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주간지 ‘포춘’은 이번 도쿄올림픽을 가리켜 “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들은 역대 가장 기묘한 올림픽에 출전하게 됐다”라고 묘사했다. 그만큼 선수들이 유례 없는 규정과 환경 속에서 경기를 치르게 됐다는 의미다. 텅 빈 관중석에서 고독하게 경기를 치러야 하는 데다 모처럼 참가하는 올림픽에서 이렇다 할 사교활동이나 열띤 응원활동도 할 수 없게 됐다.
어떤 선수들에게 올림픽의 의미는 비단 메달을 따는 데만 그치지 않기에 더욱 그렇다. 일부 선수들에게 올림픽 출전은 스폰서 계약이나 국가적 차원의 후원을 통해 더 많은 돈과 명예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대회가 시작되기 전부터 선수들은 이미 예전의 올림픽과는 다른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도쿄올림픽에 참가하는 1만 1000여 선수들 가운데 한 명인 판델렐라 리농 팜그(28)는 말레이시아 최고의 다이빙 선수다. 지금까지 올림픽에 세 차례 출전했던 리농은 여자 10m 플랫폼 부문에서 은메달과 동메달을 한 차례씩 수상했다. 올림픽 경험이 풍부한 팜그는 도쿄올림픽에 대해 “이번처럼 올림픽을 준비해 본 적이 없다”며 혀를 내둘렀다.
코로나에 감염되지 않도록 ‘트레이닝 버블’ 안에서 생활했던 팜그는 “훈련을 시작한 후로 가족을 1년 동안 보지 못했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쿠알라룸푸르에서 그의 생활은 3분 거리인 훈련소와 숙소를 오가는 게 전부였다. 그나마 이동할 때도 혹시 모를 감염을 방지하기 위해 대중교통 대신 선수들을 실어나르는 밴을 이용해야 했다. 때문에 지난 1년간 그가 접촉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동료 선수들이 전부였다. 팜그는 “우리는 주로 실내에서만 훈련했고, 훈련소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면서 오히려 이런 생활이 건강에 좋지 않다고 말했다.
이런 답답한 생활은 도쿄에 도착한 후에도 이어질 예정이다. 선수들에게 배포될 70쪽 분량의 안내문에는 경기 중 지켜야 할 동선과 행동에 대한 규정이 명시되어 있다. 만일 이를 어길 경우 부과되는 벌금 역시 상세하게 안내되어 있다. 이를테면 선수들은 도착하는 즉시 3일간 자가 격리에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에는 매일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한다.
선수촌 내 버블(정해진 공간) 안에서만 머물러야 하며, 파티를 포함한 사교 활동이나 단체 식사, 술자리 역시 모두 금지된다. 경기를 마친 후에는 선수들을 응원하기 위해 다른 경기장을 찾거나 외출을 해서도 안된다. 그리고 마지막 경기가 끝난 후 48시간이 지나기 전에 일본을 떠나야 한다.
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들에게는 가장 영광스런 순간인 메달 수여식에도 변화가 있을 전망이다. 수상자 본인이 직접 메달을 목에 거는 셀프 수여식으로 진행되며, 때문에 메달을 수여한 후 선수들끼리 악수나 포옹을 나누는 모습 역시 볼 수 없게 된다.
이런 까다로운 조건에도 불구하고 올림픽 참가를 결심한 선수들은 그 이유에 대해 “가장 최악은 아예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현 여자 역도 71kg급 세계 챔피언이자 올림픽에 처음 출전하는 미국의 캐서린 나이는 “올림픽을 포기하면 내 인생에서 ‘왜’라는 많은 부분이 사라진다”라고 말했다. 그만큼 오로지 올림픽을 바라보고 달려왔기 때문에 이번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는 의미다. 나이는 대회 나흘 전 도쿄로 날아와 자가격리를 한 후 경기에 참가한 다음 바로 다음 날 출국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가 도쿄에 머무는 기간은 자가격리 기간을 포함해 총 6일이다.
다만 훈련은 당초 지정되어 있던 도쿄의 번화한 구역인 아오야마 인근 대신 하와이 호놀룰루로 옮겨 진행했다. 단, 시차로 인한 피로를 덜기 위해 2주 동안 도쿄 시간에 맞춰 리듬을 조절해서 훈련을 했다.
