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 대신 광주시 매장 가맹점 등록 ‘꼼수’…일요신문 취재 시작되자 광주시 사용 제한 통보
광주광역시는 올해 12월 말까지 지역화폐인 ‘광주상생카드’ 사용 시 특별할인을 해준다. 개인당 매월 100만 원을 쓰면 10만 원을 환급(페이백)받을 수 있다. 당초 6월까지 할인 혜택을 제공할 예정이었지만,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서비스 기간을 연장했다. 이에 따른 추가예산 300억 원은 국비 180억 원과 시비 120억 원을 확보해 지원할 계획이다.
광주상생카드는 출시된 지 2년여 만에 누적 사용액이 1조 원을 돌파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2019년 3월 처음 선보인 상생카드는 첫해인 2019년 863억 원에 이어 2020년에는 10배가 넘는 8641억 원이 발행됐다. 지난 2월 기준 광주상생카드 누적 발행액은 1조 1038억 원, 사용액은 1조 80억 원에 달했다. 단순 계산하면 사용액의 11%인 1108억 8000만 원이 상생카드 사용자(10%)와 영세·중소사업자(카드수수료 1%)에게 돌아간 셈이다.
이런 가운데 지역화폐 혜택을 대기업에서 부당하게 받고 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LG베스트샵 광주 매장들(첨단점, 수완점, 용봉점, 홈플러스 동광주점, 동광주점, 광산본점, 서광주본점, 남광주점, 진월점, 풍암점)이 지역 맘카페에 광주상생카드로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고 홍보하면서다. LG베스트샵은 7월 1일부터 31일까지 ‘슬기로운 여름생활’이라는 여름맞이 특별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에 앞서 광주시에 위치한 삼성 디지털플라자 역시 지역화폐 사용처라 홍보했다.
LG전자와 삼성전자가 소상공인을 위한 마련된 지역화폐의 정책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광주상생카드 사용 제한 업종으로 롯데하이마트, 삼성디지털프라자, LG베스트샵 등 대형전자판매점이 명시돼 있다. 개인 사업자가 이들 대기업과 판매계약을 맺고 운영하는 전문점에선 지역화폐 사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LG베스트샵의 경우 홍보에 참여한 매장들은 모두 직영으로 운영되는 대리점이다. LG전자 한국영업본부는 LG베스트샵을 포함해 국내 전자 제품 관련 영업을 총괄한다. 하이프라자는 LG전자의 100% 자회사로서 가전제품 양판점 LG베스트샵 408개 대리점을 직영으로 운영하고 있다. 전문점은 약 100여 개로 추산된다. 지난해 하이프라자의 매출은 2조 8905억 원, 영업이익은 95억 4000만 원으로 집계됐다.
광주상생카드 가맹점 등록은 별도로 신청해야 된다. 타지역에 본사를 두고 단일 대리점으로 운영되는 대기업은 상생카드 가맹점 가입이 불가하다. 이런 사실을 LG전자에서 모르고 가맹점에 가입했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앞서 경쟁업체인 롯데하이마트도 지난해 경기지역화폐 가맹점으로 등록되면서 논란이 일었기 때문이다. 실제 주변 상인들이 시청에 문제를 제기하자 광주은행에 모든 업무를 위임했다고 해명했고, 광주은행에서는 가맹점 등록만 돼 있으면 무관하다는 입장을 보였다고 전했다.
LG베스트샵은 사업장 주소를 본사 대신 광주시 매장으로 기재했다. 꼼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광주시 지역화폐 담당 관계자는 지난 21일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본사 주소지(서울)로 하지 않고, 광주시 매장이나 지점 등의 주소를 활용하면 직영 대리점도 광주상생카드 가맹점으로 등록될 순 있다”며 “가맹점을 일일이 다 확인해서 사용을 제한하기란 물리적으로 쉽진 않다. LG베스트샵 대리점의 상생카드 가맹점 가입 여부를 확인해보고 추후 결제를 막도록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지자체에서 지역사랑상품권법에 따라 지역화폐 정책을 시행 중인 만큼 광주시만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실제 LG베스트샵 천안시 신방점, 김해시 장유점, 창원시 양덕점, 대전광역시 대덕테크노점, 울산광역시 무거점 등의 전문점이 지역화폐를 사용할 수 있다고 블로그, 카페 등 커뮤니티에 홍보 게시글을 게재하기도 했다.
지역화폐 예산이 조 단위에 이르는 만큼 대기업의 부당한 행태를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230개 지자체에서 판매한 지역사랑상품권은 총 13조 3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올해 발행 규모와 국비 지원예산은 각각 15조 원, 1조 522억 원에 이른다.
이에 대해 강남훈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기업에서 꼼수로 지역화폐를 활용하지 않도록, 지자체에서 실태 조사에 나서고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지적했다.
김주호 참여연대 사회경제1팀장은 “LG전자는 지역화폐 제도 취지를 명확히 알고 있을 텐데 직영 대리점을 직접 가맹점으로 등록해서 지역화폐를 받는 행태는 LG그룹에서 내세우고 있는 ‘정도경영’에 어긋난다”며 “대규모 세금이 지역화폐에 투입됐지만, 아직 완벽히 정착됐다고 보긴 어렵다. 정책 취지에 맞게 대기업이 아닌 지역 상권을 살리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지자체나 관련 부처에서 실태 조사를 통해 지역화페의 사각지대를 보완해야 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LG전자 관계자는 “광주시에 문의했고, 시에서는 광주은행과 협의하라고 했다”면서 “7월 초 본사 주소가 아니라 대리점 주소로 변경해서 상생카드 가맹점으로 등록한 건 맞지만,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 행정적인 문제는 없었다”고 밝혔다.
한편 광주시는 일요신문 취재가 시작된 직후인 지난 7월 22일 LG베스트샵을 비롯해 삼성디지털프라자, 롯데하이마트 등 대형전자판매점에 상생카드 사용 제한 업종으로 거래가 불가능하다고 통보했다. 앞서의 광주시 관계자는 "LG베스트샵이 지역화폐 가맹점으로 등록한 기간이 한 달이 되지 않았고, 이미 구매한 고객들에게 불편함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결제취소까지는 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말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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