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그룹의 매출액 절반은 엔터테인먼트 사업에서 나왔다. 일례로 지난해 11월 발매한 가정용 콘솔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5는 한 달 만에 무려 450만 대를 판매했다. 전 세계적인 품귀 현상에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집콕 생활’이 이어지면서 게임 산업이 날개를 단 것으로 풀이된다. 또 산하 애니플렉스가 제작·배급에 참여한 애니메이션 ‘극장판 귀멸의 칼날’이 메가 히트를 기록했으며, 음악 사업도 소니의 영업이익을 끌어올렸다.
실적 호조에 따라 사원들에게 지급된 보너스도 역대 최고다. 기본급의 7개월분(계장 미만 기준 약 2660만 원)으로, 이는 노동조합의 요구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소니는 2012년 4566억 엔(약 4조 7900억 원)이라는 사상 최악의 적자를 기록한 바 있다. 그로부터 10년 후 환골탈태 노력이 드디어 결실로 맺어진 모양새다.
#전자사업 조기퇴직 움직임도…
한편, 소니그룹의 일렉트로닉스 사업에 재직 중인 한 중견사원은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며 시무룩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해당 사업의 경우 희망퇴직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실제로 상품 설계를 담당하는 ‘소니엔지니어링’과 카메라 등을 취급하는 ‘소니이미징프로덕츠&솔루션즈’는 2020년 겨울부터 ‘45세 이상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자’를 모집 중이다.
최고 이익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인원 감축을 진행하는 것은 소니라는 회사가 변신을 꾀하고 있어서다. 올해 4월 소니는 63년 만에 회사명을 변경했다. 새로운 회사명은 ‘소니그룹’. 기존의 소니 상호는 전자사업을 담당하는 일렉트로닉스가 계승했다. 즉, 본사에서 해오던 전자사업이 이제는 게임, 음악, 영화, 반도체, 금융 사업과 마찬가지로 그룹의 자회사 중 하나가 된 것이다. 덧붙여 소니그룹 본사는 전체 사업을 통괄하는 기능에 특화한다.
이러한 변화는 소니그룹에서 전자사업의 지위가 저하됐기 때문이다. 최근 10년간 소니그룹의 매출을 살펴보면, 전자사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60%에서 20%로 크게 줄었다. TV와 워크맨 등 히트 가전제품으로 한때 세계 전자산업을 호령했던 소니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창업 이래 줄곧 전자사업을 기업의 정체성으로 삼아왔지만, 이제 관련 사업은 구조개혁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성장 엔진 역할에서 사실상 물러난 셈이다.
#6개 사업 간의 시너지 극대화 전략
요시다 겐이치로 소니그룹 회장 겸 사장은 지난 5월 온라인으로 열린, 소니그룹의 경영방침 설명회에서 “소니란 무엇인가. 기술을 바탕으로 한 크리에이티브 엔터테인먼트 회사”라고 정의한 바 있다. 현재 소니그룹의 전략은 사업부 간의 시너지 극대화다. 요컨대 전자, 게임, 음악, 영화, 반도체, 금융 등 6개 사업부 간의 벽을 허물고 융합하는 ‘원소니(One Sony)의 확립’이다.
각 사업끼리의 제휴는 이미 결실을 맺고 있다. 예를 들어 미러리스 카메라 시장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자랑하는 ‘α(알파)시리즈’는 소니가 자체 개발한 반도체 기술이 탑재됐으며, 소니손해보험에서는 AI(인공지능) 기술을 적용한 상품이 인기다.
‘원소니’ 전략은 신규 사업에서도 돋보인다. 대표적인 사례가 2020년 CES(국제전자제품박람회)에서 공개한 자율주행 전기차 ‘비전-에스(VISION-S)’다. 소니는 이 자동차에 자사의 이미지센서 기술력과 엔터테인먼트 자산을 집약했다. 카메라 등 부품을 자동차 업체에 공급만 해오던 소니가 자체적으로 자동차를 선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인기 게임을 자회사 소니픽처스가 영화화하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1차로 2022년 2월에 ‘언차티드’ 영화판이 개봉될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고스트 오브 쓰시마’, ‘라스트 오브 어스’ 등 모두 10편의 게임이 드라마·영화화를 앞두고 있으며, 이를 위해 소니그룹의 게임과 영화사 직원들이 한 조직으로 뭉쳐 협업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다. 소니뮤직은 자사가 운영하는 웹소설 플랫폼 ‘모노가타리’에서 수상한 작품을 오디오 드라마로 제작하기도 했다. 전자 부문의 오디오 기술을 십분 활용해 360도 입체음향을 구현한 것이 특징이다. 몰입감 넘치는 생생한 음향이 매력이라고 한다. 소니뮤직이 배출한 프로젝트 그룹 ‘요아소비(YOASOBI)’도 모노가타리의 수상작을 기반으로 ‘밤을 달리다’라는 곡을 만들었는데, 그야말로 소위 ‘대박’을 터트렸다.
이처럼 소니그룹은 사업부 간의 협력으로 차례차례 신사업 영역을 개척 중이다. 수익화도 단품 판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리컬링(Recurring) 모델’에 힘을 쏟고 있다. 리컬링이란 지속적인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로, 정액제 등이 해당한다. 가령 소니가 게임 부분에서 큰 수익을 올리는 것도 월정액이 필요한 플러스 회원이 전 세계에 5000만 명 가까이 되기 때문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소니가 성장주로서의 빛을 되찾고 있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융합으로 힘들었던 시기를 극복하고, 여러 사업이 연계되는 원소니의 확립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신문은 “쾌속의 진격을 위해서는 소니가 가전회사라는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발상으로 계속 도전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내다봤다.
라이벌 파나소닉의 몰락
일찍이 ‘소니의 라이벌’이라 불리던 파나소닉은 정반대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2020년 회계연도에서 파나소닉의 순이익은 1650억 엔(1조 7300억 원)으로, 전분기 대비 26.9% 급감했다. 더 비참한 것은 매출액이다. 6조 6900억 엔으로, 1년 만에 8000억 엔이나 줄어들었다.
최근 9년간 파나소닉의 규모는 많이 작아졌다. 채산이 맞지 않은 사업을 철수하거나 분리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액정 사업과 태양광 패널 사업에서는 철수, 주택 사업과 차량 탑재용 전지 사업은 각각 도요타자동차와 합작회사에 이관했다. 한때 과감히 B2B(기업 간 거래) 비즈니스로 과감히 방향을 바꾸기도 했지만, 좀처럼 이익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와 관련, 일본 잡지 ‘경제계’는 “과거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쫓기기만 할 뿐 뚜렷한 성장 엔진이 없다”며 일침을 가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