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스컴에 공개된 장자연 편지 사본들. |
우체국 소인 가운데 우체국 지역명과 고유번호 등이 표기된 부분이 잘려나가 있는 것.
경찰 입장은 편지가 조작됐다는 쪽에 무게감이 실리고 있다. 전 씨가 교도소에서 장자연, 내지는 고인의 가명 ‘눈꽃설화’와 주고받은 편지가 없다는 것, 장자연이 면회를 온 기록도 없다는 점, 그리고 둘 사이의 친분 성립에 개연성이 없다는 점 등이 그 근거다.
그렇지만 공개된 편지 67통을 살펴보면 오히려 편지 봉투 우체국 소인 조작이 당연해 보인다. 오히려 소인 조작은 교도소 공식에 편지를 주고받은 기록과 면회 기록이 없는 까닭까지 설명해준다.
공개된 편지에는 ‘등기루 보내면 좋은데 오빠가 동생집 주소 등 기록 남겨 진다고 해서’ ‘오빠 이름으루 보내는 것보단 오빠 아닌 사람 이름으루 편질 보내라 해서’ ‘오빠에게 동생이랑 접견이라두 갈려구 했지만 오빠가 말한데루 주민번호 사는 주소를 컴퓨터에다가 저장을 해노은다구 하니깐 나두 그런거 정말 싫어’ 등의 글들이 나온다. 편지를 전 씨가 아닌 전 씨 동료 수감자에게 보내는 등 철저하게 전 씨가 장자연의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노력한 부분이 편지에 고스란히 나온다.
고인의 편지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 가장 먼저 조작 의혹을 제기한 이는 전 소속사 김종승(가명 김성훈) 대표의 변호인인 법무법인 율촌의 고영신 변호사다. 그는 장자연과 전 씨가 처음 만난 게 95년인데 당시 고인이 열여섯 살이었다는 것, 고인의 출연 영화 <펜트하우스 코끼리>의 경우 영화 제목이 나중에 바뀌어 편지를 주고받을 당시에는 그 제목이 아니었다는 것, 편지엔 장자연이 동생과 같이 산다고 나오지만 실제론 언니 오빠와 함께 살았다는 것 등을 제시했다.
그렇지만 이런 지적에도 의문은 남는다. 우선 열여섯 살의 나이에 처음 만났다는 부분은 편지에 정확히 어떤 계기로 둘이 만나게 됐는지가 나오지 않아 그 나이에 처음 만난 게 딱히 이상할 이유도 없다. 영화 제목은 오히려 편지의 진실성을 높여준다. 변호사의 착오가 있었을 뿐 <펜트하우스 코끼리>는 애초부터 그 제목이었다. 오히려 또 다른 출연작 <정승필실종사건>의 촬영 당시 제목이 <그들이 온다>였지만 개봉을 앞두고 영화 제목이 바뀌었다. 편지엔 당시 제목인 <그들이 온다>로 기록돼 있다.
마지막으로 장자연이 누구와 살았는가 하는 점인데 편지엔 분당집에서 언니 오빠와 함께 산다는 내용과 동생(같은 소속사 연기자)네 집에서 지내고 있다는 내용이 모두 나온다. 장자연은 일정 기간 ‘동생’이라 지칭한 이의 집에 기거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경찰의 확인이 필요한 대목이다.
장자연의 한 지인 역시 매스컴을 통해 편지의 조작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는 고인이 이미숙을 가리켜 ‘선생님’이 아닌 ‘선배님’으로 불렀다는 점, 유장호를 ‘호’라고 부르지 않았던 점, 대학원 휴학 중이던 장자연의 글로 보기엔 맞춤법이 너무 형편없다는 점 등을 그 이유로 꼽았다. 우선 연예계와 관계없는 사람에게 극도로 사적인 내용을 기록한 편지라는 점에서 호칭이 달라질 가능성도 충분히 존재한다. 특히 이미숙은 대부분 송선미와 함께 거론돼 ‘이미숙 송선미 선배’라고 기재돼 있는데 ‘이미숙 선생님 송선미 선배님’이라 쓰는 게 거추장스러워 선배로 호칭을 통일했을 수 있다. 문맥이 이상하고 맞춤법도 틀린 부분이 많다는 부분 역시 조작 가능성에 무게를 실고 있지만 대부분 편지가 새벽 시간에 쓰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술에 취해 편지를 작성한 것이 그 이유일 수 있다.
