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당·제명 요구받지 않는 ‘1호 대통령’ 유력…정권교체 여론 과반 등 ‘문심’ 영향력 제한적일 수도
이례적이다. 임기 말을 맞은 문재인 대통령 지지도가 되레 반등했다. 일부 여론조사에선 심리적 마지노선(40%)을 돌파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의 중심에 선 셈이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주자들은 너도나도 ‘문재인·노무현 마케팅’에 열을 올리며 범주류 표심 끌어안기에 나섰다. 여권 내부에선 문 대통령을 두고 탈당 요구도, 제명도 받지 않은 ‘1호 대통령’이 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1987년 체제 이후 총 6명의 대통령 중 4명(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은 임기 말 떠밀리듯 탈당을 감내해야만 했다. 이명박(MB) 전 대통령도 탈당을 요구받았지만, 끝내 수용하지 않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헌정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게이트에 휘말리면서 헌법재판소로부터 탄핵을 선고받았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대통령 탈당·제명에 대해 “레임덕이 불가피한 5년 단임제의 폐해”라고 했다. 다른 관계자는 “대통령 권력구조의 한계도 있지만, 내부 분열도 큰 문제였다”고 분석했다.
실제 그랬다. 대통령 탈당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것은 ‘여권 내 권력암투’였다. 민주화 이후 탈당한 첫 번째 대통령인 노태우는 김영삼(YS) 전 대통령과의 권력투쟁에서 밀렸다. 당시 여당인 민주자유당(민자당)은 노태우의 민정계와 YS의 민주계, 김종필(JP)의 공화계가 삼각 편대를 이루고 있었다. 1990년 3당 합당 당시엔 민정계가 최대주주였으나, 1992년 대선을 앞두고 YS가 당 총재에 오르면서 민정계 힘이 급속히 빠졌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탈당한 1992년 9월 18일은 YS가 당 총재직(1992년 8월 28일)에 오른 지 불과 21일 만이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거국중립내각 구성을 탈당 명분으로 삼았지만, 내막은 박철언을 민자당 2인자로 세우려다가 실패한 혹독한 대가였다.
YS도 대권 잠룡과의 충돌을 피하지 못했다. 1997년 한보 게이트를 시작으로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위기를 겪은 YS는 집권 5년 차에 접어들자마자, 국정 장악력을 급속히 실기했다. 신한국당 유력 대권 주자였던 이회창 전 총재와 사사건건 충돌했다.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였던 ‘김대중(DJ) 비자금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를 둘러싼 이견으로 양측 감정의 골은 극에 달했다. 대선 과정에서 이회창 지지자들은 ‘YS 화형식’을 감행하기도 했다. 사실상 식물 대통령에 불과했던 YS는 1997년 대선을 41일 앞둔 11월 7일 전격 탈당했다.
DJ는 자진 탈당을 택한 케이스다. 최규선 게이트 등 측근발 권력형 비리와 아들들인 ‘홍삼(홍일·홍업·홍걸) 트리오’의 비리 의혹 등이 맞물리자, 당시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스스로 탈당의 길을 걸었다. DJ는 2002년 대선을 200여 일 앞둔 5월 5일 탈당했다. 여권 한 관계자는 “대선 승리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DJ가 탈당할 당시 여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후보로 내세워 그해 대선에서 승리(노무현 48.9% vs 이회창 46.6%)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87년 체제 이후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빨리 탈당했다. 임기 4년 차에 치른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데 이어 재보선 0승 기록을 이어간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2월 22일 탈당을 선언했다. 취임한 지 1500일도 안 됐을 때다. 정동영을 중심으로 한 비노(비노무현) 인사들은 그로부터 6개월 뒤인 2007년 8월 5일 열린우리당을 깨고 대통합민주신당을 만들었다.
MB는 탈당 없이 임기 5년을 마친 유일한 대통령으로 남았지만, 탈당 요구를 받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친박(친박근혜)계는 임기 말 MB에게 탈당을 압박했다. 다만 MB의 잔류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 의중이 영향을 미쳤다는 시각도 있다. 그간 박 전 대통령은 임기 말 대통령 탈당에 대해 직간접으로 부정적인 뜻을 피력했다.
