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내려가도 수압 고통 악! ‘더하기’ 아닌 ‘빼기’ 스포츠…“오기·욕심 다 내려놔야”
#덕다이빙, 이퀄라이징 배우기
3m 수영장에선 오리처럼 머리를 물속으로 밀어 넣는 ‘덕다이빙’과 줄을 잡고 물속으로 내려가면서 압력평형을 맞추는 ‘이퀄라이징’을 배우고 연습한다. 머리부터 시작해 몸 전체를 물 밑으로 내려 보내는 덕다이빙은 최소 3m 이상 되는 물속에서나 연습이 가능하다. 이 역시 수영을 제대로 배우지 않았다면 태어나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동작일 가능성이 높다. 여름날 계곡에서 날이면 날마다 다이빙하고 물장구치는 어린 시절을 보내지 않았다면 말이다.
막상 따라 해보니 지상에서 똑바로 쳐들기만 하던 머리가 한순간에 겸손하게 수면 아래로 부드럽게 꺾어 들어갈 리 만무했다. 보기엔 쉬웠는데 웬걸, 온 몸이 360도로 돌아다니고 손발은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듯 사방으로 휘적댄다. 무거웠던 머리는 잘 가라앉지 않고 손발도 제멋대로 따로 논다
욕심을 앞세우지 말고 마음을 가다듬는다. 수면에 떠서 앞으로 나란히, 그대로 손이 가리키는 수면 아래로 머리를 힘껏 밀어 넣는다. 머리가 물속으로 들어가는 것에 쾌감을 느끼는 것도 잠시, 아차차 수압으로 인해 귀가 아파온다. 이때 수압에 대비해 몸의 압력평형을 맞추는 이퀄라이징을 해야 한다.
수심이 깊어질 때마다 수압은 높아진다. 높은 곳으로 올라갈수록 중력이 덜해지듯 수면 아래로 내려갈수록 수압이 세지는 건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기껏해야 물장구만 치던 사람에게 수압은 놀라운 발견이자 두려움의 대상이다. 고작 1m 내려갔을 뿐인데 수압의 고통이 고스란히 귀로 전달되어 온다.
몸에 압력평형을 맞춰주는 이퀄라이징은 지상에서도 여러 번 연습했지만 이 역시 써보지 않던 근육을 움직이는 것이라 생소하다. 코를 잡고 입천장 뒷부분에 혀 뒷부분을 밀어 올리며 공기를 귀로 보내 ‘펑’ 소리가 나게 하는 동작이다. 스쿠버다이빙을 할 때처럼 코를 잡고 ‘흥’ 하고 코를 풀 듯 공기를 귀쪽으로 보내는 방법이 더 쉽지만 이렇게 하면 공기 소모가 많아진다. 공기통을 메고 물속으로 들어가는 스쿠버다이빙이야 공기를 아낄 필요가 없어 주로 이 방법을 사용해 압력평형을 맞추지만 숨을 참고 들어가야 하는 프리다이빙에선 공기를 조금도 허투루 쓸 수 없다.
강사는 “프리다이빙은 효율을 중시하는 스포츠예요. 물속에서의 모든 동작은 자기가 품고 있는 공기를 최대한 아끼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요. 줄을 잡고 수면 아래로 내려갈 때도 줄을 꽉 붙잡지 않고 잡은 듯 만 듯 슬며시, 압력평형을 할 때도 내가 가진 공기를 조금이라도 덜 쓰는 방식으로 하죠”하고 설명한다.
온몸에 힘을 빼고 머리에서도 생각을 빼고 근육까지 이완시키는 것도 내 몸의 공기를 최대한 아끼기 위한 것 아니던가. 강사는 “못할 건 없어요. 부족한 부분이 뭔지 알게 된 후엔 하나씩 연습하다보면 처음보다 할 수 있는 것이 조금씩 늘어날 거예요”라며 용기를 준다.
그래 못할 건 없다. 수영장 연습을 마치고 바다로 나가본다.
#심해로 빨려 들어가기
제주의 바다는 프리다이빙을 하기에 절정의 날씨를 보여주고 있었다. 문제는 내 몸이다. 바다는 준비가 됐는데 나는 아직이다. 오리발을 차고 배에서 내리는 가슴이 설렘과 두려움으로 파도를 친다. 멀미약도 먹었다. 바다에 사람들을 내려주고 배는 떠나버린다. 망망대해에 강사와 수강생 몇몇이 부이에 의지해 수면에 둥둥 떠 있다.
일렁거리는 수면은 수영장의 잔잔한 그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야생이다. 수영장과 달리 바닥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어항 속 붕어들이 바다로 나온 셈이다. 마스크와 스노클을 차고 바다 밑을 내려다본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작은 생명체들과 푸른 바다의 위용에 압도당한다. 푸른 물속을 온전히 즐기려면 배운 대로 온몸에 힘 빼고 두려움도 걷고 진득하게 숨 참고 내려갈 줄 알아야 한다. 프리다이빙의 다른 말은 ‘이완’이다.
숨을 가다듬고 배운 대로 시도해 본다. 바다 밑으로 줄을 내리고 수강생이 한 명씩 줄을 잡고 머리부터 내려간다. 워밍업이다. 다음엔 적당한 무게의 웨이트(중량납 벨트)를 허리에 차고 덕다이빙 시도, 안에서 새는 물 밖에서도 샌다고 머리가 물 밑으로 잘 미끄러져 들어가지 않는다. 머리가 쉽게 가라앉도록 웨이트를 목에도 하나 더 찬다.
