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이광재 시동 걸고 이낙연 2차 합류 가능성…결선투표 ‘역전 홈런’ 쉽지는 않아
막차 탑승 경쟁이 여권 대선 경선판을 흔들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와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후보 단일화 승부수가 대표적이다. 정 전 총리와 이 의원은 6월 28일 후보 단일화에 전격 합의했다. 민주당 예비경선(컷오프) 등록 첫날부터 '반이재명' 연합군의 불씨를 잡아당긴 셈이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도 “바람직하다”고 애드벌룬을 띄웠다. 반이재명 전선이 확대될 경우 여권 대선 구도에도 적잖은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그야말로 깜짝 발표였다. 두 후보 측이 ‘긴급 공지’ 형태로 중요 발표를 공표한 것은 6월 27일 밤 10시 30분께다. 장소는 한국거래소. 각 후보 캠프는 긴박하게 흘렀다. 양 후보 발표가 정책 연대 선에 그칠 것이란 관측부터 “후보 단일화에 합의했다”는 말도 흘러나왔다. 정치권이 이들의 후보 단일화 가능성을 포착한 것은 6월 초다. 여권 안팎에선 경선 연기파 3인방(이낙연·정세균‧이광재)이 사실상의 후보 단일화 통해 결선투표에서 뒤집기를 노릴 것이란 얘기가 끊이지 않았다.
이 중 후보 단일화의 매개물 역할을 한 이는 이광재 의원이다. 그는 6월 10일 국회에서 열린 ‘도심 소재 공항 주변 고도제한 완화를 통한 주택 공급’ 기자간담회에서 “대선 후보자 간 정책 연대를 통해 당 차원에서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6월 22일에는 경선 연기파 3인방이 같은 주제로 공동 토론회를 개최, 반이재명 연합군 개시에 불을 지폈다. 앞서 이 의원 주도로 6월 9일 당 소속 경기 지역 기초단체장 17명과 함께 ‘정세균·이광재가 묻고 답하는 경기도 기초단체장과의 간담회’도 열었다.
여권 한 전략통은 “각 캠프가 내부 여론조사를 토대로 판세 분석을 한 결과가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그간 당 내부에선 “1위보다 막차 경쟁이 더 치열하다”는 분석이 많았다. 민주당은 7월 11일 9명 후보 중 6명의 본선 진출자를 가리는 컷오프를 진행한다. 애초 여권 안팎에선 빅 3 이외에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박용진·이광재 민주당 의원이 본선에 진출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일각에선 정 전 총리와 이 의원이 예상 밖으로 고전하고 있다는 관측도 고개를 들었다.
일부 보좌관들 사이에선 “이러다가 원조 친노(친노무현)끼리 꼴찌 싸움을 하는 게 아니냐”는 말도 있었다고 한다. 이들이 언급한 원조 친노란 이 의원과 노무현 정부 때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 장관을 지낸 김두관 의원을 말한다. 7월 11일 예정인 민주당 컷오프부터 깜짝 이변이 발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앞서의 여권 전략통도 “이 지사와 이 전 대표를 빼고는 누가 본선에 진출해도 이상할 게 없는 판세”라고 말했다.
일요신문이 여론조사기관 조원씨앤아이에 의뢰해 6월 27∼29일까지 사흘간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에서 이 지사(23.7%)를 제외한 여권 대선 주자들은 모두 한 자릿수 선호도를 기록했다. 이낙연 전 대표(8.4%),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4.8%), 정세균 전 총리(3.4%), 박용진 의원(1.3%) 등이었다. 범보수 진영에선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34.3%로 가장 높았다.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6.1%), 최재형 전 감사원장(5.6%),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3.9%), 유승민 전 의원(2.7%) 등이 뒤를 이었다(관련기사 [7월 여론조사] ‘대선후보 선호도’ 이낙연 8.4%…두 자릿수 붕괴).
경선 연기파 3인방 중 정 전 총리와 이 의원의 선 단일화는 막차 탑승을 위한 정치적 승부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회창 대세론을 꺾고자 노·정(노무현·정몽준) 단일화를 던졌듯, 범친노와 원조 친노가 승부수를 띄웠다는 의미다.
