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과 차별화로 뒤집기 노려…후보 난립으로 ‘1등’ 제외 평가절하 우려
최재형 전 원장은 언행일치 대쪽 공직자와 도덕적 무흠결 이미지, 문재인 정부 탈원전 정책에 대해 과감히 검증 잣대를 들이밀 만큼 결기까지 갖췄다는 평가를 받으며 보수 야권의 ‘블루칩’이라는 긍정론이 일단 폭넓게 형성되는 중이다.
그러나 이미 대세론을 만들어낸 윤 전 총장을 넘어서는 여론조사 지지율을 이른 시일 내에 형성시켜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다자구도가 만들어진 보수 야권 대선 경쟁 구도에서 존재감 과시는 물론, 베테랑 주자들의 견제까지 이겨내야 한다. 난관이 오히려 더 많을 것이라는 비관론도 만만치 않다.
#윤석열과 다른 행보
최재형 전 원장은 7월 7일 여러 언론에 정치참여 의사를 공식화했다. 이후 8일 만에 바로 국민의힘으로 들어갔다. 최 전 원장이 감사원장 직에서 물러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만큼 국민의힘으로 직행하는 것은 무리라고 보는 시각이 정치권에서는 일반적이었다.
감사원장 사퇴 직후 국민의힘 입당은 월성 원전 1호기 감사에 대한 정치적 의도를 증폭시키는 것은 물론, 감사원장 직을 자신의 정치적 야망 실현에 이용했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기제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 전 원장은 한발 앞선 결론을 내렸다. 그는 입당하면서 “정치를 시작하겠다고 마음먹은 이상, 정당 밖에서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보다는 정당에 들어가서 함께 정치를 변화시키는 주체가 되는 것이 바른 생각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주의의 핵심인 정당을 앞세웠다. 원칙을 강조해온 법관 출신답게 기본에 충실한다는 것을 입당 명분으로 내세운 것이다.
최 전 원장은 “국민이 우리나라의 장래가 어떻게 될지 우려한다. 현재 같은 상황에서 정부가 수행하는 정책이 지속 가능한지에 대해 많은 의문이 있다. 이런 것을 종합했을 때 이 정부가 현재의 방향대로 그대로 간다면 어려움이 닥칠 거라는 우려를 갖고 있었다”고 발언, 지속가능하지 않은 탈원전 정책에 반발해 자신이 이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는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윤 전 총장을 의식한 차별화 의도가 아니냐는 기자들 질문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다른 분들의 행동이나 선택에 따라서 저의 행보를 결정하지 않았다”고 언급, 윤 전 총장이 자신의 결정에 변수가 되지 않았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나타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최 전 원장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완행버스를 타고 버스 종점에 최대한 늦게 도착, 부전승을 노리는 윤 전 총장과 똑같은 길을 걷는다면 불리하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윤 전 총장에 비해 인지도와 지지율이 확연히 떨어지는 만큼 국민의힘으로 가는 급행버스에 올라타 ‘뒤집기’를 노리고 있다는 얘기다.
국민의힘 내부에는 지금의 집권세력이 이른바 적폐 청산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윤 전 총장이 했던 역할에 대해 비판적이거나 거부감이 큰 의원들이 적지 않다. 몇몇 의원들은 윤 전 총장 입당 전제조건으로 그 당시의 일들에 대한 ‘사과’를 주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시각을 갖고 있는 의원들이 최 전 원장의 응원군이 될 가능성이 높다. 최 전 원장 측은 국민의힘 내부 바람몰이를 통해 외부에 있는 윤 전 총장을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
최 전 원장이 입당하자마자 움직이는 의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입당 당일 오후 바로 환영 기자회견을 연 김용판 의원은 최 전 원장에 대해 추진력·도덕성·정치철학을 갖춘 후보라고 치켜세웠다. 그는 앞서 2013년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때 자신을 수사했던 윤 전 총장의 정치 참여에 대해 공개 비판한 바 있어 당내에서 대표적인 윤 전 총장 비토세력으로 꼽힌다.