물속으로 머리 먼저 입수, 압력평형이 관건이다. 귀에 통증이 느껴지기 전에 1초에 한 번꼴로 이퀄라이징을 한다. 처음엔 귀에서 ‘픽픽’ 하는 소리가 나며 내려갈 만하더니 금세 귀가 아파와 더 이상 내려가지 못한다.
16m 아래에 있는 추를 만나고 와야 프리다이빙 자격증을 딸 수 있건만 5m도 채 내려가지 못하고 머리는 자꾸 수면으로 올라오고야 만다. 숨은 아직 남아 있지만 이퀄라이징이 뜻대로 잘 되지 않는다.
함께 바다에 나간 40대 중반의 남성 정재현 씨도 잘 되지 않는 눈치다. 프리다이빙이 죽기 전 해보고 싶은 ‘버킷리스트’라던 그도 적잖이 당황한 기색이다. 그는 “3m 수영장에서 연습할 때와는 많이 다른데요. 이퀄라이징이 잘 되지 않아 귀가 아파서 물속 깊이 들어가기가 어려워요. 스쿠버다이빙도 해봤고 바다수영도 곧잘 하는 편이라 바다 밑으로 들어가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을 줄 알았는데…”라며 실망하는 기색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운동을 좋아해서 안 해본 운동이 없고 도전하고 성취하는 걸 좋아해 그렇게 살아왔는데 잘 되지 않으니까 오기가 생기네요. 근데 해보니 이건 오기나 욕심으로 하는 스포츠가 아니란 것도 확실히 알겠어요. 꼭 하고 말거라는 생각에 몸에 너무 힘이 들어가 있었던 것 같네요”하며 멋쩍게 웃는다. 정 씨는 본인도 인정하듯 ‘빨리빨리’와 ‘성취’에 익숙한 전형적인 한국 중년 남성이다. 그에게 숨 참기는 사실 해보지 않은 놀이다. 그는 “숨 참기를 하며 내 숨이 얼마나 짧고 조급한지 알게 됐다”며 이제는 종종 들고나는 호흡도 보고 숨 참기 연습도 해볼 거라 했다.
강사는 “본인이 들어갈 수 있는 수심의 깊이가 얕다고 실망하지 마세요. 우린 바다에 놀러 나왔고 바다에서 쉬러 왔잖아요”라며 “숨 참기든 이퀄라이징이든 뭔가 문제가 있다면 거기서 그만두는 게 아니라 어디가 문제인지 살펴보고 다시 물에 들어가고 또 들어가면서 조금씩 배우고 나아질 수 있어요”라고 다독인다.
강사의 말처럼 프리다이빙은 ‘더하기’가 아닌 ‘빼기’다. 몸과 마음을 이완하고 머리를 비우면서 들숨과 날숨에 정신을 집중하는 ‘준비호흡’ 단계에서부터 빼기는 시작된다. 잘하고 싶다는 욕심조차 더하지 말아야 더 편하게 깊이 바다 속으로 들어가 볼 수 있다. 그야말로 ‘바다명상’이다.
심기일전, 다시 내려가 본다. 두 번째 입수는 처음보다 한결 나아졌다. 이퀄라이징도 조금 더 익숙해지고 바다가 주는 두려움에서도 조금씩 놓여난다. 마음이 편안해지니 몸도 조금씩 긴장을 풀며 바다에 적응해간다. 숨을 최대한 많이 들이마신 후 덕다이빙, 이퀄라이징으로 귀에서 ‘뾱~뾱~’ 하는 소리를 느끼며 5m를 넘어 10m까지 내려가 본다. 숨이 차오른다. 버텨본다. 10m까지는 안간힘을 쓰며 내려갔는데 10m를 지나자 왠지 바다가 몸을 끌어당기는 느낌이다. 포근하면서도 편안하게 심해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다. 순간, 온 우주에 나 혼자 있는 느낌이 밀려온다. 고독과 두려움, 경외감 같은 감정들이 한순간에 밀려왔다가 이내 사라진다.
그 기분도 잠시, 다시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횡격막이 꿀렁거리며 호흡충동이 일어난다. 숨을 쉬고 싶어도 당장은 쉴 수 없다. 다시 10m 위로 올라가야 한다. 깊고 고요한 바다 속의 평온과 꿀렁거리며 호흡을 닦달하는 몸이 서로 제각각이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다. 최대한 빨리, 하지만 침착하게 수면 위로 올라온다. “헙푸~헙푸~” 재빠르게 몸에 산소를 공급하는 ‘회복호흡’을 두세 번 하고 나니 몸과 마음이 거짓말처럼 다시 안정을 찾는다. 두세 번의 호흡으로, 아니 단 한 번의 호흡으로도 생사의 갈림길에서 생을 택한다.
프리다이빙의 끝은 바닥이 아니다. 수면으로 다시 올라오는 것까지가 끝이다. 출발점이 곧 끝점이다. 숨을 아껴 다시 출발점이자 끝점으로 돌아와야 한다. 등산의 끝이 정상이 아니라 다시 내려오는 것까지인 것과 마찬가지다.
몇 년 전만 해도 제주에 4~5곳에 불과하던 프리다이빙 스쿨은 현재 20여 곳으로 늘었다. 프리다이빙은 서핑이 유행을 탔듯 점점 인기 레포츠가 되고 있다. 하지만 여느 해양 스포츠와는 확실히 다른 면이 있다. 운동신경이나 의지보다는 몸의 이완을 통한 ‘힘 빼기’가 키워드다. 숨 참기의 오묘한 맛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먹을 때는 별맛 없다며 툴툴거리다가도 돌아서면 자꾸 생각나는 한여름의 슴슴한 평양냉면처럼, 돌아서고 나니 자꾸 오리발을 차고 바다로 나가는 상상을 하게 된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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