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5월 평화로운 일상을 깨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어느 공원에서 남녀의 토막 난 시신이 담긴 쓰레기봉투가 발견된 것이다.
토막 난 시신에서 지문을 채취한 경찰은 인근 아파트에 사는 해병대 중령 출신의 남성과 신원불명의 여성임을 밝혀낸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이들에겐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부부의 집을 찾아간 형사들을 맞이하는 건 그들의 둘째 아들 '박 아무개 군'이었다. "아버지의 시신이 발견됐다"는 부모님의 부고 소식에도 잠깐 놀랄 뿐 별다른 반응이 없는 박 군.
경찰은 부부를 잔혹하게 살해하고 시신을 토막 낸 후 지하철역, 동네 공원 쓰레기통, 음식물 수거함 등 총 11곳에 유기한 엽기적인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바로 명문대에 재학 중인 그들의 둘째 아들 '박 군'이라는 사실을 밝혀낸다.
박 군의 존속살해 소식을 접한 그의 형의 한마디는 더 충격적이었다. "부모를 살해한 동생을 이해합니다."
부모를 살해하게 된 동생과 그의 범행을 이해할 수밖에 없는 형, 이 형제에겐 무슨 사연이 있었을까. 살인 사건의 시작은 6일 전 있었던 다툼으로부터 시작된다.
부모와 다툰 박 군은 6일 동안 방문을 걸어 잠그고 밥도 먹지 않고 화장실도 가지 않는 은둔 생활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박 군의 행동을 신경조차 쓰지 않던 부부와 박 군의 사이는 점점 더 멀어지고 악화되어 결국 '죽음'이라는 불행을 불러오기에 이른다.
부모를 살해하고 토막까지 낸 이 비극적 사건을 표창원과 이수정은 부동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박 군이 방문을 걸어 잠근 6일 그 시간의 의미는 "나 좀 도와주세요. 내가 마음이 아픕니다"라는 절박한 마음으로 들리지 않는 SOS 구조 신호를 보낸 것인가, 아니면 분노가 증폭되는 시간이었을까.
그렇다면 박 군은 왜 굳이 부모의 시신을 토막까지 내야 했을까. 그가 사이코패스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서일까 아니면 단지 범죄를 은폐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을 뿐일까.
희대의 존속살해범 박 군과 22년째 편지를 주고받는 사람이 있다. 박 군이 보내온 편지들에는 범행 전, 후와 현재 그가 어떤 감정으로 삶을 살고 있는지 자세하게 적혀있다.
부모에 대한 박 군의 원망과 분노는 꽤 오래전부터 시작된다. 사랑받아 마땅한 유치원 시절부터 박 군은 맞으면서 시계 보는 법을 배웠고 밥을 늦게 먹는다는 사소한 이유들로 행해진 폭행과 방치로 인해 몸과 마음이 얼룩진 나날들을 보냈다.
해마다 아동학대 피해자는 늘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 아동학대의 무서움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탈출구가 없는 상황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아동학대 피해자는 감정과 욕구 조절 능력을 상실하고 폭력성을 가지게 되는 '아동학대 피해 증후군'을 앓게 되고 그로인해 크고 작은 문제들을 일으키는 연쇄 반응이 나타난다.
대한민국을 뒤흔든 희대의 연쇄살인마 강호순과 탈옥범 신창원도 아동학대의 피해자였다는 사실만 봐도 아동학대가 얼마나 큰 나비효과를 불러오는 지 알 수 있다.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아동학대의 상처를 지닌 박 군과 같은 시한폭탄이 있을지 모른다. 아동학대의 잔혹한 파급력을 파헤쳐본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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