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감시 등 국내 악재에 미국으로 눈 돌린 듯…소프트뱅크 비전펀드 투자 소식도 나스닥행 무게
야놀자는 지난해 미래에셋증권과 삼성증권을 주관사로 선정해 상장을 준비해 왔다. 이때까지만 해도 야놀자가 코스닥 상장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야놀자가 15일 손정의 회장의 일본 소프트뱅크 비전펀드II로부터 총 2조 원 규모의 투자 유치에 성공한 사실이 알려지자 야놀자의 나스닥 상장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쿠팡에 대규모 투자를 이어온 손정의 회장은 쿠팡이 미국 뉴욕 증시에 상장하면서 큰 수익을 거두었다. 야놀자 투자도 이와 맥락을 같이 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야놀자가 유통 기업인 쿠팡처럼 ‘전통주’가 상장하는 뉴욕 증시가 아닌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기술주’가 상장하는 나스닥을 두드릴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손정의 회장은 2조 원 투자로 야놀자 지분 약 20%를 가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미국에서 상장하기를 원할 것”이라며 “전 세계 주식시장의 50%를 미국이 차지하고 있고 우리나라는 2%밖에 안 되니 가치를 더 후하게 평가받기 위해 나스닥으로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야놀자의 나스닥 상장 추진설을 달리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코스닥 상장이 어려워 나스닥으로 우회하는 것이라는 얘기다. 최근 야놀자에 대한 정부의 감시와 시장 반발이 거세지는 등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도 이런 전망을 뒷받침한다.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올해 상반기 야놀자 등 숙박 애플리케이션들의 불공정 행위 현황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공정위에 따르면 야놀자는 그동안 입점 업체들에 할인쿠폰 발급 및 광고상품 노출 기준 등 광고상품 선택에 큰 영향을 주는 정보를 계약서에 제대로 기재하지 않았다. 또 숙박업소의 전자서명 등 계약서에 관한 확인 조치도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공정위는 야놀자에 관련 내용에 대한 보완을 권고하겠다고 밝혔다.
공정위의 ‘보완 권고’ 조치는 시정을 요구하는 수준에 그친다. 현행법이 없어 시스템 개선을 강제할 수 없는 탓이다. 하지만 공정위가 야놀자를 비롯한 플랫폼 업체들의 불공정 행위를 규율하고 제지하기 위해 관련법 제정에 힘을 쏟는 만큼 야놀자를 향한 공정위의 압박 수위는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 분위기를 잘 아는 한 법조계 관계자는 “야놀자의 시장지배력이 너무 커지고 이를 악용한 부당 행위가 이어지지만 공정위는 이를 막을 수 있는 관련법이 없으니 골머리를 앓고 있다”며 “공정위가 제정을 추진하는 온라인플랫폼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야놀자에 대한 공정위의 제재가 본격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공정위의 조치가 이어지면 야놀자의 국내 증시 상장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공정위로부터 벌금 처분을 받거나 기소되면 상장에 차질이 빚어지는 만큼 공정위 사정권을 벗어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상장을 추진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야놀자가 공정위를 의식한다면 코스닥 상장을 시도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각 지방자치단체도 야놀자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지난 4일 경기도는 야놀자가 중복예약과 수수료 정산 오류 등과 관련해 귀책사유 불문하고 제휴사로 책임을 전가하고 숙박 애플리케이션에 제공한 사진 등 저작권을 야놀자에 귀속한 점 등을 지적했다. 김지예 경기도 공정국장은 “앞으로 다수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업자약관 내 일방에게 불리한 내용이 있는지 살펴볼 것”이라고 밝혔다.
야놀자에 대한 시장의 비난도 거세다. 숙박업계는 야놀자가 숙박업체 예약 플랫폼 시장 최상위 위치를 이용해 숙박업주들에게 부당한 거래를 이어왔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대한숙박업중앙회는 야놀자가 숙박업자로부터 중개수수료에 비싼 광고비까지 부담하게 하고 서면(전자)계약서를 제대로 갖추지 않았으며 18세 미만 고객 확인 책임을 숙박업자에게 미뤄왔다고 주장했다. 또 프랜차이즈 숙박업체를 인수해 이들을 광고 상단에 노출해 주변 업소들이 가맹을 안 할 수 없게끔 유도한다고 했다.
김진우 대한숙박업중앙회 사무총장은 “야놀자는 그동안 숙박업자들로부터 이익을 취해오면서도 상생 방안 모색에는 인색했다”며 “야놀자가 상장 이전에 숙박업자들의 처우를 둘러보고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야놀자 측은 “광고비는 선택사항이며 다른 업체들에 비해서도 저렴한 편”이라며 “18세 미만 투숙객 확인은 현장에서 확인해야 할 사항이며, 프랜차이즈 숙박업체는 3년 전에는 운영했으나 현재는 운영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야놀자 측은 또 “키오스크 구매 금액을 전부 환불해주거나 코로나19 확산으로 어려움에 빠진 사업자들에게 수십억 원을 지원했다”며 “팬션은 신규 제휴점에 수수료 47%를 인하했고 광고비와 예약수수료 모두 인하해줬다”며 숙박업자들과 상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IB업계 다른 관계자는 “상장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시장의 여론이 악화하면 상장 시 공모자금이 잘 모이지 않는 등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상장을 철회하거나 연기하기도 한다”며 “국내 거래소도 문제가 되는 기업에 보완 작업을 요청하거나 심사에 들어가지 않을 수도 있는 만큼 현재 상황에서 야놀자의 코스닥 상장을 장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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