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7년 9월 16일 오후 9시 45분, 강릉 경포호수의 한 정자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1914년 갑인생 동갑 계원 21인이 문예 교류를 위해 지었다는 아담한 정자, 석란정(石蘭亭). 이날 화재로 1956년부터 경포호수 풍경의 일부로 자리 잡았던 석란정은 하루아침에 잿더미가 되었다.
화재 후 경찰은 화재 원인을 찾기 위해 방화, 자연발화 등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를 벌였지만 명확한 원인을 밝혀낼 수 없었다. 안타깝게도 이유를 찾지 못한 이 기이한 불은 화재 발생 당시 바로 불길이 잡혔지만 6시간 만에 다시 불씨가 살아나 진화 작업 중이던 소방관 두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당시 순직한 대원들은 부자지간처럼 지냈다는 이영욱(59), 이호현(27) 소방관이었다. 정년을 1년여 앞둔 베테랑 소방관과 임용 1년이 안 된 새내기 소방관은 다시 살아난 불길을 잡기 위해 석란정 안으로 들어가 진화 작업을 벌였는데 그 순간 정자가 무너져 버렸다.
두 명의 소방관은 왜 목숨을 잃어야 했을까. 당시 유가족은 물론 동료 소방관과 주민들은 화재의 원인을 너무나 알고 싶었지만 석란정 화재 사건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일반 화재'로 종결되었다.
과연 그날 밤, 2개의 온돌방과 2개의 마루방으로 이뤄진 작은 목조 정자에서 일어난 화염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고 이호현 소방관 아버지 이광수 씨는 "아무런 내용도 모르고 왜 이렇게 끝났는지도 몰라요. 누구 하나와 가지고 이렇게 해서 끝났습니다라는 말을 한마디도 못 들어 봤으니까"라고 말했다.
석란정 화재를 두고 주민들과 화재를 진압했던 소방관들은 의아함이 컸다고 한다. 당시 석란정은 사람이 거주하는 곳도 아니고 전기가 공급되는 곳이 아니어서 불이 날 만한 요소를 상상하기 힘든 건물이었다는 것.
게다가 당시 석란정 바로 옆에서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호텔 건설이 한창이었기 때문에 석란정은 펜스로 가로막혀있어 일반인의 출입도 어려웠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화재의 원인을 분석한 두 기관, 국과수와 소방청은 각기 다른 결과를 내놓았다.
국과수에서는 현장에서 인화성 물질 성분이 검출되지 않아 화재 원인 판별이 불가능하다고 결론 내렸다. 반면 소방청에서는 자연 발화라고 하기에는 놀라울 정도로 처음부터 화재 규모가 상당했다는 점, 화재 현장에서 강한 인화성 물질의 냄새가 났다는 점, 석란정 마룻바닥에 인화성 물질이 뿌려진 흔적인 포어 패턴이 나타났다는 점 등을 들어 방화 가능성을 의심했다.
같은 현장이었지만 엇갈렸던 두 전문기관의 조사 결과.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경찰은 국과수의 의견을 따라 원인 불명으로 사건을 종결한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소방청의 의견을 참고해 방화 가능성에 대해선 조사하지 않은 것일까. 아니면 방화 가능성을 조사했지만 혐의점을 찾지 못한 것일까.
당시 화재 진압 소방관 하태원 씨는 "냄새도 그렇고 그 붕괴 사고가 난 이후에는 그 조금 이상하다. 우리끼리도 뭐야 화재가 이게 화재가 날 건물이 아닌데 이런 느낌이 좀 있었죠"라고 말했다.
화재 원인에 대한 많은 추측과 논란이 있었지만 답을 알지 못한 채 묻혀버린 석란정 화재 사건. 그러나 우리는 이와 유사한 오래된 목조 건물의 화재 사고를 막기 위해서도, 또한 끝까지 화마와 싸우다 운명을 달리한 소방관들과 그 유족을 위해서라도 불이 난 그 이유를 끝까지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석란정 화재가 발생한 2017년. 이 시기 석란정과 석란정을 둘러싼 주변 환경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제작진은 취재를 통해 석란정 소유주의 후손들과 강릉시, 호텔 공사 관계자 그리고 석란정의 관리인을 자처하는 인물 사이에 얽힌 갈등이 존재했음을 발견했다.
이들 사이의 갈등과 화재 사건은 관계가 없는 것일까. 그리고 화재가 났던 그날, 석란정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소방관 두 명의 안타까운 목숨을 앗아간 2017년 석란정 화재 사건을 재조명해 화재 원인을 과학적으로 추리해보는 한편 현장 취재와 재현 실험 등을 통해 방화 가능성까지 검토하는 등 석란정 화재 사건의 진실을 추적한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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