친노·친문(친문재인)계에선 그간 요구했던 대선 경선 연기론 무산 이후 위기감이 상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친문 핵심인 홍영표 의원과 부산 친문인 전재수 의원이 대선 경선 연기를 공개적으로 주장했지만, 비타협 원칙론을 고수한 송영길 대표는 최종 불가를 선언했다. 그로부터 사흘 뒤 정 전 총리와 이 의원은 깜짝 단일화 추진을 발표했다. 1등을 못 할 바에야 ‘똘똘한 2등’이라도 필요하다는 위기감이 깔린 고육지책으로 분석된다.
특히 양자 단일화 선언 이후 여권 관계자들은 경선 구도 판세가 어디로 흘러갈지 촉각을 곤두세웠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말만 후보 단일화지, (컷오프를 우려한) 이 의원이 정 전 총리를 밀어주려는 전략이 아니겠냐”라며 “정 전 총리가 출마를 중도 포기하고 ‘이광재 지지’를 선언하지 않는 이상 파급력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의원 측은 “우리 스스로 출마를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양자 단일화가 최종 성사되면 여권 대선 경선 본선행 막차는 김두관 의원, 양승조 충남도지사, 최문순 강원도지사 간 3파전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 3인방과 추미애 전 장관, 박용진 의원은 “단일화는 없다”며 완주 의지를 밝혔다. 민주당 관계자들은 “누가 막차를 타는지는 1위 후보를 맞히기보다 더 어렵다”라며 “어쨌든 정세균·이광재 후보 단일화로 반이재명 연대의 색깔은 한층 뚜렷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관전 포인트는 △반이재명 연합군의 확장 여부 △결선투표 시 뒤집기 가능성이다. 일단 전자는 청신호다. 경선 연기파 3인방의 한 축인 이낙연 전 대표는 연일 정세균·이광재 후보 단일화에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다. 이들이 후보 단일화 선언 이후 첫 일정으로 경남 봉하마을을 찾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참배한 6월 29일 이 전 대표는 한 라디오에 출연, 연대 가능성에 대해 “당연히 나에게도 해당되는 문제”라고 화답했다. 앞서 ‘민주당 적통론’의 당위성을 주장한 이 전 대표가 ‘후보 단일화=당사자 문제’로 치환한 것이다. 여의도 안팎에선 “반이재명 연합 전선의 판이 커질 수도 있다”는 전망이 쏟아졌다.
“7월 5일 이낙연의 입을 주목하라.”
민주당 한 당직자의 말이다. 7월 5일은 이 전 대표가 제20대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는 날이자, 정세균·이광재 후보 단일화 데드라인 날이다. 정치권 안팎에선 이 전 대표가 이날을 대선 출정식으로 잡은 것도 반이재명 연합군 합류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전 대표가 원샷이 아닌 단계적 단일화를 통해 반이재명 연합군의 판을 키우는 역할을 맡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여권 내 이재명 경기도지사 다음으로 지지도가 높은 이 전 대표는 ‘3자 원샷 단일화’에 참여할 실익이 많지 않다. 당 컷오프까지는 상대적으로 여유도 있다. 시간 벌기를 통해 판 키우는 게 낫다는 의미다.
문제는 반이재명 연합군의 파급력이다. 후보 단일화의 반향이 없으면 결선투표를 하더라도 9회 말 투아웃 역전 홈런은 불가능하다. 변수는 친문계 현역 의원 및 80만 명가량의 권리당원 표심이다. 친문계 일부 지지를 받는 정 전 총리의 낮은 지지율과 친조국을 외치며 나온 추 전 장관의 등장이 맞물리면서 반이재명 연합군 파급력이 ‘추다르크(추미애+잔다르크)’에게 갈 것이란 관측도 만만치 않다. 민주당 한 당직자는 “이낙연·정세균·이광재 지지도를 합쳐봐야 30%도 안 나온다”라며 “결선투표에 가더라도 뒤집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9룡 대결의 원조 격인 신한국당(현 국민의힘) 대선 경선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당시 이인제·이한동·김덕룡·이수성 후보 등은 반이회창 연대를 구축했다. 1차 투표에선 이회창 후보가 41.12%로 1위를 기록한 가운데, 이인제 후보가 14.72%로 이한동·김덕룡·이수성 후보를 가까스로 꺾고 결선에 진출했다. 1차 투표에서 나타난 구도는 ‘4 대 6’으로 반이회창 연합군의 우세. 하지만 결선투표 결과는 정반대로 60% 지지를 얻은 이회창 후보의 승리였다. 이인제 후보는 40% 지지에 그쳤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대세론에 맞서 연대 전선을 구축해도 이탈표는 있기 마련”이라며 “당심도 결국엔 민심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윤지상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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