유례 없는 사태에 곤경에 처한 건 비단 선수들뿐만이 아니다. 올림픽 공식후원사들 역시 난감하긴 마찬가지다. 일본 안팎으로 올림픽 반대 여론이 거세진 데다 모든 경기가 무관중으로 진행되자 위기감을 느낀 후원사들은 부랴부랴 마케팅 컨설턴트들을 영입해 대책 마련에 나섰다. 오히려 올림픽과의 직접적인 연관성이 혹시 브랜드 가치를 손상시킬지에 대해서도 고심하기 시작했다.
이는 특히 일본 기업들에게 더욱 심각한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일본 국민의 절반 이상이 올림픽 개최를 취소해야 한다고 응답한 여론조사가 발표되자 각 회사들은 가능한 올림픽 후원사라는 사실을 부각시키지 않는 방향으로 마케팅을 펼치기로 했다. 이를테면 광고는 하되 올림픽 로고를 숨기거나 최대한 노출이 덜 되도록 하는 것이다. 가령 아식스나 메이지 홀딩스가 최근 제작한 TV 광고에서는 올림픽 마크를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광고가 끝날 때 한 귀퉁이에 조그맣게 잠깐 등장했을 뿐이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광고계약을 파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럴 수도 없을 뿐더러 설령 파기한다 해도 지불해야 할 위약금이 천문학적이기 때문이다. 272개 회원사를 거느린 일본광고주협회의 한 관계자는 “올림픽 공식후원사들이 당초 기대했던 마케팅 혜택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고 인정했다.
이 관계자는 “기업들은 주요 글로벌 스포츠 행사를 후원함으로써 브랜드 가치가 높아지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도쿄올림픽을 후원한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기는 사실상 어려워졌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기업들은 올림픽에 대한 반대 여론이 수그러들지 지켜보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올림픽이 오히려 브랜드 이미지에 나쁜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며 우려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여러 면에서 전문가들은 결과야 어떻든 이번 도쿄올림픽이 올림픽이라는 국제적인 스포츠행사 전반에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점차 올림픽 개최 도시라는 자부심보다는 재정적 부담과 규제에 대한 반감 때문에 올림픽을 반대하는 여론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간사이대학의 스포츠, 젠더, 성생활학과 부교수인 사토코 이타니는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오륜기’나 올림픽 로고를 보여주면 무엇이든 명령하거나 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점점 더 ‘노’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타니 교수는 “이번 올림픽은 분명히 전환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초박형은 안돼” 올림픽 기간 콘돔 마케팅도 제약
콘돔 제조업체들에게 올림픽은 4년마다 찾아오는 절호의 기회다. 올림픽을 구경하러 전세계에서 오는 수많은 관광객들이나 수만 명의 참가 선수들을 대상으로 콘돔을 무료로 배포하면 홍보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매 대회 때마다 수십만 개의 무료 콘돔이 배포됐으며, 이는 안전한 성관계 및 에이즈 예방 효과와 맞물려 적잖은 마케팅 효과를 누리곤 했다.
하지만 이번 도쿄올림픽에서는 이런 효과를 누리기 힘들어졌다. 무관중 경기, 엄격한 방역 규정 때문에 예전과는 전혀 다른 올림픽이 됐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 올림픽에서도 콘돔 16만 개는 예정대로 배포될 예정이다.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선수촌 안에서 사용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된다.
그럼 사용하지도 못할 콘돔은 대체 왜 나눠주는 걸까. 이에 대해 주최 측은 “콘돔을 배포하는 것은 에이즈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서다. 각자 고국으로 돌아가서 에이즈 예방 캠페인을 홍보해달라”고 주문했다.
그럼에도 올림픽을 준비해왔던 일본 콘돔 제조사들의 시름은 깊다. 대회 기간 동안 배포할 수 있는 콘돔의 종류에 제약이 걸렸기 때문이다. 가령 올림픽조직위원회는 폴리우레탄으로 만든 두께 0.01mm의 초박형 모델 대신 오로지 라텍스로 만든 콘돔만 배포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이런 규제에 일본 최대 콘돔 제조사인 ‘사가미 러버’사 측은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야마시타 히로시 대변인은 “현재 0.01~0.02mm 정도의 초박형 콘돔을 제작할 수 있는 곳은 전세계에서 일본 회사들밖에 없다. 우리는 (도쿄올림픽을) 일본의 첨단 기술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소중한 기회로 여기고 있었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