김용판 의원처럼 강한 메시지는 아니었지만 김웅 의원도 “격하게 환영한다”면서 “국민과 청년들에게 희망의 빛을 밝혀달라”고 했고, 최형두 의원은 “백의종군의 충정이 느껴진다”는 평가를 내놓으면서 최 전 원장에 대한 당내 우군 형성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준석 대표가 그동안 ‘버스 정시 출발’을 강조해왔다는 점도 일단 최 전 원장으로선 어깨가 가벼워지는 대목이다.
#최재형, 장착 무기 많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윤 전 총장이 갖고 있는 무기에다 추가로 더 센 화력의 무기가 장착돼있다는 점에서 최 전 원장 가치를 높이 본다.
우선 윤 전 총장이 검찰총장 재직 때 보여준 정의와 공정, 불의에 저항하는 이미지를 최 전 원장은 감사원장 재직 때 월성 원전 1호기에 대한 감사원 감사에서 확인시켜준 것으로 본다. 최 전 원장은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수력원자력 관여로 월성1호기의 경제성이 불합리하게 낮게 평가됐다는 감사 결과를 도출한 뒤 여권으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산업부 직원이 한밤중에 사무실에 몰래 들어가 월성 1호기 관련 자료 444건을 삭제했다’고 적시한 부분은 여권에 결정타를 날렸다. 감사 농단이라는 여권의 비판에도 불구, 최 전 원장은 한발 더 나아가 “범죄가 성립할 개연성이 있다”며 감사 자료를 검찰에 제공하는 등 정치권의 여러 압력에도 전혀 굴복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이 과정에서 감사원의 감사 과정에 부당한 영향을 미친 혐의(직권남용)로 시민단체 고발을 당해 검찰 수사까지 받게 됐다. 집권 세력과 싸웠던 부분은 윤 전 총장과 비슷하다. 이에 더해 최 전 원장은 보수정당 후보로 어울리는 더 많은 강점이 있다는 점에서 윤 전 총장보다 한 수 위라는 일부 평가가 나온다.
경남 출신인 그는 보수 진영의 전통적 지지 기반인 영남권의 적자로 꼽힐 수 있다. 또 윤 전 총장이 이른바 'X파일' 등 처가 리스크 등으로 네거티브 공격을 당하고 있는 것과 달리 각종 의혹에서 자유로운 ‘무결점 후보’라는 점도 그의 가치를 올리는 부분이다.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 졸업, 사법시험 합격, 판사 생활, 감사원장 경력을 놓고 봐도 윤 전 총장에 뒤지지 않는다. 또 최 전 원장 아버지 고 최영섭 예비역 해군 대령이 한국전쟁 때 참전, 무공훈장 3차례 등 모두 6차례나 훈장을 받은 전쟁 영웅이며 최 전 원장 가족은 3대가 모두 병역 의무를 충실히 이행한 병역 명문가이기도 하다.
딸 둘을 키우면서 두 아들을 입양해 훌륭히 키워낸 이야기, 죽마고우 강명훈 변호사와의 인연도 감동적 스토리로 꼽힌다. 최 전 원장은 고등학교, 대학교, 사법연수원 수학을 함께하는 동안 다리가 불편한 강 변호사를 업고 등하교시켰다. 감사원장으로 들어올 때 검증 과정에서도 문재인 대통령이 매우 흡족해할 만큼 결격 사유가 없었다.
문 대통령은 2018년 1월 2일 청와대에서 최 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환담 자리에서 “스스로 자신을 엄격히 관리해 오셨기 때문에 감사원장으로 아주 적격인 분이시다. 잘 부탁드린다”고 인사를 건넸다. 엄격한 자기 관리에 대해 문 대통령이 직접 합격점을 준 셈이다. 인사청문회 때는 이례적으로 여야 청문위원들 모두로부터 칭찬을 받기도 했다.
