때렸다고 한다”며 자녀가 교직원의 폭행 모습을 재연했다고 밝혔다. 이어 “아이가 ‘많이 울었어. 엄마가 선생님 체포해서 잡아가줘’라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이를 본 학부모들은 “(저라면) 옮길 각오하고 CCTV 확인하겠습니다”라고 의견을 모았다.
2017년 육아정책연구소에서 발표한 ‘우리나라 영유아 학대 현황 및 예방 방안’에 따르면 ‘어린이집에 CCTV를 설치하는 것이 아동학대 예방에 도움이 되냐’는 설문에 부모 90.6%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답했다. 대다수 학부모가 CCTV를 통해 어린이집에서 발생하는 아동학대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장에선 원아 여러 명이 학대를 당한 경우가 아니라면, 한 학부모가 자신의 아이가 받은 학대 정황을 밝히기 위해 CCTV 영상을 증거로 삼으려 해도 다른 학부모들이 자신의 아이를 향한 교직원의 보복이 두려워 CCTV 외부 반출을 허용하지 않는다.
서울 옥수동에 거주하며 3살 자녀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A 씨(39)는 “누가 봐도 어린이집에서 발생한 학대지만 피해 원아가 여럿이 아니면 다른 학부모들이 CCTV 외부 반출, 열람 등에 소극적”이라며 “같이 행동했다가 교직원에게 자기 아이가 보복받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A 씨에 따르면 CCTV 외부 반출에 동의한 학부모들의 아이를 교직원들이 때때로 괜히 밀거나 살짝이라도 때리기도 한다.
어린이집 CCTV 갈등 문제는 경찰 조사에서도 발생한다. 경찰이 학대 신고가 들어온 어린이집으로 출동해 CCTV를 직접 확인하지 않고 학부모가 경찰에 CCTV를 제출하는 경우에도 다른 학부모들과 교직원들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이때 교직원 또는 다른 학부모 한 명이라도 반출에 동의하지 않으면 영상을 경찰에 제출할 수 없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관계자는 “CCTV를 외부 반출하려는 학부모들은 대체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리거나 언론에 제보하려는 분들”이라며 “CCTV 확인이 필요하면 직접 경찰을 대동해서 가면 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외부 반출 통제권이 사라지면 CCTV 영상이 무분별하게 퍼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A 씨는 “학부모가 먼저 CCTV를 확인하고 학대가 포착돼 경찰 대동 후 재확인하면 되겠지만 자녀가 학대를 당한 상황에서 ‘절차’를 따질 정신이 있을까 싶다”며 경찰에 제출하는 행위를 외부 반출로 보고 다른 학부모들과 교직원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호소했다.
일부에선 학부모가 CCTV 열람을 신청할 경우 어린이집은 10일 이내에만 회신하면 되기에 영상 삭제 우려도 있다고 주장한다. 학부모들은 또 어린이집에 따라 CCTV 열람 방침이 다른 것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무분별한 열람 요구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한 어린이집 교직원 B 씨(29)는 “학부모가 요구할 때마다 무분별하게 열람을 하게 할 순 없다”며 “교직원이 마치 감시의 대상이 되는 존재로 비친다”고 주장했다. B 씨는 “‘아동학대 정황이 있을 시’ ‘유아의 안전 저해 시’라는 열람 기준보다 구체적으로 어떤 정황들이 있었을 때 학부모가 CCTV를 확인할 수 있는지 명확한 기준 제시가 먼저이며 이에 맞춰 모든 어린이집의 CCTV 확인 절차를 통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CCTV에 의존하기보다 어린이집을 열린 공간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정선아 숙명여대 아동복지학과 교수는 “각 지자체에서 선정하는 열린 어린이집처럼 학부모가 상시 드나들며 아이들을 지켜볼 수 있도록 어린이집을 투명하고 개방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린이집 평가에 학부모, 시민 등 다양한 주체가 함께 참여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는 “불시에 찾아가 CCTV 영상을 무작위로 돌려보는 등 어린이집이 잘 운영되고 있는지 점검하는 시민평가단이 있었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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