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승 우리금융 회장과의 행정소송 힘 빠지고 금융사들 종합검사는 더 촘촘해질 듯
감사원은 지난 5일 ‘금융감독기구 운영실태’ 감사 결과를 발표하고 총 45건의 위법‧부당사항이 확인됐다며 5명 징계, 17명 주의, 24건의 기관통보를 의결했다고 밝혔다. 특히 사모펀드와 관련해 금감원에 직원 12명에 대해 주의를, 2명에 대해 중징계인 정직을, 또 2명에게 경징계 이상의 징계처분을 요구했다. 사실상 금감원 한 부서 실무담당자 전원이 징계를 받은 셈이다.
그러나 금융위에는 ‘금융위원장에게 일반투자자의 위험 감수능력 등을 고려해 사모펀드에 직접투자할 수 있는 일반투자자의 투자요건을 설정하는 등 일반투자자 보호업무를 철저히 하도록 주의요구’하는 데 그쳤다.
이러한 결정에 금감원 노동조합은 성명서를 통해 “납득하기 어렵다”며 김근익 금감원장 권한대행에게 재심 청구를 요구했다. 금융위의 무리한 규제완화 책임이 다뤄지지 않은 데다 윤석헌 전 원장, 원승연 자본시장 담당 전 부원장 등 퇴직한 고위직이 징계 대상에서 제외되고 실무자가 징계를 받았다는 지적이다. 노조는 “의사결정권한이 없는 실무자가 가장 높은 수위의 징계를 당한다는 건 납득하기 어려운 결과”라고 강조했다.
금감원 내부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금감원 한 관계자는 “감사보고서에는 징계 받은 직원들의 실명이 거론되지 않지만,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직원까지 주의를 받게 된 것에 내부 반발이 상당하다”며 “금융위는 규제 완화 후 사모펀드 사태가 발생하자 급하게 다시 강화하는 개정안을 내놨는데, 기준 없이 정책을 바꾸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금감원 다른 관계자는 “감사원과 금감원 사이 오래 전부터 쌓여온 스토리가 있다”며 양측의 갈등을 언급하기도 했다. 실제로 2017년 ‘청첩장 사건’ 당시 보복감사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금감원 내부의 불만은 사모펀드 사태 이후 연이어 제기된 금융위 책임 논란과 그 궤를 같이한다. 금융위는 박근혜 정부 시절이던 2015년 7월 사모펀드 활성화를 목적으로 자본시장법을 개정하며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일반투자자가 투자할 수 있었던 ‘일반 사모펀드’와 전문투자자들이 5억 원 이상으로 투자하던 ‘전문투자형 사모펀드(헤지펀드)’를 통합하고 최소 투자금액을 5억 원에서 1억 원으로 하향조정했다. 또 사모 운용사 진입 자격을 자기자본 규모 기존 60억 원에서 20억 원(2017년 10억 원)으로 낮추고 ‘인가제’에서 ‘등록제’로 전환했다.
그 결과 2011년부터 2017년까지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던 사모펀드 환매 연기가 규제를 대폭 완화한 이후 우후죽순 늘어났다. 2018년부터 2020년 8월까지 361건이 발생했다. 입법조사처는 지난해 11월 ‘금융감독체계 개편 필요성 및 입법과제’ 보고서를 통해 “라임‧옵티머스 등 사모펀드 사태의 일차적인 책임은 금융감독당국에 있다는 비판이 있는 반면, 보다 근본적으로는 금융위가 금감원의 상위 정책기관으로서 추진한 사모펀드 규제 완화 정책이 라임・옵티머스 사태의 주요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다”고 명시했다. 또 “금융위의 견제와 균형을 상실한 금융·감독정책으로 라임·옵티머스 사태는 피하기 어려웠다고 평가된다”고 꼬집었다.
감사원이 사모펀드 사태 부실 감독을 이유로 금감원에 강력한 회초리를 들면서 정치권에서도 금융감독 개혁 논의가 나온다. 지난 7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감사원 감사 결과는 전면적 개편의 필요성을 보여주고 있다”며 ‘금감원 혁신’을 주장했다. 금감원 권한을 축소하고 금감원에 대한 국회의 통제권을 강화하는 금융감독체계 개편을 추진하겠다는 것. 이와 함께 윤 의원은 7월 중 발의할 예정인 ‘금융위원회 및 금융감독원 설치법’ 초안을 공개했다.
이 같은 상황이 이어지자 금감원의 힘이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금감원에는 DLF 사태 관련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제기한 징계 취소 행정소송과 사모펀드 사태 관련 하나금융‧하나은행 제재심, 하나은행‧BNK부산은행‧대신증권에 대한 라임펀드 분쟁조정위, 키코 피해기업 보상 등 주요 과제가 남아 있다.
앞의 금감원 관계자는 “소비자보호라는 취지는 좋았지만 키코의 경우 10년이 지난 사건을 재조사하다 보니 힘든 부분이 많았고, DLF 강경 제재는 내부에서도 현실적인 우려가 있었다”면서도 “DLF부터 키코까지 그간의 노력이 허장성세가 되는 격”이라고 말했다.
특히 법조계에서 금감원의 열세를 점치고 있는 DLF 행정소송에서 이번 감사 결과가 손태승 회장 측 카드로 활용될 수 있다. 당장 오는 8월 20일 손 회장에 대한 서울행정법원의 1차 판결 결과는 비슷한 건으로 소송을 제기한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부회장의 재판결과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한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금융당국 규제를 받는 금융사 입장에서는 (행정소송이) 쉽지 않은 선택”이라면서도 “금융당국 내부에서도 금감원 처분이 지나치다는 이야기가 나온 데다 법리적으로 손 회장 승소 가능성에 대한 분석이 있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감사원 발표로 금감원의 금융사들에 대한 징계 명분이 타격을 입으면서 금감원 제재를 받은 금융사들의 반발도 예상된다. 금감원은 지난해 11월 제재심에서 다수 금융사의 전‧현직 CEO(최고경영자) 제재를 예고했으나 금융위는 최종 판단을 남겨두고 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6일 “(1심 판결이) 임박했으니 결과를 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손 회장의 징계 취소 행정소송 1심 결과를 반영해 라임 사태 관련 제재를 확정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반면 종합검사를 진행 중이거나 앞두고 있는 금융사 15곳과 한국거래소는 긴장할 수밖에 없다. 검사‧감독 소홀을 문제로 무더기 징계를 받은 금감원이 종합검사에 더욱 심혈을 기울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종합검사를 앞둔 한 피감기관 관계자는 “금융사 CEO 중징계 건에서 힘이 빠지는 것과 별개로 금감원은 ‘부실감독’ 논란을 피하기 위해 이번 종합검사를 더 촘촘히 들여다볼 것 같다”며 “특히 11년 만에 종합검사를 실시하는 거래소는 최근 공매도 등 이슈가 있었던 만큼 금감원 입장에서 ‘어떤 것이라도 잡아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전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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