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진이 휩쓸고 간 일본 미야기현 게센누마시 시가지에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교도/연합뉴스 |
영화 <해운대>에선 홀로 지진과 쓰나미의 위험을 감지한 지질학자가 등장해 정부당국에게 위험을 알리려 고군분투하는 과정이 담겨있다. 그러나 이 학자의 위험 예고는 안전불감증에 걸린 정부당국에 의해 묵살된다. 결국 며칠 후 이 학자의 예견대로 이 도시에는 10m가 넘는 대형 쓰나미가 몰려오고 도시는 순식간에 불바다이자 거대한 무덤으로 변하고 만다.
이번 일본의 쓰나미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난 3월 6일 일본 트위터에 등장한 글이 경고의 시작이었다. 메시지의 발신자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지만 트위터 상에 “오늘 정확히는 내일 0~1시에 한 번의 지진이 오는 것 같습니다. 관동 지방의 사람은 주의하세요”라는 문장이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관동 지역에 실제 지진이 발생하지 않아 트위터 파문은 해프닝에 그쳤다.
그러나 2~3일 후 영화 <해운대>에서처럼 고래 수십 마리가 일본 이바라키현 해안으로 몰려오는 것이 목격됐다는 언론보도가 등장했다. 지질학적으로 고래의 이상이동은 대지진의 위험으로 간주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 뉴질랜드 대지진의 경우 발생하기 이틀 전에 현지 해안에 고래가 밀려들어온 적이 있다. 때문에 당시 일본 온라인에는 트위터 파문과 연관지어 “이것은 지진 발생의 전조가 아닌가” 하는 각종 추측들이 떠돌았다. 하지만 영화가 그렇듯 실제상황에서도 이 모든 위험 예고는 ‘만의 하나’로 치부됐다.
‘쿵!’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도쿄 북동쪽 243마일 해저에서 한 번의 소리 없는 파동이 바다에 울려 퍼졌다. 일본 기상청이 바다를 울린 파동을 주목한 것도 그 찰나였다. 기상청에서는 14분 후 곧 대형 쓰나미가 몰려올 것을 예감하고 경보를 내렸다. 일본 기상청은 하와이, 괌, 대만까지 쓰나미의 영향을 받을 정도로 초대형 파도가 밀어닥칠 것으로 예고했다.
그러나 주어진 시간은 단지 14분. 가장 빠르게 반응한 것은 주가였다. 소식을 접한 일본정부 정부 관료들은 총리관저에 급히 집합해 대책을 논의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후쿠시마 원전 2기 가동을 중단하는 것 외엔 없었다. 곧 있으면 대형 파도가 몰려 올 해변가에는 늘 그렇듯 유람선을 탄 관광객들과 해변의 경치를 즐기는 관광객 수천 명이 배회하고 있었다. 학교에선 졸업식과 입학식이 한창 진행 중이었고 도쿄 디즈니랜드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봄철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3시 30분. 몰려 올 불행을 예고하듯 4m 높이의 쓰나미가 미야기 현 센다이 해안선에서부터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어 3시 55분 더 큰 악몽이 몰려왔다. 10m 이상의 파도가 서서히 바다 건너편에서부터 모습을 드러냈고 삽시간에 10㎞ 떨어진 와카바야 시 구청 건물 앞까지 치고 올라왔다.
두 차례에 걸친 대형 파도. 처참한 당시 상황은 NHK 방송이 헬리콥터에서 촬영한 화면에 남아 있다. 일본 현지 보도에 따르면 육안으로 봐도 2004년 인도네시아 해안에 밀어닥친 쓰나미보다 더 거대한 해일이었다. 센다이와 나토리 시 인근 연안에 상륙한 쓰나미는 제방을 넘어 수십㎞에 이르는 센다이 평야를 순식간에 덮쳐 버렸다. 도시로 몰려 든 파도는 수십 채의 가옥과 건물을 통째로 들어 올리고, 뒤집었다. 수마가 할퀴고 간 자리는 자동차와 도로의 잔해가 뒤엉켜 흡사 지옥을 연상시키고 있다. 쓰나미는 고속도로용 둑을 만나고야 겨우 멈췄다.
센다이 공항 활주로도 쓰나미에 덮였다. 외신보도에 따르면 한 공항 직원은 한때 “2m 높이까지 물이 찼다”고 말했다. 물에 잠긴 센다이 도심 주택가에서는 방송사 헬리콥터를 향해 흰 침대보를 흔들며 구조를 요청하는 주민도 눈에 띄었다. 도망갈 수 있는 길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일본 경찰청의 발표에 따르면 센다이 공항 활주로도 쓰나미로 인해 침수됐으며 도쿄 디즈니랜드도 물에 잠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도쿄와 그 주변 440만 가구가 정전돼 일본 열도는 긴 암흑 속에서 사상 초유의 사태에 두려움에 떨고 있다.
손지원 기자 snorkl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