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스포츠국 PD 절반가량 다른 부서로…박성제 사장 “조직개편 갈등이 원인은 아냐”
#무슨 일이 벌어졌나
MBC는 7월 23일 2020 도쿄올림픽 개회식을 중계하며 선수들이 입장할 때마다 각국을 대표하는 이미지를 함께 공개했다. 이 과정에서 우크라이나 선수단이 입장할 때 체르노빌 원전 사고 사진을, 엘살바도르를 소개할 때는 비트코인 사진을 삽입했다. 아이티 선수단을 소개할 때는 ‘대통령 암살로 정국은 안개 속’이라는 자막을 사용해 물의를 빚은 데다 이탈리아, 노르웨이, 루마니아 선수들이 등장할 때는 각각 피자, 연어, 드라큘라 사진을 게재했다.
각국에 대해 MBC가 갖고 있는 1차원적인 무지함을 드러냈을 뿐만 아니라 타국의 아픔을 가볍게 소비하려 들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이를 접한 국내 네티즌조차 “다른 국가에서 한국을 소개하며 세월호 참사나 성수대교 붕괴 사고 당시 사진을 게재했다면 어떻게 반응했을까”라고 성토했다.
MBC는 개회식 말미에 MC를 통해 사과 멘트를 전한 데 이어 사과문을 내고 “사안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영상 자료 선별, 자막 정리 및 검수 과정 전반을 철저히 조사한 뒤 결과에 따라 엄정한 후속 조처를 하겠다”고 입장을 표명했다. 하지만 MBC는 불과 이틀 만인 25일 한국과 루마니아의 축구 경기를 중계하는 과정에서 루마니아 마리우스 마린 선수의 자책골이 나오자 “고마워요 마린”이라는 자막을 화면 우측 상단에 삽입했다. 이는 명백한 조롱이었고 루마니아의 일부 축구팬뿐만 아니라 국내 네티즌도 SNS를 통해 불쾌함을 표시했다. 러시아 출신 방송인 일리야 벨랴코프 역시 자신의 트위터에 관련 사진을 올리며 “대한민국 선수들이 입장했을 때 세월호 사진 넣지, 왜 안 넣었나”라고 일침을 가했다.
주요 외신들도 일제히 MBC의 경솔한 행태를 꼬집었다. 뉴욕타임스는 “MBC는 각 국가들을 향한 공격적이거나, 부정적 편견을 강화하는 내용의 이미지를 사용해 시청자들 비판을 받았다”고 전했고 CNN은 ‘이탈리아는 피자, 루마니아는 드라큘라…한국 방송사 사과’라고 제목 붙인 기사에서 “고정관념을 바탕으로 여러 국가를 묘사해 물의를 빚었다. 한국을 소개하며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세월호 참사의 나라라고 하면 좋겠냐”고 질타했다.
개최국인 일본의 마이니치신문은 “한국 방송국이 개회식 중계 도중 국가를 잘못 소개했다”고 전했고, 닛칸스포츠는 “각 국가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생중계였고, 올림픽과 관계가 없는 정보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또한 로이터통신은 “희망과 전통, 다양성을 주제로 삼은 올림픽 개회식의 취지가 무색하게 MBC가 공격적인 사진과 설명을 실었다가 온라인상에서 많은 비난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전 세계의 관심이 쏠린 지구촌 축제에서 MBC가, 더 나아가 대한민국이 톡톡히 망신을 당한 셈이다. 이에 민주언론시민연합은 7월 26일 성명을 통해 “MBC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개막식 중계에서도 비슷한 문제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중징계를 받은 전력이 있다. 당시 MBC는 키리바시를 ‘지구 온난화로 섬이 가라앉고 있음’, 짐바브웨를 ‘살인적 인플레이션’, 차드를 ‘아프라카의 죽은 심장’ 등의 문구를 넣어 소개했다”며 “최근 취재 윤리 위반으로 물의를 일으킨 지 얼마 되지 않아 참담한 사고가 연달아 발생하고 있다. 스포츠 중계방송을 비롯한 모든 콘텐츠 제작부터 검수에 이르기까지 전반 시스템을 점검하고, 쇄신해야 하는 이유”라고 호되게 질책했다.
#왜 이런 일이…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MBC는 26일 박성제 사장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 숙여 사과했다. 박 사장은 이날 오후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지구인의 우정과 연대, 화합이라는 올림픽 정신을 훼손하는 방송을 했다”며 “신중하지 못한 방송, 참가국에 대한 배려가 결여된 방송에 대해 마음에 상처를 입은 해당 국가 국민들과 실망하신 시청자 여러분께 MBC 콘텐츠의 최고 책임자로서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박 사장은 “기본적인 규범 인식과 콘텐츠 검수 시스템의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방송 강령과 사규, 내부 심의규정을 한층 강화하고 윤리위원회 콘텐츠 적정성 심사 시스템을 만들어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지만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발생한 것에 대한 납득할 만한 답은 내놓지 못했다.
이에 현장에서는 MBC 내부 조직 개편 과정에서 불거진 잡음이 이번 사태의 원인 아니냐는 질문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박 사장은 “조직 개편 과정에서 내부 갈등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 문제의 원인은) 조직 개편 때문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MBC 내부의 온도는 다소 다르다. MBC는 올해 초 조직을 개편하며 스포츠국 PD 22명 가운데 절반가량이 다른 부서로 뿔뿔이 흩어졌다. 본사 인력이 축소되자 제작 기능의 상당 부분을 자회사인 MBC스포츠플러스에서 맡았는데 올림픽이라는 국가적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인력 충원은 많지 않았다는 것이 MBC 내부의 전언이다.
MBC 관계자는 “MBC스포츠플러스 소속 PD를 지원받았지만 지금껏 MBC가 올림픽을 준비하던 인력과 비교해 턱없이 손이 부족했다”며 “게다가 MBC 본사 인력과 MBC스포츠플러스 소속 파견 PD들도 짧은 기간에 손발을 맞추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고 귀띔했다.
박 사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지나치게 복잡한 화면이 만들어졌고, 데스킹 없이 부실하게 이뤄지며 이 같은 일이 발생한 부분이 있다. 관리하는 분들도 있어야 하고, 데스킹도 이뤄져야 하는데 안 이뤄졌다”며 이런 내홍에 대해 어느 정도 인정하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MBC의 이번 보도 참사는 순간의 실수가 아니라 예견된 악재였던 셈이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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