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제약회사 매니저에서 프리다이빙 강사가 되기까지…‘버닝’ 습관 내려놓고 자연으로
그가 10여 년 전 짧게 제주 여행을 하며 처음 들었던 생각이다. 제주시 월정리 한 카페에서 동갑내기 주인들의 사는 모습이 그에게 트리거(방아쇠)가 됐다.
강현석 제주프리다이빙 대표는 잘나가는 외국계 제약회사의 브랜드 매니저였다. 사회에선 인정받는 삶이었고 돈도 풍족하게 벌고 있었지만 가슴은 점점 허전해지고 ‘무언가 삶에서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들 무렵이었다. 업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찾았던 3박 4일의 제주 여행에서 그에게 가장 인상적인 건 제주에 사는 사람들의 소박한 웃음들이었다. 강현석 대표는 “서울에서와는 다르게 누군가와 좀 친해져도 아무도 내 스펙을 물어보지 않더라고요. 그게 신기하면서도 이상하게 마음 편했어요. 내가 행복을 사전적 정의로만 찾고 있었던 게 아닌가 의심이 들기 시작했죠. 빤한 궁금증이 깊이 밀려왔어요”라며 조심스레 말문을 연다.
#방향설정부터 다시
서른 초중반에 누구나 흔히 그렇듯 그도 사춘기를 훌쩍 지난 ‘오춘기’를 겪고 있었다. 꽤 오랫동안 오춘기를 겪으며 욕심과 열정이 뭐가 다른 건지, 트랙을 열심히 달렸는데 결승점에 원하던 게 없으면 어떻게 하지? 등의 질문을 1년 넘도록 고집스레 파고들었다. 그러면서 처음부터 방향 설정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국 아무도 그가 가야 할 길과 방향에 확신을 주지 않았다. 결국 스스로가 결정해야 할 일이었고 그 기준부터 타인이나 세상이 아닌 그 스스로 다시 정해야 했다. “나는 뭘 좋아하지?” “내 욕망은 정말 내 것일까?” 같은 질문부터 시작했다. 모르는 분야를 공부하듯 사소한 것에서부터 ‘나’를 탐구했다.
그는 “생각해보니 어릴 때 장난감이 갖고 싶었던 것처럼, 커서는 집과 차, 좋은 명함 같은 것이 갖고 싶어졌던 것 같아요. 물건의 행태가 달라졌을 뿐, 갖고 싶어 하는 마음에선 벗어나지 못했죠. 소유는 계속 나를 달리게 하고 갈증 나게 하겠구나 깨달았죠. 그래서 영원한 갈증에서 그만 벗어나자고 결심했어요. 그러고 나니 내가 있어야 할 곳과 가야 할 방향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죠. 그때부터 나라는 사람을 다시 세팅하기 시작했어요. 리셋이죠”라고 도인처럼 말한다. 그러고 보니 그의 눈빛이 나이답지 않게 영 아이 같다. 어쩌면 ‘나’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순수를 되찾은 것일까.
오랜 시간 스스로를 탐구하고 준비한 끝에 2016년부터는 프리다이빙 강사가 됐다. 워낙 물을 좋아하고 바다에 들어가면 잠수도 곧잘 했던 터라 프리다이빙 강사가 되는데도 그리 힘들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일과 이유를 찾으니 뭔가 크게 애쓰지 않아도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느낌이었다. 2017년 초엔 회사를 그만두고 아주 제주에 내려와 프리다이빙 스쿨을 열었다. 스쿨을 열고 프리다이빙 강사를 하는 와중에 스포츠웨어 배럴(BARREL)의 프리다이빙팀 선수로도 발탁됐다. 점점 퍼즐이 맞춰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별과 세대 넘어 세상과 소통
브랜드 매니저 출신이니 프리다이빙 스쿨을 연 뒤에도 뭘 어떻게 하면 홍보도 잘되고 다이빙센터도 더 커지게 될지가 눈에 보였지만 그는 굳이 규모의 성장을 위해 애쓰지 않기로 했다. 제주에 내려올 때의 초심을 생각하며 욕심을 내려놓고 너무 바빠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다잡았다. 처음엔 도시에서 소위 ‘버닝’하며 바쁘게 일했던 습관을 내려놓는 게 어색했지만 점차 익숙해져 갔다.
강 대표는 “죽음과 늙음을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해요. 영원히 살 것처럼 살지 않으려고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좀 더 현실적인 삶을 살게 해요. 엊그제 교복을 입었던 것 같은데 벌써 마흔네 살이 돼 있었죠. 과거 삶의 연장선상에서 압축된 시간으로 미래가 보였어요. 미래의 삶을 미래에 두지 않고 현재로 선명하게 가져오고 싶었어요. 지나온 시간은 일차원적이었지만 다가올 시간은 좀 더 입체적일 거라고 생각합니다”라며 미래가 아닌 현재의 삶에 좀 더 집중하고 싶다고 말했다.
'인생 2막'의 새로운 직업으로 그가 프리다이빙 강사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강현석 대표는 “성별과 세대를 넘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었어요. 자연이 마냥 좋다고 모두가 ‘나는 자연인이다’처럼 살 수는 없잖아요. 자연은 아름답지만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더 아름다운 거라고 생각해요. 자연 속에서 사람과 문화가 공존하는 일을 하고 싶었고, 제가 좋아하게 된 제주의 바다를 좀 더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일을 찾다가 프리다이빙을 발견했어요”라고 답한다.
그러면서 “강사가 말하면 수강생들은 일단 들을 수밖에 없잖아요? 누군가의 인생이 저로 인해 1도라도 각도가 틀어지거나 물음표가 붙으면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전 멘토가 없어서 한참 몰랐던 것을 누군가에게 친절히 말해주고 싶어요. 식당을 찾고 있는 배고픈 친구를 내가 발견한 맛집에 데려가는 것처럼요. 이 세상 맛만이 아닌 다른 맛도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고 싶지요” 말한다.
프리다이빙 인구는 2040이 주를 이루지만 50~60대도 할 수 있다. 체력적으로 다소 힘들거나 익숙지 않은 숨 참기와 수압 익숙해지기 등이 어려울 수 있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실제로 새로운 경험을 찾아 프리다이빙 스쿨의 문을 두드리는 50대도 종종 있다.
물론 20~30대가 가장 많다. 20대는 펄펄 뛰는 신체 동력이, 30대는 경제력이 뒷받침해 준다. 반면 20대는 진로 고민으로 힘들어하고 30대는 강현석 대표처럼 오춘기가 오기 쉬운 나이다. 직접 해보니 프리다이빙은 단순한 레포츠를 넘어 정신적인 위안이나 마음의 평화를 찾는 활동이기도 했다. 만만찮은 도전도 기다린다. 어떤 장비나 기구, 누군가가 쉽게 즐길 수 있도록 해주는 레포츠가 아니라 즐기는 단계에 오르기 위해선 스스로 넘어야 할 과정이 분명히 있다. ‘해루질’ 정도의 여가도 아니고 스노클링과도 확실히 다르다.
강현석 대표의 모토이자 제주프리다이빙스쿨의 슬로건은 'Free Yourself'다. 물속에서, 아니 그 어디에서나 원하는 것을 찾아 스스로에게 자유를 주는 시간을 허락해 보는 건 어떨까. 인생 후반전까지는 아니라도 하루, 혹은 한 달의 후반부에라도 말이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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