반대로 편지가 위조되지 않은 실제 고인의 글이라는 주장도 많다. 가장 결정적인 근거는 전 씨가 교도소에서 스포츠신문 기사만을 가지고 이런 방대한 양의 편지를 썼다고 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만약 수감 중이 아니었다면 이야기는 크게 달라진다. 인터넷을 통하거나 고인의 지인을 만나 정보를 수집해 허위로 고인의 편지를 만들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67통의 공개된 편지에는 고인과 관련된 깊이 있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성상납과 술 접대가 이뤄졌다고 주장하고 있는 당시 소속사 건물 3층의 접견실에 대한 묘사, 방송국 PD와의 태국 여행, 부모의 산소가 있는 전라북도 정읍시 소성면에 대한 이야기 등이 대표적이다. 그렇지만 이런 부분은 모두 기사화됐던 부분들이라 전 씨가 신문기사를 바탕으로 상상을 더해 기록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외에 장자연이 성형외과에서 피부 관리를 받았다는 점, 요요현상으로 힘겨워했다는 점, 두 편의 사극에 출연할 기회가 무산됐다는 얘기 등은 기사화된 부분이 아니다. 다시 말해 알려져 있지 않은 고인의 평소 모습이라는 것. 이는 실제로 장자연이 보낸 편지라는 증거가 될 수 있지만 알려지지 않은 부분인 만큼 사실 여부도 경찰의 확인이 필요해 보인다.
전 소속사 김 대표의 광고회사 인수 관련 대목 역시 논란의 중심이다. 편지에는 김 사장의 광고회사 인수 여부가 상당히 비중 있게 그려진다. 편지에는 ‘김 사장 광고회사 설립하면 날 CF여왕으로 만더러 준다는 식~’ ‘김 사장은 광고 회사 설립하는 데 미쳐있구’ ‘김 사장은 원래 광고 전문가니깐’ ‘김 사장 광고회사 채리는 일 그거뚜(그것도) 다 깨져쓰면서 난 지금 회사에 의미두 없는 존제가 돼 버렸구’ 등의 구절이 나온다.
어느 정도는 기사화된 내용이다. 2년 전 장자연 리스트 수사 당시 경찰이 김 대표가 광고회사 인수를 위해 유력인사들을 상대로 집중 로비를 펼친 것으로 보고 있다는 기사가 보도됐던 것. 그렇지만 이 내용은 일부 언론에서만 작게 다뤘을 뿐이다. 따라서 전 씨가 이를 바탕으로 상상력을 동원해 장자연이 김 대표의 광고회사 인수 움직임에 신경을 많이 쓴 것처럼 편지를 작성했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보기에는 내용이 너무 구체적이다.
동료 배우 국지연에 대한 언급 역시 조작으로 보기 힘든 증거다. 자실 직전에 쓰인 편지에는 ‘국지연…! 회사와 무슨 일이 있는 건지 엉망이 돼 버렸구’ ‘왜 하필 촬영~ 한창인데 국지연이 회사에 일이 생겨서 꽃남 촬영은~ 끝까지 가기는 틀린 것 같구 종방 아닌 조기 종방 작업…’이라는 문구가 나온다.
국지연은 장자연과 함께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 ‘악녀 3인방’으로 출연했지만 고인이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 당시 소속사와의 전속계약 분쟁에 휘말린다. 이로 인해 악녀 3인방의 출연 분량이 대폭 줄어들 가능성이 일부 기사에서 제기됐었다. 이는 고인이 세상을 떠나기 전의 일이다. 교도소에서 전 씨가 고인의 자살 소식을 접한 뒤 고인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해 신문기사를 모으기 시작했다면 알기 힘든 내용인 셈. 인터넷으로 과거 기사를 검색하는 게 수감자인 전 씨에겐 힘겨운 일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런 세세한 부분까지 모두 알고 있었는지는 이해가 쉽지 않다.
