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증권선물거래소 초대 이사장 선임 문제가 점입가경이다. 이사장 선임건을 두고 후보자, 추천위원회, 관계부처가 진흙탕싸움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통합거래소는 현재 따로 운영되고 있는 증권거래소, 코스닥위원회, 선물거래소의 업무를 한 곳으로 통합하게 될 말 그대로 ‘통합된 증권 및 선물거래소’다. 당초 이 거래소는 지난 10월에 정식 출범할 예정이었으나, 여러 이유로 인해 연기됐으며, 초대 이사장이 선임되는 대로 내년 초 법인이 출범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출범 예정을 불과 두 달 앞둔 현재까지 거래소 출범시기는 물론, 초대 이사장조차 정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문제는 이사장이 단순히 정해지지 않은 것이 아니라, 못 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11월 말 이사장 추천위원회에서 추천했던 후보자 3명이 뚜렷한 이유도 없이 갑자기 전원 사퇴하는 사태가 벌어지는 등 알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11월 말 추천위는 정건용 전 산업은행 총재, 이인원 예금보험공사 사장, 강영주 현 증권거래소이사장을 추천, 막바지 작업에 들어갔다. 그런데 하루 뒤 이들은 모두 자진사퇴했던 것.
이렇게 되자 업계에서는 이사장 선임을 두고 각종 루머들이 무성한 상황이다. 청와대 외압설이 불거지고, 이헌재 재경부 장관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등의 억측이 쏟아지고 있다.
도대체 통합거래소의 이사장이 얼마나 대단한 자리이기에 스캔들이 들끓고 있는 것일까.
업계 관계자들은 우선 통합거래소 이사장 직함이 기본적으로 돈과 명예를 동시에 가질 수 있는 자리라는 데 의견을 같이 한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통합거래소가 예보, 자산관리공사 등과 비슷한 레벨의 국가기관이기 때문에 이사장의 직급은 차관급이라고 볼 수 있다”며 “특히 ‘초대’ 이사장이라는 명예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증권거래소 부장급의 연봉이 1억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보다 훨씬 직급이 높은 이사장의 연봉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된다. 주변에서는 국내 유수 시중은행장 임금수준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결국 이사장이 되면 차관급이라는 명예와 부, ‘초대’라는 훈장이 따라다니는 셈이다. 게다가 초대 이사장의 경우 공무원 현직에서 대부분 퇴직했거나 퇴직을 앞둔 인사라는 점에서 마지막으로 명예를 얻을 수 있다는 개인적 야심도 작용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들은 이 자리가 현재와 같은 각종 루머의 온상지가 될 정도로 매력적이지는 않다고 입을 모았다.
증권거래소 관계자는 “통합된 거래소의 첫 번째 수장이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딱히 (다른 공사기관 사장들과 비교해볼 때) 메리트가 있는 것은 아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증권가 관계자 역시 “통합 거래소의 대주주가 국내 증권사들이고, 이사장은 이들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대리 경영하는 전문 경영인이라고 보면 된다”며 “각종 설들이 난무할 정도의 자리는 아니다”고 말했다.
이들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통합거래소 이사장이라는 자리가 추천받은 후보들이 전부 사퇴를 하고 또 각종 설들에 휘말릴 정도로 가치가 있지는 않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요즘 증권가 최대 관심사가 이사장 선임이라는 데에 대해서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왜 그럴까.
증권거래소 노동조합에서는 이사장 선임을 두고 정치권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파워게임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증권거래소 노조 관계자는 “이사장 선임을 두고 청와대와 재경부가 자리다툼을 벌이다가 자기들이 내세운 인물이 선임되지 못하자 전면 백지화하는 사태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드러내놓고 얘기를 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이에 대해 수긍하는 분위기다.
청와대와 재경부가 이 자리를 두고 서로 다른 후보를 마음에 두고 있다가,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의견 차이가 커서 전면 백지화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현재 시장에서 떠돌아 다니는 얘기로는 청와대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었던 한이헌씨를 내심 의중에 두고 있었다는 것.
반대로 재경부는 통합거래소가 재경부 산하의 기관인 만큼 거래소-자산관리공사-예금보험공사 등에 이른바 ‘재경부 모피아 사단’ 구도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해 청와대는 “이사장 인사권은 우리의 권한도 아니며, 논의해본 적도 없다”고 말을 했지만, 아직까지 의혹이 끊이질 않는 상황이다.
특히 불과 하루 뒤, 청와대 정찬용 인사수석이 “재경부 출신이 모든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자 의혹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청와대가 국내 경제계의 수장 자리를 재경부 관료가 독차지하자, “더이상 우리가 재경부에 이끌려 다녀서는 안된다”는 ‘비장한’ 각오를 다졌다는 얘기도 오간다.
결국 이 문제는 ‘관료가 아닌 참신한 인물을 물색하자’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혀졌지만, 이번 인사파문을 좀처럼 줄어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거래소 노조 등이 감사원에 정식으로 이번 외압설에 대한 감사를 요청한 때문이다.
결국 작은 문제를 두고 정부부처가 옥신각신다 큰 문제로까지 번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