박 전 대통령은 당시 여당으로부터 출당 조치됐다. 국정농단 게이트가 발발했던 2016년 10월부터 비박(비박근혜)계로부터 탈당 요구를 받았지만, 당권을 장악한 친박계 비호 아래 버텼다. 하지만 비주류 인사들은 홍준표 의원이 당권을 잡은 지 반년 만인 2017년 11월 '박근혜 제명'을 밀어붙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의 전철을 밟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 한 의원은 “임기 말 40%를 오가는 지지도는 상상도 못 할 일”이라며 “레임덕 없는 최초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의 7월 2주 차 주간집계 결과에 따르면 문 대통령 지지도는 한 주 만에 4.4%포인트(p) 상승하면서 45.5%로 뛰었다. 같은 기간 부정 평가는 3.7%p 하락한 51.2%였다. 긍·부정 격차는 5.7%p에 불과했다. 이 수치가 한 자릿수로 좁혀진 것은 지난해 11월 4주 차(긍정 43.8% vs. 부정 52.2%) 이후 처음이다. 문 대통령 지지도는 같은 해 10월 3주(45.6%) 이후 가장 높았다. 같은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도는 3.8%p 상승한 36.7%였다. 7월 12∼16일까지 조사한 이번 결과는 같은 달 19일 공개됐다. 자세한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이하 동일)하면 된다.
정치권에선 레임덕의 징표로 대통령이 지지도가 당 지지도를 밑도는 ‘데드크로스(지지도 역전 현상)’를 꼽는다. 리얼미터 조사에선 문 대통령 지지도가 당 지지도보다 8.8%p 높았다. 여권의 한 대선 후보 캠프 관계자는 “호남 민심을 빼면, 믿을 수 있는 것은 문 대통령밖에 없는 게 아니냐”라고 말했다.
여권 복수 관계자들은 문 대통령 지지도 이외에도 △당내 비주류의 약세 △친인척 권력형 비리 전무 등을 탈당·제명 가능성이 없는 요인으로 꼽았다. 이른바 조국 사태를 비롯한 검찰 개혁 과정에서 조응천 의원 등이 친문계에 쓴소리를 던졌지만, 비주류가 세력화될 정도는 아니었다. 민주당 한 당직자는 “개별 의원들도 친문계의 문자 폭탄이나 전화 항의 등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튀는 목소리가 차기 공천에 영향을 미칠까 노심초사하는 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친인척 비리가 없는 것도 문 대통령 지지도 방어선으로 작용한다는 분석이 많다. 여당 대선 후보들이 ‘문재인 마케팅’에 열을 올리는 이와 무관치 않다. 역대 대통령은 자신의 자녀를 포함한 친인척 비리 의혹에 휘청거렸다. YS 차남 현철 씨는 1997년 초 한보 비리 의혹에 휩싸이면서 YS 레임덕에 불을 질렀다. DJ의 장남 김홍일 전 의원은 나라종금 인사 청탁 혐의, 차남 홍업 씨는 이용호 게이트 의혹, 삼남 김홍걸 무소속 의원은 최규선 게이트 의혹 등에 각각 휘말렸다.
MB도 임기 말 친형 이상득 전 의원이 저축은행과 포스코 비리,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상납 의혹 등에 잇따라 연루되면서 곤욕을 치렀다. 미혼인 박근혜 전 대통령은 핵심 측근인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이병기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이 각종 의혹에 연루되면서 탄핵을 자초했다. ‘문고리 3인방(이재만·정호성·안봉근)’ 논란에다가 최순실 국정농단까지 덮치면서 박근혜 시대는 종말을 고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 영향력이 차기 대선판을 좌지우지할지는 미지수다. 문 대통령의 높은 지지도에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정권교체 여론은 과반에 달한다.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의 7월 1주 차(6월 29∼7월 1일 조사, 2일 발표) 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의 49%는 정권교체를 원했다. 정권재창출을 원하는 국민은 38%에 불과했다. 정권교체 여론은 지난 4월 55%를 돌파한 뒤 과반 선에 계속 걸쳐 있다.
야당 한 의원은 “코로나19를 비롯해 재난 상황일 땐 역사적으로 대통령 지지도가 올라갔다”며 “친문을 지지해서 긍정 평가 했겠나”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대학 교수는 “(문 대통령 지지도는) 야권 대선 경선이 본격화하면 빠질 것”이라고 점쳤다.
여권 경선판에서도 문심은 제한적 영향력에 그칠 수도 있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문 대통령은 첫째도 둘째도 정치적 중립”이라고 잘라 말했다. 문심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한 친문계는 분화를 거듭할 수밖에 없다. 최근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 지지도 상승으로 친문계 일부가 결집하는 양상을 띠지만, ‘정세균·추미애·김두관’ 등으로 분화된 친문계가 이낙연 대망론으로 전략적 선택을 할지는 여전히 물음표라는 얘기다.
‘빅3(이재명·이낙연·정세균)’의 난타전이 자칫 내부 분열로 이어질 땐 여권 자멸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민주당 한 권리당원은 “그래도 문 대통령 지지도가 40% 선을 유지하면, 정권 재창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윤지상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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