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우리의 정보역량은 어떨까? 일류대학을 졸업한 최고의 엘리트들이 정보기관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그들의 엄격한 훈련과정과 업무를 담은 <7급 공무원>이란 영화가 히트를 치기도 했다. 그런 국정원이 전문가답지 않은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한 것 같다. 인도네시아 대통령 특사단이 묵는 호텔방에 들어갔다가 적발된 것이다. 신분도 그들이 주차해 놓은 차도 노출됐다. 첩보의 기본원칙을 무시한 상식 밖의 행동이었다.
국가기관끼리도 전혀 손발이 맞지 않는 어설픈 모습을 보였다. 정보수집체계는 역겹지만 어느 국가나 필요악이다. 지면하의 하수처리망처럼 비밀정보시스템 전체를 관리하는 국가정보기관이 있고, 그 아래 부문 정보기관들이 서로 그물코를 이루며 은밀히 협조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정원과 경찰, 국방부의 관계도 매끈하지 못해 보인다. 언론도 국익을 위한 것이라면 어느 정도 눈을 감는 게 세계적인 경향이다. 그러나 언론은 추측까지 동원해 선정적으로 문제를 확대하고 있다. 오히려 들고일어나야 할 인도네시아 정부가 대한민국을 감싸주는 한 수 높은 태도를 보였다. 한마디로 국가적 망신을 당한 셈이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 나는 정보기관의 경직된 관료화에 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바보라도 250대의 CCTV가 지켜보고 휴지조각 하나까지 즉시 치워지는 호텔방에 신분을 노출시키면서 들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 이면에는 관료화된 상사의 한 건 올리기 압박이 틀림없이 있었을 것이다.
정보기관은 이중조직이다. 정치권에서 내려온 낙하산 출신의 엽관화된 수뇌부가 있고 그 안에서 성장해 온 정보관 출신들이 몸통을 이루고 있다. 아무리 좋은 기계라도 무리한 조작을 하면 고철만도 못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위에서 갑자기 무리한 고급정보를 요구하면 하부조직은 정상궤도를 일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민의 돈으로 만든 정보기관을 정적들의 뒤를 캐는 데 악용한 험난한 과거도 있다. 그 모든 게 엽관화·관료화된 정보시스템의 오작동에서 비롯됐다.
국가 경영에서 촉수 역할을 하는 것이 정보기관이다. 정보기관의 맏형이 국정원이다. 비전문가가 가서 흔들게 해서는 안 된다. 직원들에게 명예심을 주고 그들이 순수 정보전문기관으로서 성장하게 해야 한다. 이리 간다고 이리 때리고 저리 간다고 저리 때리면 안 된다.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