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지원급 합의 번복에 여가부·통일부 폐지 주장 리더십 상처…취임 한 달 지지기반 없는 ‘0선’ 한계점 노출 평가
7월 12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코로나19 재난지원금을 전 국민 지급으로 확대하는 데 합의했다가 100분 만에 번복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이 대표와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만찬 회동을 갖고,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을 현행 소득 하위 80%가 아닌 전 국민으로 하는 데 합의했다.
합의 내용은 고용진 민주당 수석대변인과 황보승희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의 입을 통해 전해졌다. 황보 대변인은 “현재까지 검토한 안에 대해 훨씬 더 상향된 소상공인 지원을 두텁게 하는 안으로,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방향으로 결정됐다”며 “지급 시기는 방역상황을 봐서 결정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여야 대표 합의내용을 접한 국민의힘 내부는 발칵 뒤집어졌다. 당초 당에서 강하게 반대하던 전 국민 지원 확대를 이 대표가 받아들이자 반발이 쏟아져 나왔다. “이준석 리스크가 현실이 됐다” “송영길에 당한 것 아니냐” 등과 같은 격앙된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조해진 의원은 자신의 SNS에 “사실이라면 황당한 일이다. 우리 당의 기존 입장은 반대였다”며 “이준석 대표가 당의 기존 입장과 다른 합의를 한 경위가 밝혀져야 한다. 대표가 독단적으로 결정한 것이면 큰 문제다. 이 대표가 밝혀야 할 사항”이라고 지적했다.
당내 ‘경제통’으로 최근 대선 출마를 선언한 윤희숙 의원 역시 “당내 토론도 전혀 없이, 그간의 원칙을 뒤집는 양당 합의를 불쑥 하는 당대표를 보게 될 줄은 몰랐다”며 “민주적 당 운영을 약속한 대표를 뽑았을 때 자기 맘대로 밀어붙이는 과거의 제왕적 당대표를 뽑은 것이 아니다. 그는 젊은 당대표의 새로운 정치를 기대한 수많은 이들의 신뢰를 배반했다”고 이 대표를 직격했다.
결국 이 대표는 발표한 지 2시간도 안 돼 내용을 뒤집었다. 황보 대변인은 뒤늦게 “양당 대표 회동의 합의 내용은 정부 방역지침에 따라 손실을 입으신 소상공인·자영업자의 대상과 보상범위를 넓히고 두텁게 지원하는 데 우선적으로 추경재원을 활용하자는 것”이라며 “그 후 ‘남는 재원이 있을 때’ 재난지원금 지급대상범위를 전 국민으로 확대하는 것까지 포함해 필요 여부를 ‘검토하자’는 취지”라고 번복했다. 사실상 조건부 합의였다고 한발 물러선 셈이다.
이준석 대표 역시 7월 13일 SNS에 “방역수칙 강화로 배석자가 없다 보니 회동 후 다른 방에 있던 대변인들에게 전화로 간략하게 발표내용을 정리해서 전달하고 대변인들이 그 내용을 기반으로 브리핑을 했다”며 “브리핑 내용으로 합의내용이 충분히 설명이 되기 어려웠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말 바꾸기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준석 대표를 둘러싼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최근에는 중국을 겨냥해 강성발언을 쏟아내 논란이 됐다. 이준석 대표는 7월 12일 블룸버그통신 인터뷰에서 홍콩 민주화 운동을 언급하며 “우리는 민주주의의 적과 맞서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를 접견하는 자리에서는 홍콩 문제를 거론하며 “국제적 기준에 맞는 국제사회 참여를 기대하고 있다”고 직격했다.
이에 중국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 등은 이 대표에 대해 ‘유치하고 개념이 없다’ ‘지식 없는 정치인’ ‘인터넷 연예인’ 등이라고 비판했다. 국내 정치권에서도 이준석 대표가 반중 정서를 이용하기 위해 제1야당의 당대표로서 책임질 수 없는 발언을 했다고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이준석 대표는 여성가족부와 통일부 폐지를 주장하며 여권은 물론 야권에서도 비판 여론에 직면했다.
정치권에서는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다. ‘이준석 리스크’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는 것이다. 당초 국민의힘 전당대회 과정에서도 이준석 대표 발언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다. ‘이대남(20대 남자)’의 지지를 얻기 위해 젠더 이슈 등을 가져와 성별·세대별로 여론을 갈라치기하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당 내부에선 대표가 전면에 자주 나서는 것에 대한 비판도 높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이준석 대표는 아직도 자신이 시사프로그램의 평론가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TV 라디오 등 방송만 켜면 이준석 대표를 볼 수 있다. 어느 당대표도 이렇게 자주 방송에 출연하지 않는다. 대변인은 왜 임명했느냐. 말을 많이 하다 보니 그만큼 구설에 오를 빌미를 자주 제공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 역시 “여당보다 선제 발언을 통해 이슈를 주도할 수는 있다”면서도 “제1야당 대표의 무게감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당대표의 말 한마디는 개인발언이 아니다.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그 자체를 당론으로 받아들인다. 충분히 생각하고 당 지도부와 논의를 거쳐야 하는데 그런 모습이 안 보인다”고 말했다.
차기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의 공정한 관리에 대한 우려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 ‘여가부 폐지’는 대선 출마를 선언한 유승민 전 의원과 하태경 의원이 내건 대선 공약이다. 이준석 대표가 “이번에 대선 출마하는 주자들이 여가부 폐지에 제대로 입장을 내달라”고 말하며 이슈를 부각시킨 것이다.
이준석 대표와 유승민 전 의원, 하태경 의원은 과거 바른정당부터 함께 활동하며, 사적으로도 친분이 두터운 사이로 알려졌다. 이에 이준석 대표가 개인적으로 친분 있는 후보들과 비슷한 목소리를 내 사실상 우회적으로 지원사격을 해주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다. 앞서 전당대회에서도 다른 후보들이 이준석 대표가 ‘유승민계’로 분류된다며 이러한 문제 지적이 나온 바 있다.
‘당대표 리스크’ 대두에도 이준석 대표는 정면돌파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는 7월 14일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전 국민 재난지원금 합의 번복에 대해 “여야가 샅바싸움 하는 중에 저희가 나쁘지 않은 스탠스라고 생각했는데 당내 대권 주자들이 좀 불편하신가보다”라며 “대선을 앞두고 재난지원금을 주지 말자는 스탠스에 서는 것 자체가 전략적으로 옳은 선택인가에 대해 강하게 반문하고 싶다”고 밝혔다. 여가부·통일부 폐지에 대해서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당대표가 공개석상에서 이런 ‘기싸움’을 펼치는 것이 당내에서 높은 지지를 받지 못하는 반증이라는 해석도 있다. 국민의힘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야권의 관계자는 “대표는 당내 의원 및 구성원들과 충분한 대화를 통해 협의하고 의견을 조율해 당론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런데 이준석 대표는 여전히 SNS나 방송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개진하고 있다”며 “당 내부에 이준석 대표의 지원군이 많지 않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실제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이준석 대표에 대한 비토 분위기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귀띔했다.
고진동 정치평론가는 “기성정치에 대한 회의감과 새로운 정치의 필요성 때문에 이준석 현상이 발생했지만, 이준석 당대표 취임 때부터 예상됐던 리스크였다. 이준석 대표가 정치 개인기는 뛰어나지만 조직력이 약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준석 리더십’에 대한 구설이 이어진다면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고민이 깊어질 것”이라고 전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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