가장 결정적인 증거는 역시 전 씨가 장자연의 주민등록번호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편지에 여러 차례 장자연의 주민등록번호가 정확하게 나와 있는 것. 이 부분은 경찰이 가장 먼저 풀어야 할 의혹이다. 또한 편지에 따르면 고인이 전 씨의 재판과 관련해 그의 변호사를 만났다는 대목도 나온다. 경찰이 해당 변호사를 만나 고인을 만난 적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 역시 편지의 진위를 가릴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 결국 관건은 경찰의 수사 의지다.
이미 재판 당시 법원에 제출된 장자연의 편지 67통은 실명 부분만 가려진채 매스컴을 통해 전부 공개됐다. 따라서 만약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의 필적대조 결과 고인의 친필이 아니라는 결과가 나올지라도 편지 내용을 통해 불거진 의혹은 해소돼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수사 축소 은폐설’ ‘외압설’ 등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네티즌들은 ‘전과 10범인 수감자가 혼자 작성한 것이라면 노벨문학상감’이라느니 ‘외압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조작됐다고 발표할 리 없다’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2년 전 수사를 총괄한 경기지방경찰청 청장이던 조현오 경찰청장은 “경찰의 자존심을 건다”고 말했다. ‘장J연 수퍼+월드 스타 틸런뜨^^...’라고 희망찬 미래를 꿈꿨던 신인 연예인의 자살, 경찰이 자존심을 한 번 걸어 봐도 될 만한 사건이 아닐까.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SBS “장 씨 지인이 외부에 보관”
장자연이 지인에게 보낸 것으로 보이는 편지 67통이 모두 공개됐지만 소위 말하는 리스트는 없었다. 성상납 또는 술 접대 대상으로 언급된 이들은 대부분 2년 전 장자연 리스트에 올라있던 이들이다. 편지가 조작됐다고 주장하는 측은 “핵심인 성상납 술 접대 관련 부분은 2년 전 공개된 장자연 리스트 내용을 되풀이 했을 뿐”이라고 밝히고 있는데 실제로 그런 측면이 강하다. 따라서 편지가 실제 고인이 작성한 것이라고 밝혀질 지라도 2년 전과 마찬가지로 수사는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어 보인다. 문제는 편지에서 언급된 31명의 성상납 대상의 이름과 직업, 접대장소 등이 적힌 리스트의 존재 여부다. 장자연 편지를 최초 공개한 SBS는 “편지를 받았던 장 씨의 지인을 만나 이른바 가해자 리스트를 실제 받았으며 외부에 보관하고 있다는 답변을 얻었다”고 밝혔다.
편지에도 ‘장자연 리스트’의 흔적이 보인다. 우선 ‘오빠에게 말한 책 뒤에 오빠에게 말한 데쓰노트 그건 분당집에 있구 울언니 오빠두 몰라’라는 대목의 데쓰노트는 이미 2년 전 경찰 수사에서 드러난 사항이다. 당시 경찰은 “이번 자살 사건과는 무관한 내용”이라고 밝혔다. 또한 ‘이 담에 오빠가 내가 2006년부터 써둔 다이어릴 보면 될꺼니깐 김사장두 날 어떻게 첨부터 날 건들였는지를 알 거야’ ‘세상에 나 설화 자연이 말구 아무도 모르는 다이어리가 있어’ 등의 글들도 편지에서 발견된다.
행여 이번에도 경찰 수사가 2년 전처럼 의혹만 남긴 채 끝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언젠가 본인이 언급한 ‘설화 자연이 말구 아무도 모르는 다이어리’가 공개돼 또 한 번 한국 사회를 송두리째 뒤흔들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