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유권한 행사 차원 흥국생명 선수 등록 시도 무산…“칼 들고 있었을 뿐” 쌍둥이 ‘반격’ 인터뷰 논란 키워
#흥국생명의 판단 착오
한동안 잠잠했던 이재영·이다영 자매의 학교 폭력 사건이 재점화된 것은 6월 22일 한국배구연맹(KOVO) 이사회에서 김여일 흥국생명 단장이 이재영·이다영을 선수로 등록할 것이고, 최근 그리스 이적설이 불거진 이다영의 해외 진출에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연맹에 전달하면서부터였다.
물론 흥국생명 입장도 어느 부분에선 이해된다. 선수 등록을 포기할 경우 두 선수가 자유계약(FA) 신분이 돼 다른 팀으로 자유롭게 이적할 수 있기 때문. 흥국생명은 입장문을 통해 이재영·이다영의 선수 등록이 두 선수의 코트 복귀를 의미하는 게 아닌 단순히 구단의 선수 보유 권한을 행사하는 차원이었다는 점을 발표하려 했지만 부정적인 여론이 커지면서 입장 발표를 미루기도 했다.
이에 선수등록 마감일을 앞두고 흥국생명이 이재영·이다영을 선수로 등록할지 여부에 관심이 쏠렸다. 하지만 흥국생명은 온·오프라인에서 반대 시위가 이어지고 브랜드 불매 운동이 언급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해지자 두 선수의 등록 포기 결정을 내렸다.
#쌍둥이 자매의 반격?
이재영·이다영은 선수 등록이 좌절된 날 잇달아 방송 인터뷰에 나서 그동안 참았던 서운함을 토로했다. 그들은 4개월 전 학교 폭력 논란이 불거졌을 때 구단에서 사과문을 써야 한다고 요구했고, 구단이 보내준 대로 받아 적었다는 내용도 폭로했다. 피해자가 밝힌 내용과 사실이 다른 부분이 있어 소명하고 싶었지만 구단에서 ‘괜히 시끄럽게 하지 마라, 이미지 생각해 달라, 아니면 계약을 해지하겠다’라고 말해 구단 뜻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는 내용까지 밝혔다.
특히 피해자들이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다영이 칼을 들고 위협했고, 그 과정에서 피를 흘렸다고 말한 것과 관련해서 이다영은 다른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칼을 대고 목에 찔렀다 이런 건 전혀 없었던 부분이고 그걸 들고 욕을 했을 뿐이다”라고 해명했다. 이후 자신이 무릎 꿇고 사과하고, 걔(피해자)도 울고불고 서로 미안하다, 잘못했다 하면서 잘 풀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나 이재영·이다영의 해명 인터뷰는 오히려 논란에 더 큰 불을 지핀 꼴이 되고 말았다. 그들은 억울함을 호소하고 돌아선 여론을 바꿔보려고 인터뷰에 나섰지만 “다시 시작하고 싶다”며 눈물을 흘린 쌍둥이 자매를 향한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진심으로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거나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배구인들의 의견
배구팀을 이끄는 A 감독은 쌍둥이 자매 관련해서 선뜻 자신의 의견을 내놓지 못했다. 다른 팀 일이긴 하지만 어떻게 보면 배구계 전체의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참을 망설이던 A 감독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같은 감독으로서 박미희 감독의 입장을 먼저 생각했다. 지난 시즌 선수단 내분과 이재영·이다영 학폭 논란이 불거졌을 때 힘들게 견디는 모습을 봤다. 최근 선수들이 한창 훈련에 몰두해야 하는 시점에 다시 악재가 되풀이되는 상황이 매우 괴로울 것이다. 감독이란 자리는 어느 정도 성적이 나오고 팀 모양새가 잘 갖춰지면 정말 좋은 직업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무척 어렵고 고통스런 자리이기도 하다. 박 감독도 많은 노력을 했겠지만 선수들을 이끄는데 어느 부분에서는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정확한 원칙을 갖고 어느 선수도 예외를 두지 말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데 대한 자책이 있었을 것이다.”
김연경이 긴 해외 생활을 마치고 흥국생명으로 복귀했고, 이다영이 흥국생명으로 이적하면서 쌍둥이 자매 이재영과 함께 뛰게 됐을 때 흥국생명은 ‘흥벤저스’로 불리며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혔다. 그러나 일부 배구인들은 대표팀 시절에도 불화설이 나돌았던 김연경, 이재영에다 톡톡 튀는 이미지의 이다영이 좋은 호흡을 보일지에 대해선 의구심을 가진 것도 사실이다.
시즌 초반에는 팀 성적이 연승 가도를 내달리며 세 선수의 호흡에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시즌이 진행되면서 패하는 경기들이 나오자 이런저런 소문이 불거졌고, 이다영의 토스가 김연경이 아닌 이재영한테 쏠리는 것과 관련해서 기자들도 의혹의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특히 이다영은 다른 선수들과 달리 개인 SNS를 적극 활용했다. 밤늦게 라이브 방송으로 팬들과 소통했고 팬들한테 받은 선물을 자랑하는 등 자신의 인기를 과시했는데 A 감독은 그런 선수의 개인 행동을 감독이나 구단에서 통제하지 못한 부분을 지적했다. 즉 단체 생활이 중요한 배구팀에서 유독 쌍둥이 자매의 개인 행동을 눈 감아 준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선수는 연예인이 아니다"
흥국생명이 선수 등록일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부분은 두 선수의 등록을 포기할 경우 자유 신분 선수가 돼 다음 시즌 3라운드까지 다른 구단과 자유롭게 계약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국외리그 진출도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대한배구협회에선 두 선수의 국제이적동의서(ITC) 발급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렇다면 이재영·이다영을 영입하려고 움직이는 팀이 있을까. 수도권 배구팀의 B 코치는 “쉽지 않은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학폭 논란은 물론 다양한 구설에 휘말린 선수를 재능이 아깝다며 덥석 손을 잡을 수 있는 팀은 거의 없을 것이다. 특히 이번 방송 인터뷰로 인해 두 선수에 대한 동정 여론마저 등을 돌렸다. 재능과 실력은 아깝지만 충분한 반성과 사과, 그리고 학폭 논란 문제가 말끔히 해결되지 않는다면 다시 코트에 서는 모습을 보긴 어려울 것 같다.”
앞서 언급한 A 감독은 기자와의 인터뷰 말미에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배구 선수한테 가장 중요한 건 실력과 인성이다. 그리고 선수는 연예인이 아니다. 아무리 인기가 있다고 해도 배구 코트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게 우선이다. 여자 배구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을 수 있었던 쌍둥이 자매의 몰락은 어른들도 책임이 있다. 그래서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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