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따거’(큰형님)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최근 직원들에게 쓴소리를 담은 이메일을 보내면서 그 배경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윤 장관은 92번째 3·1절을 맞은 지난 1일 재정부 직원들에게 ‘기본에 충실해야 정책공간을 넓힐 수 있습니다’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발송했다. 윤 장관은 이메일에서 기본을 놓치지 않는 업무자세와 리스크(위험)를 선제적으로 관리하는 업무자세를 당부했다. 그 배경을 따라가 봤다.
윤증현 장관은 이메일을 통해 “벽돌 한 장을 잘못 놓아 공든 탑이 무너지고, 깃털이 쌓여 결국 배가 가라앉는다. 작은 차이가 모여 큰 차이가 되는 법”이라면서 “최근 작은 실수를 방치해서 큰 문제가 되는 사례를 보면서 정책의 큰 그림을 그리는 일이 많고 업무가 과중한 우리 부처의 성격상 혹여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과정에서 사소한 실수를 눈감고 넘어가는 분위기는 없는지 반성해보자”고 강조했다.
윤 장관은 이어 “중동의 정정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서 보았듯이 우리에게 ‘강 건너 불’이란 이제 없다. 지구촌의 모든 변화가 실시간으로 ‘발등의 불’이 되고 글로벌 리스크가 될 수 있다”면서 “이런 환경에서는 리스크를 미리 감지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가장 큰 경쟁력”이라고 당부했다.
윤 장관이 지난 2월 15일 ‘서비스업 선진화를 실행해야 한다’는 독려 이메일을 보낸 데 이어 2주일 만에 또 다시 이메일을 보낸 것은 직원들에 대한 ‘채찍질’로 풀이되고 있다. 이는 최근 재정부에서 범한 잇단 실수와 무관치 않기 때문이다. 재정부는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성공적으로 벗어났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최근 들어 크고 작은 실수를 반복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재정부 내부마저 발칵 뒤집어 놓았던 ‘토빈세’(단기성 외환거래에 부과하는 세금) 논란이었다.
지난 1월 24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는 국제학술대회인 ‘글로벌 코리아 2011’이 열렸다.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가 경제·인문사회연구회와 공동으로 주최한 이날 회의에는 주한 외교사절을 비롯한 국내외의 재계 및 학계 인사 등 7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렇게 중요한 행사에서 윤 장관의 오찬 연설 자료를 놓고 한바탕 난리가 난 것이다. 내막은 이렇다.
이날 재정부 대외경제국에서는 오후 1시 엠바고(보도유예)로 윤 장관의 오찬연설 자료를 기자실에 배포했다. 그런데 이 연설문에 금융 및 실물 경제 변동성 완화를 위한 전략을 설명하면서 ‘유입자본에 대한 조건부 금융거래세’ 부과라는 내용이 들어간 것이다. 금융거래세란 단기투기자본의 유출입을 막기 위해 외환거래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으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토빈 교수가 주장해 흔히 토빈세로 불린다.
토빈세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브라질 정부만 지난 2008년 도입한 제도로 금융위기 이후 여러 나라가 도입 여부를 놓고 논란을 벌이고 있는 제도다. 이 자료가 배포되면서 재정부 기자실은 정부가 은행의 비예금성 외화부채에 거시건전성 부담금(은행세)을 매긴 데 이어 토빈세까지 도입하는 것이냐며 긴급 취재에 들어갔다.
은행세 등에 대한 주무부서인 국제금융국은 기자들의 확인요청에 발칵 뒤집어졌고, 장관 오찬연설이 기사화되기 전인 12시 30분, 긴급하게 “대외경제국에서 배포한 보도자료 중 금융시장 안정화 방안 관련, ‘유입자본에 대한 조건부 금융거래세 부과’는 사실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라는 해명자료를 냈다. 이러한 실수는 대외경제국이 은행세를 토빈세로 착각하면서 발생한 일이었다.
이 문제가 내부의 커뮤니케이션 실수로 일어난 일이라면 최근 여야 정치권으로부터 질책을 받은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번역문 오류는 실수를 적당히 넘어가려다 문제가 커진 경우다. 한국은 EU와 맺은 FTA에서 완구와 왁스류에 쓰인 외국 재료가 50% 이하면 한국산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합의했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25일 이러한 내용이 포함된 한-EU FTA 비준 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런데 영문본을 한글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이를 완구류 40%, 왁스류 20%로 각각 잘못 표기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정부는 오류가 있다는 지적에도 비준 동의 절차를 강행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다 정치권 등으로부터 비판이 쏟아지자 수정 작업을 거쳐 비준동의안을 국회에 다시 제출키로 했다. 이 비준안을 번역하는 것은 외교통상부의 일이지만 국회에 설명하고, 비준동의안 처리를 주도하는 등 국내 절차를 주로 담당하는 곳이 재정부이다 보니 재정부에 대한 비난도 적지 않았다.
지난해 10월에는 법적 근거 없이 세금을 징수했다는 논란에도 휩싸였다. 재정부는 교통·에너지·환경세 세액의 15%로 부과되는 교육세의 적용시한이 2009년 12월 31일로 되어 있었는데 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지난해 세금을 부과했다. 법적 근거도 없이 국민들이 휘발유와 경유 등을 구입할 때마다 교육세를 걷어온 셈이었다. 재정부는 문제가 되는 부칙이 2006년 법률개정으로 효력을 상실했다는 입장이었으나 부칙도 법률개정에 포함된 만큼 여전히 효력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논란이 커지자 재정부는 뒤늦게 문제가 된 부칙을 삭제한 개정안을 한나라당 나성린 의원에게 부탁해 의원입법 형식으로 처리했다.
‘리스크 선제 관리’는 중동 자원외교 실패(<일요신문>이 979호 보도)에 대한 지적이다. 윤 장관은 지난 1월 19일 수석대표를 맡아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서 부트로스 갈리 이집트 재무장관 등과 ‘제1차 한-이집트 경제장관회의’를 개최하고 상당한 성과를 올렸다고 알렸다. 특히 이집트가 다른 아프리카 국가와 비교해 정치상황이 안정되어 있어 아프리카 54개국 가운데 이집트와 최초로 경제장관회의를 가졌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양국 경제장관회의가 끝난 지 6일 만인 25일 이집트 시민들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고, 결국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은 권좌에서 물러났다. 윤 장관이 이집트를 방문하기 닷새 전인 14일 벤 알리 튀니지 대통령은 23년 만에 자리에서 물러나 망명길에 오르면서 중동 민주화 시위가 번져나가고 있었음에도 이러한 분위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기본 충실과 리스크 관리’ 채찍질은 윤 장관 자신이 먼저 맞아야 한다는 비판론도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특히 이집트 외교나 토빈세 문제의 경우 윤 장관이 거시 경제를 총괄하는 수장의 입장에서 제대로 파악하거나 확인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또 실현 가능성에 대한 지적과 함께 물가 등 한국 경제 곳곳에 무리를 가져오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5% 성장’ 목표도 재정부 내에서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았지만 윤 장관이 밀어붙였다는 후문이다.
김서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