그의 ‘사람 됨됨이’는 취재기자들 사이에서도 벌써 화제가 되고 있다. 7월 12일 국립 대전현충원에서 첫 정치 행보에 나섰을 때 무더위에 고생하는 기자들을 격려하는가 하면 질문에도 정성껏 답변하는 등 기자들 사이에서는 “왜 최 전 감사원장의 인격과 도덕성을 칭찬하는지 알 것 같다”는 얘기가 잇따라 터져 나왔다.
기자들의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은 윤 전 총장을 취재할 때 겪었던 불만과 최 전 원장의 친절한 모습이 오버랩되고 있기 때문이다. 윤 전 총장은 검찰 시절 대언론 소통 방식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을 받는다. ‘물으면 답을 해야 하는’ 여의도 문법에 여전히 적응하지 못하면서 선택적으로 취재에 응하고 있다는 불만이다.
#지각생·풍년의 역설은 부담
최 전 원장에 대한 긍정적 시각도 많지만 아직까지는 부정적 예측이 더 강하다. ‘무결점’이라는 이미지 역시 대선 후보로서 본격적인 검증 무대에 올라올 경우 언제 건 깨질 것이란 회의감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그가 너무 늦게 링에 올라왔다는 것, 즉 지각생이라는 판단이 많다. 윤 전 총장이 이미 보수의 후보의 대세로서 자리 잡아 그 공간을 빼앗을 시간적 여력이 너무 부족하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최 전 원장이 달변에다, 민첩한 이미지도 아니어서 단시일 내에 주목을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최재형 비관론’ 쪽에 선 국민의힘 의원들은 얘기한다. 이미 15명에 육박하는 보수 야권 대선 주자들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너무 많은 숫자의 후보군 역시 최 전 원장에게 나쁜 영향을 주고 있다고 이들은 분석한다.
국민의힘 TK(대구·경북) 한 국회의원은 “인격적으로 훌륭하고, 스펙도 대단한 분인데 아쉽게도 유권자들이 잘 모른다는 것이 그의 가장 큰 단점”이라며 “더욱이 국민의힘 내부는 물론, 외부 주자까지 역대 대선 최대 규모로 형성되고 있는 부분도 그의 존재감을 더욱 작아지게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국민의힘 한 의원은 “지금 보수 야권은 그야말로 후보 풍년이다. 풍년이 후보 기근보다는 낫지만 농작물이 풍년이면 농작물 가격이 제값을 받지 못하는 것처럼 후보들의 개별 가치를 떨어뜨린다”며 “결국 대세론을 이미 형성한 1등 후보를 제외하고 추격자들은 풍년의 역설, 즉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채 모두 그저 그런 후보로 취급받는 지경에 빠질 수 있다”고 했다.
1987년 제도화된 민주주의 체제가 갖춰진 이후 내년 대선을 앞두고 보수 야권에서는 헌정 사상 최대 규모의 대통령 선거 경선 출마자 그룹이 형성되고 있다. 축구팀 규모를 이미 넘었다. 작은 초등학교 한 학급 수준은 될 만큼 많은 경선 출마자들이 출사표를 던지는 상황이다. 자고 나면 한 명씩 나오는 수준이다.
장외의 윤석열 전 총장과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홍정욱 전 의원 등이 잠룡으로 꼽힌다. 국민의힘에선 최 전 원장을 비롯해 홍준표 김태호 박진 하태경 윤희숙 의원이 차기 주자군이다. 원외에선 황교안 전 대표와 유승민‧안상수 전 의원, 원희룡 제주도지사, 장성민 전 의원 등이 대권 도전 의사를 밝혔거나 준비 중이다.
정치권에서는 여권이 윤 전 총장을 무너뜨릴 만한 새롭고 강력한 네거티브 소재를 갖고 오거나, 여권의 이재명 대세론이 무너질 경우 “윤 전 총장을 버리고 최재형으로 가야 한다”는 대안론이 만들어질 것으로 본다. 하지만 이런 거대한 규모의 판도 변화가 없는 한 윤 전 총장 대세론이 뒤집어지는 역전극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 기류다.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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