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7자 드라마 제목, 무려 42자 가요 제목 등장…이목 집중시켰지만 흥행으로 이어지진 않아
#어디까지 길어질까
최근 방송을 마친 케이블채널 tvN 드라마 ‘어느 날 우리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의 제목은 총 17글자다. 6월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12부작 웹드라마 ‘내일 지구가 망해버렸으면 좋겠어’와 네이버TV를 만날 수 있는 웹드라마 ‘그래서 나는 안티팬과 결혼했다’의 제목은 각각 15글자, 13글자다. 이 외에도 지난 3월 종영된 JTBC ‘선배, 그 립스틱 바르지 마요’와 넷플릭스 ‘무브투헤븐: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 등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동안 드라마 제목은 함축적으로 쓰이는 편이었다. 단어 하나만으로도 단박에 그 드라마가 가진 기획의도와 질감을 알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최근 방송된 ‘빈센조’와 ‘모범택시’가 그랬고, ‘펜트하우스’를 집필 중인 김순옥 작가는 ‘황후의 품격’, ‘왔다 장보리’, ‘내 딸 금사월’ 등 유독 5글자 제목을 선호했다.
이런 현상은 가요계에서 먼저 시작됐다. 2019년 발표됐던 남매 듀오 악동뮤지션(AKMU)의 노래 제목은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였다. 총 19자. 이 노래의 제목을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정확히 쓰는 것이 예능 프로그램 속 미션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JTBC 드라마 ‘멜로가 체질’의 OST로 장기간 음원 차트를 석권한 가수 장범준의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 향이 느껴진 거야’(19자)도 이에 못지않다.
2019년에는 유독 긴 제목을 가진 노래가 많았다. 게다가 음원 성적도 좋았다. 우디의 ‘이 노래가 클럽에서 나온다면’, 백예린의 ‘그건 아마 우리의 잘못은 아닐 거야’, 엑소 첸의 ‘사월이 지나면 우리 헤어져요’ 등이 문장 형태의 제목을 보였고 글자 수도 많았다.
이 가운데 최고봉은 록밴드 잔나비의 ‘사랑하긴 했었나요 스쳐가는 인연이었나요 짧지 않은 우리 함께 했던 시간들이 자꾸 내 마음을 가둬두네’였다. 42자로 구성된 이 노래의 제목은 마치 가사 한 소절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다.
물론 과거에도 긴 노래 제목은 있었다. 강산에의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과 코나의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등이 대표적이다. 당시에는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문장형 제목이 자주 쓰여 트렌디한 느낌을 준다.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에 대해 악동뮤지션 멤버 이찬혁은 “제목 자체로 완성형”이라는 소신을 보였다. 그는 “(또 다른 멤버인) 이수현이 이걸 ‘어사널사’라고 줄여 부른다. 하지만 저는 그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애초에 네 글자로 줄여서 부르게 했을 거면 그 정도 길이의 적당한 제목을 찾았을 거다”라고 설명했다. 결국 작곡·작사를 맡은 이찬혁이 이 긴 제목을 통해 노래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오롯이 보여주려 한 셈이다.
#효과는 있을까
긴 제목은 요즘 젊은이들의 트렌드와는 역행한다고 볼 수 있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대표적 특징 중 하나는 줄임말 표현이다. ‘할많하않(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같이 전체 문장을 줄어서 단 몇 마리로 끝내는 식이다. 하지만 긴 제목은 이 흐름을 거스른다.
이런 문장형 제목의 시작은 일본의 라이트노벨(light novel) 시장에서 찾을 수 있다. 가볍게 읽고 소화할 수 있는 소설들을 지칭하는 장르로, ‘내 여동생이 이렇게 귀여울 리가 없어’, ‘내가 사랑했던 모든 너에게’ ‘너를 사랑했던 한 사람의 나에게’ 등이 있다.
게다가 몇몇 소설은 영화화되기도 했고, 오리지널 영화의 제목 역시 문장형으로 만들면서 주목을 끌었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 등이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등이 국내 관객과 만났다. 이에 앞서 일본 유명 영화 가운데에도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와 ‘지금, 만나러 갑니다’ 등 문장형 제목이 많았다.
일단 이런 긴 제목은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데 성공했다. 문장형 제목에 흥미를 느끼는 이들이 많았고, 그 이유를 해석하는 기사도 쏟아졌다. 색다른 흐름을 접하는 대중의 관심도가 상승한 셈이다.
하지만 흥행 여부를 따져봤을 때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다. ‘어느 날 우리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 ‘내일 지구가 망해버렸으면 좋겠어’, ‘그래서 나는 안티팬과 결혼했다’, ‘선배, 그 립스틱 바르지 마요’ 모두 반응이 미미했다. 긴 제목이 화제를 모았을지언정 흥행까지 보장하지는 않은 셈.
한 방송 관계자는 “새로운 드라마, 영화, 신곡 등을 소개하며 크리에이터들은 더 많은 이들에게 이를 알리기 위해 홍보에 신경 쓴다. 긴 제목을 붙이는 것도 그런 홍보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며 “성공 사례가 나오면 비슷한 시도가 줄을 잇지만, 별다른 효과가 없다고 판단하게 되면 이런 흐름 역시 한 순간에 사그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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