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C자산운용의 역사는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몽규 회장은 당시 투자신탁 열풍에 힘입어 아이투자신탁운용이라는 회사를 설립해 2012년 HDC자산운용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이웅열 전 코오롱그룹 회장도 설립 당시 아이투자신탁운용에 투자했고, 현재도 HDC자산운용 지분 일부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코오롱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웅열 전 회장 개인의 일에 대해서는 알기 어렵다”라고 전했다.
그간 HDC자산운용은 정몽규 회장의 개인회사 정도로 여겨졌지만 2017년 주주구성에 변화가 생기면서 승계의 핵심 역할을 할 회사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당시 정 회장은 보유 중이었던 HDC자산운용 지분 87.09% 중 48.07%를 엠엔큐투자파트너스에, 자녀 정준선, 정원선, 정운선 씨에게는 각각 13.01%를 넘겼다. 엠엔큐투자파트너스는 정몽규 회장이 지분 100%를 갖고 있는 회사다.
정몽규 회장의 자녀들은 HDC자산운용 외에는 이렇다 할 HDC그룹 계열사 지분이 없다. 따라서 훗날 정 회장이 지분을 승계할 때 HDC자산운용 지분을 증여세(혹은 상속세)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지분 교환을 통해 다른 계열사 지분을 취득할 수도 있다. 정몽규 회장과 그의 자녀들 입장에서 HDC자산운용의 지분 가치가 높으면 높을수록 좋다.
그러나 HDC자산운용이 내세울 만한 실적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HDC자산운용은 2020년 매출 89억 600만 원, 영업이익 34억 3100만 원을 기록했다. HDC자산운용은 2018년과 2019년에도 각각 79억 200만 원, 88억 9000만 원의 매출을 기록해 실적에 있어 매년 큰 차이가 없다. HDC자산운용의 2020년 말 기준 자본총액은 263억 4800만 원으로 대기업인 HDC그룹 계열사와 비교해 자본력이 좋은 편도 아니다. 그나마 부채는 13억 5900만 원밖에 되지 않아 부채비율은 5.16%에 불과하다.
그런데 올해 들어 HDC자산운용에 특이한 기류가 감지된다. 김홍일 전 HDC자산운용 대표가 지난 3월 사임하고, 장봉영 신임 대표가 취임한 것이다. 김홍일 전 대표는 HDC현대산업개발(현산) 상무 출신으로 2018년 12월 HDC자산운용 대표에 취임, 2020년 12월 연임에 성공했다. 연임에 따라 김 전 대표의 임기는 2022년 12월까지였지만 임기를 1년 9개월 앞두고 돌연 사임한 것이다.
김홍일 전 대표는 과거 현산에서 경영혁신실장을 맡은 기획·재무 전문가로 알려졌다. 장봉영 현 HDC자산운용 대표는 키움투자자산운용 주식운용본부장 출신의 금융 전문가다. 기획 능력도 대표이사의 필요 역량 중 하나고, 김 전 대표도 과거 투자기획 업무를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자산운용 관련 경력만 놓고 보면 장봉영 대표가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장봉영 대표 외에도 HDC자산운용은 인재 영입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지난 6월 HDC자산운용 상무로 영입된 이용재 전 삼성생명 부장이다. 이용재 상무는 최근까지 삼성생명 특별계정사업부에서 근무했다. 앞서 지난 4월에는 국가정보원(국정원) 부이사장 출신인 이용수 씨를 HDC자산운용 기타비상무이사로 선임했다. 정몽규 회장의 매제 김종엽 전 HDC자산운용 기타비상무이사는 지난 3월 사임했다. HDC자산운용의 적극적인 움직임을 놓고 실적 개선과 이에 따른 지분가치 상승을 노리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적지 않다.
정몽규 회장의 장남 정준선 씨는 2018년부터 병역특례요원으로 네이버 산하 벤처기업에서 근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법상 병역특례요원의 의무복무기간은 3년이므로 HDC그룹에 합류할 수 있는 시점이 다가온 것이다. 네이버 관계자는 정준선 씨 재직 여부에 대해 “개인정보에 대해서는 확인이 어렵다”라고 전했다.
정준선 씨는 최근 몇 년간 HDC그룹 지주회사 HDC(주)의 지분 매입에 나서고 있다. 2018년 HDC그룹이 현산을 지주회사 HDC(주)와 사업회사 현산으로 분할할 당시만 해도 정준선 씨가 보유한 HDC(주) 지분은 없었다. 현재 정준선 씨의 HDC(주) 지분율은 0.33%, 동생인 정원선 씨와 정운선 씨의 지분율은 각각 0.28%, 0.18%다.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준은 아니지만 지분을 꾸준히 매입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와 관련, 현산 관계자는 “HDC자산운용은 지난 3월 증권사, 연기금 등 다양한 경험을 쌓아온 장봉영 대표이사를 선임했으며 HDC자산운용의 도약을 이끌어나갈 예정”이라고 전했다. 승계 작업 등에 대해서는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정몽규 HDC그룹 회장은 송파구 건물주
HDC자산운용의 모회사 엠엔큐투자파트너스는 2017년 설립돼 정몽규 회장이 지분 100%를 가지고 있다. 현재 정 회장의 아내 김줄리앤 씨가 엠엔큐투자파트너스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엠엔큐투자파트너스는 자체적인 사업보다 계열사 지원을 위해 만들어진 법인으로 보인다. 실제 법인등기부에 등록된 엠엔큐투자파트너스 사업목적은 △자회사 등에 대한 자금 및 업무지원사업 △자회사 등에 대한 자금지원을 위한 자금조달사업 △부동산 임대와 관련된 부대사업 등이다. 2020년 말 기준 엠엔큐투자파트너스의 자본총액은 338억 원이다.
엠엔큐투자파트너스는 2018년 서울시 송파구에 있는 4층 규모 건물을 47억 원에 매입했다. 부동산등기부상 엠엔큐투자파트너스의 사무실 주소도 해당 건물 4층이다. 현재 이곳에는 술집, 피자집, 보드카페 등이 입주해있으며 엠엔큐투자파트너스의 2020년 매출 7억 2000만 원도 대부분 임대료 수익인 것으로 보인다. 정몽규 회장이 엠엔큐투자파트너스 지분 100%를 갖고 있으므로 사실상 정몽규 회장이 건물주인 셈이다.
한편, 엠엔큐투자파트너스는 HDC자산운용 외에도 HDC아이서비스 지분 10.61%, HDC아이앤콘스 지분 4.79%, HDC(주) 지분 2.53% 등을 갖고 있다. 특히 HDC아이서비스는 HDC그룹의 알짜 계열사로 꼽히는 곳으로 오는 12월 HDC아이콘트롤스와 합병할 예정이다(관련기사 HDC, 아이콘트롤스-아이서비스 ‘의외의 합병비율’ 숨은 1인치).
일요신문은 HDC현대산업개발에 엠엔큐투자파트너스의 재원 출처 등에 대해 질문했지만 HDC현대산업개발 측은 특별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