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스크린으로만 경험해야 할 ‘류승완 표 액션’의 경신…하나라도 버릴 신이 없다
코로나19 4차 대유행과 맞물려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연장 논의가 이어지는 가운데 류승완 감독의 열한 번째 장편 ‘모가디슈’는 7월 28일로 예정됐던 개봉 일정을 그대로 진행한다. 연기에 대한 논의가 오가면서 언론배급시사회 개최도 불투명했으나 시사회를 이틀 앞둔 지난 7월 20일 결국 모든 일정을 확정했다. 한 차례 개봉을 연기했던 만큼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는 점, 그리고 ‘이 시국’ 속에서도 작품 그 자체로 충분히 승부를 겨룰 수 있다는 자신감이 이들의 뚝심을 만든 셈이다.
‘모가디슈’는 1991년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서 발생한 내전 당시 고립된 남한과 북한의 대사관 공관원들이 탈출을 위해 함께 목숨을 건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제작비 240억 원의 대작으로 지난해부터 명실상부한 ‘텐트폴 무비’ 가운데 하나로 꼽혀 왔다.
'모가디슈'는 전작인 ‘군함도’에서 잠시 삐끗했던 류승완 감독만의 장기와 장점이 이전보다 더욱 뚜렷하게 담긴 작품으로 눈길을 끈다. 액션 신은 꽉 쥔 주먹을 필 새도 없이 신속하고 시원하게 뻗어나가고, 전작에서 과도하다고 지적됐던 신파의 정서는 기름기를 뺀 담백함으로 스며든다.
언급할 필요도 없이 당연한 주조연들은 물론이고, 배역의 크고 작음을 떠나 모든 출연진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아주 자그마한 대사나 행동만으로 이야기의 농담을 덧칠하고 또 절제한다. 어느 한 명이 지나치게 튀지 않으며 모든 이들이 하나의 이야기를 지탱하고, 또 그곳에서 뻗어 나온 가지들을 활용해 캐릭터의 구체성을 더하는 식이다.
특히 주 소말리아 북한대사 림용수 역을 맡은 허준호의 연기는 무엇 하나 놓칠 곳이 없다. 남한의 UN 가입을 훼방 놓으며 외교상 우위에 서 있을 때의 당당함과 내전 발발 직후 동지들의 안전을 위해 반동으로 엮일 가능성을 알면서도 남한 대사관의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었던 참담함, 그리고 사상에 절어 있는 젊은 세대보다 명확하고 냉철한 상황 판단으로 전체의 안전을 도모하는 노련함까지. 절제된 대사만으로도 관객들로 하여금 캐릭터의 성격과 그 행동의 변화를 모두 이해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허준호가 가진 가장 뚜렷한 능력일 것이다.
허준호가 절제된 서사를 담당한다면 주 소말리아 한국 대사 한신성 역을 맡은 김윤석과 한국 대사관 강대진 참사관 역을 맡은 조인성은 몰아치는 서사를 담당한다. 잠시도 입을 쉬지 않으며 티키타카할 때는 류승완 감독의 여전한 개그 센스를 돋보이게 하다가도 중반부부터 이어지는 내전 속 암담한 고립 상황에서는 갈등의 기승전결을 이어가며 관객들에게 긴장감을 선사한다. 이처럼 한 쪽으로 치우치지도, 과하게 넘쳐 흐르지도 않는 두 배우들의 중심 잡기 덕에 이 영화의 관람 가치는 더욱 상승하는 셈이다.
영화 ‘반도’에서 독특한 목소리로 상업 영화 관객들까지 사로잡았던 구교환은 림용수 대사를 보필하는 주 소말리아 북한 대사관 태진기 참사관으로 분했다. 오랜 세월 해외에 머물면서 상대적으로 유연한 시각을 가진 림용수와 달리 비교적 젊은 세대임에도 누구보다 당을 위해 충성을 바치는 인물로 사사건건 강대진과 부딪치는 캐릭터다. 여전히 독특한 배우의 목소리와 더불어 유창한 북한 사투리로 더욱 현실감을 부여하는 태진기는 이 영화에서 유일한 맨몸 액션 신인 강대진과의 격투 신으로 매우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한다.
그런 이들이 이뤄낸 ‘남북한 대통합’의 카 체이싱 신은 이 영화를 반드시 스크린으로 봐야만 하는 이유를 만들어주고 있다. 전후좌우, 사방팔방이 가려진 상태에서 오로지 후진만으로 쫓고 쫓기는 카 체이싱은 이제껏 한국 액션 영화에서 흔히 보기 힘든 독특한 신이다. 비무장상태에서 어린 아이들까지 태운 차량을 몰고 후진으로만 무장 세력들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설정은 이 독특한 신을 더욱 짜릿하게 만든다.
22일 서울 송파구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점에서 열린 ‘모가디슈’ 언론배급시사회 기자간담회에서도 역시 이 카 체이싱 신이 백미로 꼽혔다. 차량을 운전하며 신을 촬영한 조인성, 구교환, 정만식 가운데 구교환은 촬영 며칠 전에 면허를 딴 사실이 알려져 같은 차에 타야 했던 허준호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고.
이날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허준호는 “교환 씨가 운전을 하는 친구인 줄 알았는데 면허를 바로 촬영 직전에 땄다더라. (정확한) 시기가 언제냐고 물었더니 비행기를 타기 전이라고 했다”며 “현장에서 매일 ‘우리 교환이 어디 갔어?’ 하고 물어보면 운전연습 하러 나갔다고 하는데 그게 아무도 없는 공터에서 하는 거였다. 거기 타는 제 심정이 어땠겠냐”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류승완 감독에게 ‘차라리 내가 운전하게 해달라’고 투정을 부릴 정도였지만 다행히 구교환이 모든 촬영을 안전하게 마쳤다고.
류승완 감독은 “저희 액션 신의 첫째 원칙은 안전이다. 가장 안전한 상태에서 가장 그럴듯한 스턴트가 나온다는 게 저희의 철학”이라며 “안전한 환경 안에서 어떻게 하면 절박한 모습을 포착할 수 있을 것인가에 스태프와 배우들이 많이 집착했다. 어떤 방식으로 만들었냐는 얘기를 하자면 몇 날 며칠을 두고 얘기해도 모자라서 그냥 ‘되게 열심히 만들었다’고(하고 싶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모가디슈’는 북한 캐릭터들의 대사를 자막으로 처리한 점에서도 취재진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북한 사투리가 아주 심한 편이 아니었음에도 사투리를 사용하는 캐릭터들의 모든 대사는 다른 외국인 배우들의 대사처럼 자막으로 표시된다. 이에 대해 류 감독은 “‘베를린’을 만들고 나서 대사가 안 들린다는 지적을 되게 많이 들었다. 나는 다 들리는데 왜 그럴까 했는데 단어 구사 방식과 그 체계가 북한과 차이가 많이 나서였던 것 같다”라며 “최근 젊은 세대들은 북한을 다른 국가로 인지한다. ‘모가디슈’를 촬영하면서 기성세대가 북한에 접근하는 방식, 즉 통일의 대상으로 보는 게 아니라 젊은 세대들이 보는 온전한 타국으로서의 북한으로 인지하는 게 맞겠단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한편 ‘모가디슈’는 7월 28일 개봉한다. 121분, 15세 이상 관람가.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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