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의 큰 물줄기를 품은 고장 충남 금산군. 매년 5월 말 숲에 밤이 찾아들면 은밀하고도 분주한 움직임이 시작된다. 어둠을 가르는 불빛들의 향연이 펼쳐지는 것. 주인공은 바로 운문산반딧불이다.
1930년대 경북 청도 운문산에서 처음 발견돼 이름 붙여진 우리나라 고유종으로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반딧불이 중 가장 밝은 빛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컷을 하늘을 날며 암컷을 찾고, 날개가 퇴화해 날지 못하는 암컷은 풀숲에서 맘에 드는 수컷을 기다리며 제 몸의 빛을 최대한으로 반짝인다.
뿐만 아니다. 애반딧불이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여름밤의 주인공. 금강 물속에서 애벌레 상태로 겨울을 난 애반디는 뭍으로 올라와 흙고치를 짓고 20여 일이 지나면 비로소 성충이 된다.
그리고 드디어 시작된 지상 최대의 미션. 주어진 시간은 열흘 남짓. 그 안에 짝짓기를 마쳐야 한다.
오직 이 순간만을 위해 1년의 시간을 견뎌왔기에 생애 가장 치열한 시간을 가장 찬란하고 환하게 수놓는 반딧불이. 그렇게 매년 여름, 금산의 숲엔 별이 내린다.
금강에서 물고기를 낚으며 사는 양태형 씨. 그는 이곳에서 반딧불이 할아버지로 불린다. 40여 년 전 우연이 마주친 수천의 반딧불이에 매료돼 반딧불이 지킴이로 살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반딧불이가 나올 시기가 되면 서식지 부근에 울타리를 치고, 대낮처럼 밝게 켜진 가로등 때문에 반딧불이가 짝을 찾지 못할까, 동네 사람들에게 타박을 받으면서도 가로등을 끄는 일이 습관처럼 굳어버렸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고 혼자 노력해 봐야 한계가 있다는 걸 알기에 이젠 그만해야지 하면서도 반딧불이가 찾아들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가로등을 끄고 사람들의 접근을 막는 반딧불이 지킴이 양태형 씨.
그에게 반딧불이는 잘 지켜 어린 손주가 어른이 돼서도 볼 수 있도록 해야 하는 보석에 다름아니다.
금강엔 수많은 생명이 기대어 산다. 천연기념물인 수달을 비롯해 환경부지정 멸종위기종 2급인 흰목물떼새도 금강변에 서식하는데 흰목물떼새는 암수가 번갈아 가며 알을 품는 공동육아의 대표선수.
드디어 세상에 나온 새끼가 위험에 처하자 어미는 자신의 몸을 던진다. 모래언덕에 둥지를 지은 여름 철새 물총새는 새끼들을 위해 물속사냥을 감행하고 수컷 소쩍새는 암컷이 새끼들을 지키는 동안 밤새 쉼 없이 먹이를 잡아다 나른다.
천적이 많은 숲속보다 사람 곁이 더 안전하다 느꼈던 걸까. 박새는 과감하게도 사람들이 오가는 길목 어느 집 우체통에 둥지를 틀었다.
반딧불이는 오직 짝짓기를 위해 빛을 낸다. 짝짓기가 끝나고 나면 생을 마감한다. 금강의 새들은 오로지 새끼만을 위해 산다. 새끼를 키우는 동안 엄마, 아빠는 자신들을 위한 먹이를 찾지 않는다.
이러한 희생과 노력으로 삶은 이어지고 생명은 끝없이 숨을 이어간다. 고단하고 애처로우면서도 끝내 살아내고야 마는 빛나는 시간들. 충남 금산엔 세상 모든 생명이 자기만의 빛을 가지고 반짝이는 별 내린 숲이 있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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