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꾼들, 인맥 과시·접대 활용 등 목적 연예계 접근…때론 연예인이 먼저 손 내밀기도
#“난 유명 여자 연예인이랑 사귀는 사람이야”
최근 불거진 ‘가짜 수산업자 게이트’의 자칭 수산업자 김 아무개 씨가 유명 여자 연예인 A와 연인 관계였다는 주장이 불거져 화제가 되고 있다. A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경찰 조사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피의자나 참고인이 아닌 피해자로 조사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A 역시 김 씨를 사기범이 아닌 잘나가는 수산업자로 알고 진지하게 교제했던 것으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김 씨 사건으로 뒤늦게 화제가 된 유튜브 동영상이 하나 있다. ‘2019서울평화문화대상 시상식’ 현장을 담은 11분여 분량의 동영상으로, 2019년 12월 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행사 당시 모습이다. 이날 김 씨는 ‘다문화봉사상’을 받았는데 직함은 한 인터넷 언론사 부회장이었다. A도 같은 자리에 참석해 다른 부문에서 상을 받았다. 이날 행사는 김 씨의 사기 행각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국회에서 열린 행사에서 수상한 것이 유력 여야 정치인들과의 인맥을 형성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이후 김 씨는 정치권에 ‘잘나가는 건실한 사업가’라는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김 씨가 유명 연예인 A와 교제한 것 역시 자신의 이미지를 상승시키는 데 활용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경찰의 시선이다. 생계형 사기 범죄를 저지르며 오랜 기간 도주 생활을 했던 김 씨가 게이트화 할 만큼 거대한 사기꾼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잘나가는 사업가’ ‘재력가’ 등의 이미지를 만들려고 노력했는데 이를 위해 ‘유명 연예인의 애인’이라는 카드를 활용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김 씨가 ‘언론사 부회장’, ‘3대3농구위원회(KOX) 회장’ 직함 등을 활용한 것과 비슷한 목적인 셈이다.
또한 김 씨가 연예관계자들과 자주 접촉했으며 이들 중 몇몇에게 고가의 선물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씨가 연예관계자들과 접촉한 이유를 두고 엔터 관련 사업에도 관심을 갖고 있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지만 그보다는 자신의 이미지 상승을 위한 수단 가운데 하나로 엔터 사업 내지는 연예계 인맥을 활용하려 했을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2000년에 불거진 ‘진승현 게이트’ 당시에도 한 여성 톱스타의 이름이 등장했다. ‘진승현 게이트’는 MCI코리아 부회장이던 진승현 씨가 열린금고와 한스종금, 리젠트종금 등에서 2300여 억 원을 불법 대출받고 리젠트증권 주가를 조작한 사건으로 정·관계 로비 의혹이 더해져 엄청난 화제를 양산했었다. 그런데 여자 연예인 B의 이름은 ‘진승현 게이트’로 확산되기 전부터 거론됐다. 진승현 씨가 잘나가는 전문경영인으로 알려져 있던 당시 톱스타 B와 열애설이 보도돼 화제가 됐던 것이다.
연예관계자들은 B의 사례가 이번 가짜 수산업자 게이트와 유사하다고 설명한다. 한 원로 연예계 관계자는 “로비 리스트가 존재하는 사기 사건은 대부분 사기꾼이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해 연예인과의 친분을 활용한다”면서 “인맥이 좋은 남자 연예인들과도 돈독한 관계였던 경우가 많은데 여자 연예인만 더욱 부각되는 건 열애설 등 화제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얘기한다. 실제로 다른 대형 사기 사건에서 몇몇 유명 남자 연예인들이 참고인 조사까지 받은 사례도 있지만 혐의가 입증되지 않아 화제가 되지 않은 사례들이 더러 있다.
#여자 연예인을 접대에 활용했다고?
한편 기자 출신 유튜버 김용호는 가짜 수산업자 게이트를 다룬 유튜브 방송에서 “접대용 연예인은 따로 있었다. 현직 걸그룹도 포함돼 있다. 지금 경찰이 유명 연예 기획사들을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김 씨가 성접대까지 해왔다는 의혹이 이어지는 가운데 만약 실제로 성접대에 동원된 여자 연예인이 존재한다면 파장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경찰 수사가 이뤄져 수사 결과가 나올 수 있을까. 현재까지 상황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경찰 조사 초반에 협조적인 태도를 보였던 김 씨가 금품 수수 의혹을 받는 인물들에게 실제 금품이 제공됐는지, 제공된 금품의 대가성 여부 등에 대해서는 입을 열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아예 경찰 접견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고 알려졌을 정도다.
이처럼 거물급 사기범들이 연예계와 인맥을 형성하고 여자 연예인과의 관계를 갖는 이유 중 하나는 술자리나 성 접대 목적이다. 그렇지만 이런 영역은 매번 의혹만 불거졌을 뿐 구체적으로 혐의가 드러나 처벌이 이뤄진 경우는 거의 없다.
그나마 화제가 됐던 사례는 2013년 나주 산업단지 조성사업 추진 과정에서 관련 업자로부터 뇌물 2억 3000만여 원을 받은 전직 공무원 뇌물 수수 사건이었다. 당시 유명 여배우 C가 광주지검 특수부에서 소환 조사를 받았다. 그 이유는 구속된 전직 공무원이 C에게 600만 원짜리 명품백을 선물했는데 뇌물을 준 업체가 제공한 체크카드로 결제를 했기 때문이었다.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이들의 만남은 뇌물 제공 업체 대표의 주선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평소 해당 공무원이 여자 연예인을 직접 만나보고 싶다는 얘길 자주 하자 이 대표가 인맥을 총동원해 두 사람의 만남을 주선했다고 한다. 다만 성 접대까지 이뤄진 건 아니고 식사 자리만 두세 차례 있었다는 게 이들의 일관된 진술이었기에 C는 참고인 조사만 받고 사건이 종결됐다.
#여자 연예인이 먼저 다가가기도…
정반대의 경우들도 있다.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무슨 이유인지 불분명한 대형 비리 사건 피의자와 여자 연예인 사이에 금품이 오간 경우다.
2003년 불거진 굿모닝시티 분양 비리 사건 당시에도 여자 연예인 D의 이름이 등장했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굿모닝시티 분양 비리를 주도한 윤창열 전 대표의 과도한 씀씀이가 드러났는데 이 가운데 윤 전 대표가 D에게 현금 1억 원을 전달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더욱 눈길을 끄는 부분은 D가 연루된 사건이 하나 더 있다는 점이다. 2011년에 불거진 저축은행 비리 사건 당시 저축은행 비리 합동수사단은 에이스저축은행에서 7200억 원을 불법 대출받은 고양종합터미널 시행사 대표 이 아무개 씨가 D에게 5000만 원 상당의 BMW 차량 한 대와 2억 5000만 원 상당의 아파트 전세금 등의 금품을 건넨 사실을 밝혀냈다.
두 사건의 피의자가 D와 어떤 관계인지는 주위에서도 잘 모르고 있었고 한다. 앞서 언급된 여자 연예인 A와 B의 경우처럼 사기 행각을 위해 자신이 유명 여자 연예인과 교제하거나 친분을 과시하려 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또한 누군가에게 성상납 등의 목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D와의 친분을 유지한 정황도 포착되지 않는다. 연예계에서는 오히려 D가 대형 사기범에게 접근해 친분을 쌓은 뒤 현금이나 고가의 선물 등을 받아간 것으로 보고 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조재진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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